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나는 부모님을 이혼시킨 사람이다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던 날들- 상처#10

bybloom

※ 이 글에는 가족 갈등과 부모님의 이혼, 가족 안에서 주고받은 말로 인한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조용히 뒤로 가셔도 괜찮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오늘만 무료'로 공개되는 멤버십 글입니다.




시간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흘러갔다.

그날 밤 오빠가 꺼낸 부모님의 이혼 이야기도, 내가 어머니에게 쏟아냈던 말들도 우리 집에서는 다시 누구의 입에도 오르지 않았다. 말하지 않으면 지나간 일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에게도 고등학교 입시가 다가왔다.


준비 기간이 짧기도 했지만, 집에 들어가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주말에도 미술학원에 갔고, 늦은 시간까지 그림을 그렸다. 미술학원의 불은 좀처럼 꺼지지 않았다.

나는 실기시험을 치르는 예술고등학교를 준비했다.

시험 날, 시험지에 적힌 석고상의 이름을 확인했다.

제발 비너스만 아니었으면 했다.

줄리앙이었다.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미술학원에서 수도 없이 보고 그렸던 얼굴이었다. 연필을 잡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선을 긋고, 명암을 넣고, 눈과 코의 위치를 잡았다.

그동안 연습했던 시간이 손끝에서 하나씩 살아났다.

하지만 예고에는 합격하지 못했다.


대신 나는 디자인을 배울 수 있는 고등학교에 입학했다.

입학식 날에는 부모님도 함께 오셨다.

축하를 받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날만큼은 우리도 다른 집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오빠에게도 뒤늦게 합격 소식이 왔다.

원하던 1지망 대학은 아니었지만 2지망 대학에 추가 합격했다.


아버지도 그렇게 싫다던 외삼촌의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고, 원무과 과장이 되었다.

집을 짓누르던 돈 이야기도 전보다는 조금 줄어들었다.

나도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 갔다.


디자인과에 들어가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고, 컴퓨터그래픽스운용기능사 자격증도 땄다.

싸이월드에 끄적이던 글이 뜻밖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어느 날 내가 쓴 글을 광고 카피로 사용하고 싶다는 제안을 받았다.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혹시 사기는 아닐까 싶기도 했고, 미성년자였던 나는 혼자 계약을 할 수도 없었다. 결국 어머니와 함께 광고사를 찾아가 계약을 진행했다.

내가 쓴 몇 줄의 문장이 돈이 된다는 사실이 신기했다.

큰돈은 아니었지만 처음으로 내 글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다만 돈은 내 통장이 아닌 어머니의 통장으로 들어갔다.


언젠가 돈을 벌면 차곡차곡 모아두었다가 독립할 때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과 사업 실패로 집안 형편이 어려웠던 때였다.

내가 번 돈이 어머니의 통장으로 들어가는 걸 가만히 지켜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조금씩 모든 것이 나아지고 있는 것 같았다.


아버지는 일을 했고,
오빠는 대학생이 되었고,
나는 원하던 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부모님은 여전히 함께 살고 있었다.


그날 밤 우리가 쏟아냈던 말들만 꺼내지 않는다면 우리 집은 제법 평범한 가정처럼 보였다.

나도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 같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정말 괜찮아질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어머니의 입에서 자주 나오는 말이 하나 생겼다.


"너 때문에."

오빠가 1지망 대학에 떨어진 것도, 오빠가 가장 예민했던 고3 시기에 내가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라고 했다.

"너 때문에 오빠가 공부를 제대로 했겠어?"

처음에는 그 말이 아팠다.

자꾸 듣다 보니 나중에는 아무 말도 하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너 때문에’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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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법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고 싶어 용기를 내어 나의 꿈을 다시 꺼내봅니다. 조금 늦은 봄이지만 언젠가 꽃을 피우기 위해 오늘도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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