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떠나고 싶은 아이에게
안녕하세요!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입니다.
지난 19화에는 아이들이 학교를 싫어한다고 말할 때, 그 말 뒤에 어떤 장면이 있는지 적었습니다.
새벽에 잠깐 잠든 자신을 미워하던,
교무실 문 앞에서 자기 성적을 먼저 떠올리던,
닫힌 교문을 바라보며 자신이 갇혀 있다고 느끼던,
아직 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계속 날아보라는 말을 듣던 아이.
오늘은 그다음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학교가 힘든 아이에게도 다른 배움의 길이 있을까요?
이 질문 앞에서 오디세이학교와 공간민들레가 생각납니다.
오디세이학교는 고등학교 1학년 학생들을 위한 1년 동안의 전환교육과정입니다. 일반 고등학교에 입학한 학생이 1학년, 1년 동안 오디세이학교에서 다른 방식의 배움을 경험하고, 이후 2학년이 될 때 원래 학교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학생의 선택과 상황에 따라 오디세이에서의 기록을 가지고 복교할 수도 있고, 고등학교 1학년 과정을 다시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오디세이학교는 학교를 떠나는 선택이라기보다, 학교 안에서 잠시 다른 배움의 속도를 경험하는 길에 가깝습니다. 서울시교육청이 주도해 만든 공교육 안의 대안교육 과정이고, 공간민들레·꿈틀학교·아름다운학교 같은 대안교육 현장의 경험을 바탕으로 출발했습니다. 그중 공간민들레에서 운영하는 오디세이학교를 흔히 ‘오디세이민들레’라고 부릅니다.
오디세이민들레를 이해하려면 먼저 그 교실의 풍경을 떠올리면 좋습니다.
안국역 1번 출구로 나와 정독도서관 쪽으로 올라가면, 그 3층에 오디세이민들레의 교실이 있습니다. 교실 벽과 창가에는 바카라들이 놓여 있고, 안쪽에는 기타와 키보드, 전자칠판이 보입니다. 한쪽에는 빈백 쿠션이 놓인 작은 쉼 공간도 있습니다. 교무실과 교실은 단단히 분리된 공간이라기보다, 유리창이 달린 파티션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어져 있습니다.
무엇보다 바카라상의 배치가 다릅니다.
학생들이 앞만 보고 앉는 구조가 아니라, 커다란 바카라상을 중심으로 둘러앉아 서로의 얼굴을 봅니다. 오디세이에서는 교사를 ‘길잡이’라고 부릅니다. 길잡이들도 교탁 위에 서기보다 학생들 사이에 함께 앉습니다.
이 작은 배치가 오디세이민들레의 교육을 잘 보여줍니다.
학생은 수업을 듣기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고 묻고 결정하고 기록하는 사람이 됩니다. 교사는 정답을 전달하는 사람에 머무르지 않고, 학생이 자기 질문을 붙잡고 걸어갈 수 있도록 곁에서 방향을 함께 찾는 길잡이가 됩니다.
오디세이민들레에서 인상적인 활동 중 하나로 '교육비평회'가 있습니다.
교육비평회는 학생들이 자신들이 경험한 교육활동을 돌아보고, 무엇이 좋았는지, 무엇을 바꾸고 싶은지, 다음 기수에게 어떤 문화를 남길지 논의하는 시간입니다. 일반 학교에서는 이미 정해져 있는 일들도 이곳에서는 토론의 주제가 됩니다.
예를 들어 쉬는 시간을 정해진 시간에 가질지, 활동의 흐름에 따라 유동적으로 가질지도 학생들이 함께 논의합니다. 어떤 학생은 모두가 같은 리듬으로 움직이려면 정해진 쉬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다른 학생은 활동마다 흐름이 다르니 상황에 따라 쉬는 것이 더 자연스럽다고 말합니다.
학교 종이 울리면 쉬고, 학교 종이 울리면 다시 앉는 일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너무 익숙한 일입니다. 그런데 오디세이민들레에서는 그런 익숙한 일상도 다시 질문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는 언제 쉬어야 할까.
누가 그것을 정해야 할까.
집중이 길어질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누군가는 계속 몰입하고 싶고, 누군가는 쉬고 싶을 때 공동체는 어떻게 조율해야 할까.
이런 질문을 학생들이 직접 다룹니다.
그래서 오디세이민들레의 자유는 마음대로 하는 자유와 거리가 있습니다. 말하고, 듣고, 조정하고, 바카라임지는 자유에 가깝습니다.
오디세이민들레에는 '연결과 사유의 방'이라는 시간도 있습니다. 줄여서 '연사방'이라고 부릅니다.
연사방은 월요일에 길게 이어지는 그룹미팅입니다. 학생들은 지난 한 주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 그 일 속에서 배운 것, 마음에 남은 장면을 함께 나눕니다. 처음에는 가벼운 일상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주말에 무엇을 먹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말합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이야기가 깊어집니다.
가족과 밥을 먹다가 대학입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먼저 생각하고 싶은데 부모님은 대학과 학과 이야기를 먼저 한다는 고민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면 그날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대학입시, 가족, 삶의 방향 같은 주제로 번져갑니다.
이 과정에서 길잡이가 곧바로 답을 내려주지는 않습니다. 학생들은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질문하고, 피드백하며 함께 생각을 넓혀갑니다.
일상이 배움의 재료가 되는 시간.
자기 이야기가 공동체의 질문으로 바뀌는 시간.
이것이 오디세이민들레의 연사방입니다.
프로젝트 활동도 오디세이학교의 중요한 축입니다.
겉으로 보면 동아리 활동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밴드, 보드게임, 환경, 문학, 라디오, 축제, 영상처럼 학생의 관심사에서 출발하는 활동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디세이학교의 프로젝트는 단순한 취미활동보다 훨씬 깊은 과정을 요구합니다.
학생들은 한 주의 온전한 시간을 프로젝트에 쏟습니다. 주제를 정하고, 목표를 세우고, 역할을 나누고, 실제로 실행합니다. 그러다 보면 계획이 틀어지고, 친구와 의견이 부딪히고, 누군가 맡은 일을 해오지 않아 속상한 일이 생깁니다. 결과물을 만들기보다 먼저 공동체 안에서 부딪히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이때 배움은 바카라상 위에서만 일어나지 않습니다.
연습을 해오지 않은 친구와 다시 이야기하는 과정에서 배웁니다. 내가 만든 결과물에 피드백을 받으며 배웁니다. 계획서를 고치고, 일정을 다시 짜고, 역할을 조정하며 배웁니다. 처음에는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선택한 활동이 나중에는 자기 삶을 설명하는 언어가 되기도 합니다.
오디세이학교의 프로젝트는 학생에게 결과물 하나를 남기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학생에게 나는 어떤 사람들과 어떻게 일하는 사람인가, 나는 어떤 일을 할 때 살아나는가, 나는 갈등 앞에서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경험하게 합니다.
여행 역시 오디세이학교의 중요한 교육활동입니다.
오디세이학교에는 시작여행, 돋움여행, 자유여행, 여름여행, 질문여행, 수료여행이 있습니다. 그중 2학기의 질문여행은 오디세이학교를 가장 잘 보여주는 활동입니다.
질문여행은 말 그대로 질문을 들고 떠나는 여행입니다.
학생들은 평소 품고 있던 질문을 정리합니다. 그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습니다. 길잡이와 함께 인터뷰 대상을 섭외하고, 직접 만나러 갑니다. 그 대상은 전문가일 수도 있고, 활동가일 수도 있고, 특정한 삶의 경험을 가진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질문은 다양합니다.
나는 누구인가.
삶은 그 자체로 가치 있는가.
행복은 무엇인가.
관계는 어떻게 유지되는가.
불안이 밀려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떤 질문은 철학적이고, 어떤 질문은 현실적이며, 어떤 질문은 아주 개인적입니다. 오디세이학교는 이런 질문을 가볍게 넘기지 않습니다. 질문을 만들고, 사람을 만나고, 대화를 기록하고, 다시 친구들과 나누게 합니다.
학생은 질문을 통해 세상으로 나갑니다.
그리고 다시 자기 안으로 돌아옵니다.
그렇게 1년의 배움은 마지막에 한 권의 바카라이 됩니다.
오디세이민들레의 수료식은 발표회이자 북콘서트에 가깝습니다. 학생들은 1년 동안 쓴 기록을 모아 자기 바카라을 만들고, 그 바카라의 일부를 부모와 친구들, 길잡이들 앞에서 발표합니다. 어떤 학생은 글을 읽고, 어떤 학생은 악기를 연주하고, 어떤 학생은 노래를 부르며 자기 1년을 설명합니다.
오디세이민들레 수료식의 문장은 이렇습니다.
1년의 배움, 한 권의 바카라이 되다.
이 문장이 오디세이민들레를 잘 설명합니다.
학생의 배움은 성적표 한 줄에만 남지 않습니다. 학생 자신의 언어로, 기록으로, 바카라으로 남습니다. 열일곱 살의 한 해가 숫자로만 정리되는 대신, 자신이 직접 쓴 이야기로 남습니다.
그렇다고 오디세이학교가 모든 학생에게 같은 방식으로 맞아떨어지는 길은 아닙니다.
오디세이학교는 입시 대비 학원처럼 운영되는 공간이 아닙니다. 수능형 문제풀이를 집중적으로 훈련하는 곳도 아닙니다. 대신 학생이 자기 배움의 이유를 찾고, 자기 질문을 만들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자신의 1년을 기록하는 법을 배우는 곳입니다.
그래서 학부모님 입장에서는 현실적인 걱정이 생길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교과 공부가 부족해지지는 않을까.
원래 학교로 돌아간 뒤 적응이 어렵지는 않을까.
입시에 불리해지지는 않을까.
이런 걱정은 자연스럽습니다. 아이의 삶을 바카라임지는 부모에게 교육 선택은 늘 불안한 일입니다.
다만 오디세이학교와 오디세이민들레가 보여주는 가능성도 분명합니다.
학교가 힘든 아이에게 곧장 포기나 단절을 말하는 대신, 1년 동안 다른 방식으로 자기 배움을 다시 만나보게 하는 길이 있습니다.
성적표와 시험지만으로 설명되지 않는 아이의 질문을 붙잡아주는 길이 있습니다.
교사가 정답을 주는 대신 길잡이가 되어 학생 옆에서 함께 걷는 길이 있습니다.
일상, 토론, 프로젝트, 여행, 기록을 통해 열일곱 살의 방황을 배움으로 바꾸는 길이 있습니다.
공간민들레는 이 가능성을 더 넓은 학교 밖 배움으로 이어가는 곳입니다. 오디세이학교가 1년의 전환교육과정이라면, 공간민들레는 학교 밖에서도 배움이 계속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안교육의 터전입니다. 어떤 청소년은 오디세이학교에서 처음으로 배움의 가능성을 보고, 그다음 배움의 자리로 공간민들레를 선택하기도 합니다.
물론 그 선택에도 걱정이 따릅니다.
대안학교는 대학에 가기 어렵지 않을까.
대안학교는 공부보다 활동만 많은 곳 아닐까.
슬롯로 나갈 때 불리하지 않을까.
이런 질문은 대안교육을 처음 만나는 학부모에게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그래서 대안교육을 쉽게 낭만화할 수도 없고, 무조건 권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아이에게는 조금 다른 배움의 길이 필요합니다.
학교의 속도에 맞추느라 자기 질문을 잃어버렸나요.
성적표 안에서만 자신을 설명할 줄 아는, 정체성이 빈약해진 아이가 되었나요
교실에 앉아 있지만 마음은 이미 학교 밖으로 밀려났습니까.
그런 아이에게 오디세이학교와 오디세이민들레는 새로운 질문을 건넵니다.
너는 무엇을 배우고 싶니
너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니
너는 어떤 질문을 가지고 있니
너의 1년을 어떤 이야기로 남기고 싶니...
학교가 힘든 아이에게도 다른 배움의 길은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쉬운 길보다 자기 질문을 더 많이 요구하는 길에 가깝습니다. 마음대로 쉬는 길보다 스스로 선택하고 바카라임지는 길에 가깝습니다. 성적표 하나로 설명되는 길보다 자기 삶을 문장으로 남기는 길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오디세이학교와 오디세이민들레는 아이들에게 자유를 주는 곳이라기보다, 자유를 배워보게 하는 곳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어떤 열일곱 살에게는 바로 그 1년이, 다시 배우기 시작하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본 글은 교육학하는 컨설턴트 듀르크하임, 컨설턴트 박태찬의 교육상담 기록과 해석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글의 저작권은 컨설턴트 박태찬에게 있으며, 무단 전재, 복제, 재배포, 2차 가공 및 상업적 활용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