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바라보다 - 의문#1
부모님은 이혼을 한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이혼이라는 것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도, 얼마나 걸리는지도 알지 못했다.
더 이해되지 않는 것은 따로 있었다.
이혼을 한다면서 오빠에게는 비밀이라고 했다.
아니, 오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다.
왜 이혼을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그냥 묵묵히 학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계속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중에야 외삼촌의 병원에서 숙식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것도 이상했다.
외삼촌은 어머니의 남동생이었다.
어머니와 이혼한다는 아버지가 왜 외삼촌의 병원에서 먹고 자며 계속 일을 하는지, 열일곱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도 한 가지는 좋았다.
아버지가 집에 없었다.
고등학교 1학년.
내가 살아온 열일곱 해 가운데 집이 가장 조용했던 시간이었다.
오빠도 없고, 아버지도 없었다.
큰소리가 날 일도 없었다.
나는 학교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왔고, 어머니와 나는 필요한 말만 주고받았다.
이상하게도 가족이 둘이나 사라지고 나서야 집은 평온해졌다.
가끔 어머니는 비어 있는 오빠의 방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한숨을 쉬었다.
아버지가 빠져나간 휑한 집을 바라보다가도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을 들을 때마다 나는 괜히 눈치를 봤다.
너 때문에.
그 말을 너무 많이 들어서였을까.
어머니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아도 그 한숨마저 내 탓인 것 같았다.
그러다 오빠가 백일휴가를 나올 무렵이었다.
어머니가 말했던 그대로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들어왔다.
그리고 오빠가 돌아오는 날, 우리 집에는 또 하나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어머니가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식탁 위에는 당면과 닭고기,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 장 봐온 것들이 한가득 놓여 있었다.
어머니는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느라 늘 바쁘셨고, 솔직히 말하면 요리에도 별다른 소질이 없으셨다.
어릴 적 어머니가 싸주신 도시락이 맛없어서 먹기 싫었던 기억도 많았다. 건강을 생각한다며 음식에는 간을 거의 하지 않았고, 식용유도 몸에 좋지 않다며 튀김이나 전 같은 음식은 좀처럼 하지 않으셨다. 간장까지 직접 만들어 드셨는데, 그 안에 무언가 둥둥 떠 있는 모습을 보면 어린 나는 숟가락부터 내려놓고 싶었다.
지금 생각하면 안다.
온라인 게임생활을 하면서도 가족들 건강을 챙기겠다고 이것저것 직접 만들어보려 했던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지만 열일곱의 나는 그런 마음까지 헤아릴 나이가 아니었다.
그런 어머니가 오빠의 휴가 날에는 학교 수업까지 일찍 마치고 돌아와 부엌에서 잡채를 만들고 닭볶음탕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신기해서 자꾸 부엌을 기웃거렸다.
평소의 어머니와 너무 달라서,
‘혹시 음식에 독약 같은 거라도 타는 거 아니야?’
철없는 생각까지 했다.
그만큼 낯선 광경이었다.
식탁 위로 하나둘 음식이 올라왔다.
마치 오랫동안 헤어졌던 아들을 맞이하는 잔칫상 같기도 했고,
이상하게 내 눈에는
최후의 만찬 같기도 했다.
"미영아."
어머니가 나를 불렀다.
순간 부엌을 자꾸 기웃거리지 말라는 소리인 줄 알고 못 들은 척 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목소리가 커졌다.
"야, 배미영! 엄마가 부르잖아. 기껏 부엌에는 잘만 돌아다니더니 부르니까 왜 들어가?"
나는 벌떡 일어나 다시 부엌으로 나갔다.
"간 좀 봐봐."
순간 어머니를 쳐다봤다.
"내가?"
"그럼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빨리 먹어봐."
신기했다.
내가 알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닌 것 같았다.
앞치마를 두르고 주방에 서 있는 어머니가 낯설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모습이 참 아름다워 보였다.
지금껏 어느 한가한 주말에도 제대로 보지 못했던 모습이었다.
더 이상한 건 아버지였다.
어머니가 부엌에서 음식을 하고 있는데 아버지는 소파에 앉아 TV를 보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달랐다.
어머니가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하면 아버지는 옆에서 한마디씩 했다.
"그냥 나가서 먹지 그래?"
"아직 멀었어?"
어머니의 음식이 싫었던 건지, 기다리는 게 싫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그날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심지어 늘 보던 야구도 아니었다.
예능 프로그램을 보며 소리 내어 웃고 있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음식을 만들고,
거실에서는 아버지가 TV를 보며 웃고 있었다.
나는 그 사이에 서 있었다.
이상했다.
내가 한 번쯤 꿈꿔봤던 집이 원래부터 이런 모습이었던 것처럼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어때?"
어머니의 말에 정신을 차리고 음식을 먹어봤다.
맛이 없었다.
역시나였다.
"왜 그래? 먹었으면 말을 해야지."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싱거웠다.
그렇다고 맛이 없다고 하면 모처럼 즐거워 보이는 어머니가 상처받을 것 같았다.
"뭘 더 넣으면 좋을까?"
그 말도 낯설었다.
어머니가 내게 음식 맛을 물어보고 있었다.
간장을 넣으라고 할까 하다가 그만뒀다.
그러면 또 내가 싫어하던, 무언가 둥둥 떠다니는 그 간장을 꺼낼 것 같았다.
한참을 고민하다 말했다.
"소금?"
어머니가 웃었다.
"소금이라."
그리고 정말 소금을 찾았다.
그게 뭐라고.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고개를 들었다.
눈물아, 들어가라.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그런 나를 다시 잡아끌었다.
"다시 먹어봐."
조금 전보다 짜졌을 뿐 여전히 맛은 없었다.
그래도 이번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까보다 나아."
"그래?"
어머니가 웃었다.
"들어가지 말고 식탁에 앉아 있어. 엄마가 부르면 빨리빨리 좀 도와줘."
나는 식탁 의자를 빼고 앉았다.
음식보다 더 달라진 것이 있었다.
어머니의 말투였다.
표정이었다.
그리고 아버지였다.
TV를 보던 아버지가 어느새 주방으로 걸어왔다.
"모처럼 모녀가 사이가 좋네."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나도 먹어보게 줘봐."
어머니도 웃었다.
아버지도 웃고 있었다.
나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
이혼한다던 사람들이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는 이 집에 살지 않았다.
어머니는 나만 보면 ‘너 때문에’라고 했다.
그런데 지금 두 사람은 같은 주방에 서서 음식 맛을 보고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아주 잠깐,
정말 아주 잠깐,
우리 집에 있었던 모든 일이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버지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고,
어머니가 이렇게 웃고,
곧 오빠까지 돌아오면,
우리도 다시 평범한 가족이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두 사람에게 말하고 싶었다.
그냥 이혼하지 말라고.
누가 잘못했는지,
누구 때문인지,
그런 건 이제 그만하고
그냥 지금처럼 같이 웃으면서 살자고.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그 말을 입 밖으로 내면
눈앞에 있는 이 장면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그래서 나는 아무 말 없이 식탁에 앉아
두 사람이 웃는 모습을 바라봤다.
오빠가 돌아오기 전,
우리 집은 잠시
내가 바라던 가족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오빠가 들어왔다.
어머니도 아버지도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으로 나가셨다.
"필승!"
오빠가 씩씩하게 인사하자 어머니가 가장 먼저 오빠를 끌어안았다.
"두 분, 절 받으세요."
오빠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거실에 자리를 잡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두 분께 큰절을 올렸다.
그러고 나서야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오빠의 눈이 커졌다.
달라진 집 안의 분위기를 오빠도 느낀 모양이었다.
나도 영문을 모르기는 마찬가지라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우와, 어머니. 저 온다고 이렇게 상 차리신 거예요?"
"그래. 네가 이렇게 오래 집 비운 적이 없었잖니. 너무 자주 나오면 이렇게 못 해준다. 어서 앉아. 먹자."
아버지도 말을 보탰다.
"방금까지 네 엄마 요리한다고 정신없었어. 그나저나 남자 돼서 왔냐? 군대 생활은 어땠어?"
아버지와 어머니, 오빠가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나는 그 모습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신기했다.
어머니 얼굴을 봤다가, 오빠 얼굴을 봤다가, 다시 아버지 얼굴을 봤다.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하나 눈치를 보느라 쉽게 끼어들지 못했다. 혹시 내게 말을 걸까 봐 닭볶음탕의 커다란 고기 한 점도 입에 넣지 못하고 젓가락으로 만지작거렸다.
그렇게 우리는 처음으로 내가 바라던 모습으로 함께 저녁을 먹었다.
"휴가 나왔는데 뭐 할 거니?"
"내일은 친구들 만나?"
"며칠 있다 들어가는 거야?"
질문이 쉴 새 없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오빠에게 용돈을 주셨고, 뜻밖에도 나에게까지 용돈을 주셨다.
식사가 끝났는데도 어머니와 아버지는 안방으로 들어가지 않으셨다.
어머니는 과일을 내오셨고, 아버지는 TV를 틀었다.
온 가족이 거실에 둘러앉아 과일까지 먹었다.
그날 우리 집은 정말 평범한 집 같았다.
방으로 들어오니 휴대전화에 문자가 와 있었다.
오빠였다.
[집 분위기 뭐야? 나 없으니까 집안 분위기 좋네~ 잘 지낸 거지? 아무 일 없었지?]
한참 답장을 쓰지 못했다.
오늘부터 갑자기 좋아진 거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아버지가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할 수도 없었다.
부모님이 이혼한다고 했다는 말은 더더욱 할 수 없었다.
몇 번이나 문장을 썼다가 지웠다.
결국 보낸 말은 짧았다.
[응. 좋아!]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그날만큼은 그 거짓말이 진짜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달콤했던 시간도 오빠의 4박 5일 휴가와 함께 끝났다.
오빠가 부대로 돌아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다시 집을 나갔다.
어머니는 다시 방으로 들어갔고, 집은 예전처럼 조용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과는 조금 달랐다.
나는 자꾸 그 며칠 동안의 어머니를 떠올렸다.
앞치마를 두르고 음식을 만들던 모습.
내게 간을 봐달라며 웃던 얼굴.
아버지와 같은 공간에서 웃으며 오빠를 맞이하던 모습.
전부 연기였을까.
그때의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의 마음을 조금 생각해보려 했던 것 같다.
어머니도 이혼하기 전에 단 한 번쯤은 우리가 평범한 가족처럼 살아보기를 바랐던 걸까.
군대에 간 오빠에게 아버지에 대한 기억만큼은 너무 나쁘게 남겨주고 싶지 않았던 걸까.
아니면, 그렇게 상처받고도 여전히 아버지를 사랑해서 헤어지는 일이 쉽지 않았던 걸까.
나는 알 수 없었다.
다만 그때 처음으로 생각했다.
그 며칠은 어머니에게도, 우리 가족이 헤어지기 전 마지막으로 가족답게 살아보는 시간이었던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