잼얘

'재미있는 이야기'로 눈치 싸움

by엉금

나가고는 싶다. 확 꽂히는 활동은 없다. 약속 제안도 없고. 주위에서 월요일에 쉬는 인간은 나 하나. 고로 직접 끌어모으기도 뭐하다. 일하는 녀석이나 괴롭히러 가야지. 친구를 격려하기 위해 운전대를 잡는다. 언덕을 오르고 내리고. 슬슬 낯익은 동네가 눈에 들어온다. 한 판때기에서 나타나다 사라지다 하는 갖가지 빛깔. 그것들은 내가 갔던 술 약속 따위를 회상하게 만든다. 이 시간, 이 요일에 있던 지난 상황들을.


재밌게 해봐. 그 자리에서 잊을 만하면 들은 말. 제공하는 압박감은 실로 대단하다. 정신 차리면 내가 이상한 동물로 변모해 있으니. 피해망상이라 손가락질 받을지언정, 주눅 들 일은 없다. 한두 번이어야지. 그리고 이리 전가된 술자리. 마다 빠짐없이 뱀의 꼬리가 되었다. 가만히 있으면? 안주가 수북한데 영수증이 나온다. 내 의지는 결여된 채로 공범을 저지르게 되지. 환경 부담금 아닌 벌금이면 그랜저 한 대 뽑았을까.


뚜들기면서 한숨 나온다. 필자는 저 화자의 심리를 추측해야겠다. 망상을 뭉탱이로 적어놓고 이후 상황이 재연되면. 직접 물어본 다음 짐작과 일치하는지 비교하련다. 재밌겠네. 뭣하면 넘어갈 수 있지 않나. 스스로 제동을 걸어본다. 이윽고 대답은 돌아온다. 정말 안타까운데 나는 천사가 아니므로. 수차례의 전가를 고민 없이 넘길 아량이 부족하다. 그냥 악마를 자처하고 말지. 실은 안타깝지도 않다. 쭉 고발과 망상을 섞는다.


곱씹으니 그렇게 기묘할 수 없다. 여러 의문을 끌어내므로. 능동적으로 행동하기 귀찮나. 본인 일화는 드러내고 싶지 않나. 여기까지는 양반이다. 난 싫으니까 너가 희생 좀 해. 그렇게 이기적인 존재로 보이는 비약까지 도달한다. 한데 훑어보면 모두 같은 문장이잖아. 내가 고민하고 생각하기 싫다. 이 맥을 같이한다.


그래 이타적으로. 이해를 가지고 헤아리자. 두려웠겠지. 본인도 모르게 치부를 드러낼까 봐. 말 이상하게 꺼내면 분위기 냉랭해질까 봐. 공감대를 자극하지 못할까 봐. 쉽지 않은 과정이라는 사실을 안다. 분위기 띄우기를. 발화보다는 호응이 쉽지. 그것이 그것을 낳기도 하지만 결국. 시작이 존재해야 한다. 이유가 여기에 있나. 듣기와 호응만 잘하면 대화는 흘러가니까.


이런 연유로 안주로 안주한다면 사양하고 싶다. 만약 그마저 없는 이들이라면. 아. 어두워진다. 졸부가 틀림없다. 소주를 단순히 취식으로 사용하다니. 취하기 목적이 아닌 독립적 식품으로 대한다고. 정녕 국어사전 뜻 그대로. 돈이 많지 않고서야 그럴 엄두 나겠는가. 그들을 대변할 말이 떠오른다. 내향적인 사람이라 그래. 이내 한쪽으로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주 교묘한 핑계다.


말이 대변이지. 내향적이라면 애초에 저런 발언 못 한다. 관심이 나한테 있는데. 앞에 있는 사람 이야기에 궁금할까. 이게 편견인가. 그러면 더하지. 내향적인 데다 염치도 없으니. 표현을 정확히 사용해야 한다. 외향적이며 내성적인 사람이다. 관심의 초점은 밖으로 향하지만 슬롯성은 낮다는 의미지. 우리는 향과 성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나부터 헷갈렸으니까.


한 인간이 생각난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 보라고. 단둘이 술집에 있는 상황이었다. 어떻게 말을 꺼내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그러다 주변 자리에 누군가 들어오고. 그 인류는 내게 합석을 운운했다. 지금 와서야 드는 두 가지 생각. 이성은 내가 재미있게 만들고 싶지만 동성은 예외인가. 혹은, 이성이 좋지만 말주변은 없던가. 그 자리에서도 내게 바카라임을 떠맡길 계획이었나. 판만 깔고. 사람 기분이 내려가니 망상도 정도가 있다.


방송을 보자. 여러 종류가 있는데 그중 예능을. 초대 손님에게 직접 “오디오 채워봐요”. 이렇게 시키는 방송이 어디 있나. 진행자 역할은 여기 있다. 글자 그대로, 상황을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진행하는 사람이다. 그 상황에는 대화가 있고. 그는 손님이 무안하지 않게 만들 의무가 있다.


거창한가. 대화 시작할 질문 던지기. 끝이 보일 즈음에 다른 주제로 넘어가기. 언급하면 재밌을 부분 한 번 집어내기. 막상 나열하니 괜히 바카라임감에 고양되는 기분은 든다. 그만큼 주최자 역할이 중요하다는 의미겠지. 내가 마련한 자리면 방송을 운운하지 않았다. 내가 따라간 자리인데. 초대한 사람 입에서 저런 소리가 나온다니. 그 의도는 크라임씬을 반나절 동안 ‘정주행’해도 추리 못 한다.


침묵이 어색한가. 네. 한동안 그랬다. 고로 권유를 빙자한 전가에 홀랑 넘어갔지. 뭐 그도 어색하니까 상황을 바꾸고 싶었겠는데. 돌아보자. 시쳇말로 ‘무리수’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속지 말자. 부담감은 촉진제가 아니라 환각이다. 분위기 전환을 고무적으로 이끌 수 없다. 그 공기를 즐기는 내가 일단이다. 무작정 침묵하라. 또 이 말은 아니다. 그 사람에게 관심이 있다면 궁금증을 창조할 터. 질문은 자연스레 나온다.


반응마저 성의가 보이지 않는다. 오지도 않은 전화를 받으러 나가자. 그리고 택시 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