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나는 빨간 우체통에 비밀을 넣었다

이해할 수 없는 마음을 바라보다 — 의문#2

bybloom

※ 이 글에는 가정폭력과 가족 내 성적 침해, 부모님의 이혼 과정에서 겪은 상처와 트라우마에 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오래 묻어두었던 기억이나 감정을 떠올리게 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글을 마주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조용히 뒤로 가셔도 괜찮습니다.

괜찮으시다면 자신의 속도에 맞춰 천천히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 이 글은 '오늘만 무료'로 공개되는 멤버십 글입니다.




오빠의 휴가는 빠르게 흘러갔다.

그 며칠 동안 우리는 다른 집과 다를 것 없는 평범하고 온기 있는 가족을 함께 연기했다.

오빠는 몇 번이나 내게 물었다.

"진짜 별일 없었어?"

그때마다 나는 괜찮다고 했다.


정말 괜찮아서가 아니라, 그렇게 말해야 할 것 같아서.

오빠의 휴가가 끝나자 아버지는 다시 집을 나갔다.

그리고 집은 다시 조용해졌다.


그러던 어느 주말이었다.

아침부터 어머니가 분주했다.
오빠 면회를 가기로 한 날이었다.

고소한 참기름 냄새에 잠이 깼다.
눈을 비비며 주방으로 나가 보니 어머니가 또 음식을 하고 있었다.

김밥, 유부초밥, 샌드위치, 과일.

어머니는 준비한 음식들을 4단 도시락에 차곡차곡 담았다.
평소에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정성이었다.

집을 나서자 아버지는 이미 차에 시동을 걸어놓고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셋이 강원도로 향했다.

가는 동안에는 별말이 없었다.
그런데 오빠를 만나는 순간 우리는 또 가족이 되었다.

웃고, 안부를 묻고,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마치 어제까지도 한집에서 화목하게 살아온 사람들처럼.

그렇게 몇 번의 휴가와 몇 번의 면회가 지나갔다.

처음에는 이상했던 그 연극도 점점 익숙해졌다.


아버지가 돌아오면 오빠가 휴가를 나오는 것이고,
오빠가 부대로 돌아가면 아버지도 다시 집을 나갔다.

나는 어느 순간 그 규칙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어쩌면 이대로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진짜 가족이 아니어도,
아무도 소리 지르지 않고,
폭력에서 벗어나 살 수 있다면,

그렇게 조용히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아버지가 술에 잔뜩 취해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문이 열리고 아버지가 들어오는 모습을 보자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오빠가 휴가 나올 때가 됐나 보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머니가 없었다.

아버지만 돌아왔다.

아버지는 안방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거실에서 TV를 틀었다가 냉장고 문을 몇 번이나 열었다 닫았다 하더니 그대로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어머니가 늦으시나 보다.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나도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가위에 눌린 것처럼 몸이 무거웠다.

잠에서 깨 눈을 떴다.

그리고 내 위로 보이는 아버지의 머리를 보는 순간,

잠이 확 달아났다.


아버지가 내 잠옷을 벗기려 하고 있었다.

나는 일부러 크게 뒤척이는 것처럼 몸을 옆으로 돌렸다.

하지만 아버지는 멈추지 않았다.


그 순간 오빠의 말이 떠올랐다.

참지 마.

무슨 일 있으면 꼭 말해.

그리고 예전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얼어붙어 있던 내가 떠올랐다.

이번에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젠 참으면 안 돼.


베개 밑으로 손을 넣었다.

손끝에 휴대전화가 잡혔다.

있는 힘껏 움켜쥐었다.

그리고 아버지의 머리를 세게 내리쳤다.


"아이쿠! 아, 뭐야!"

아버지가 몸을 움찔했다.

나는 그 틈에 몸을 일으켰다.

휴대전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손이 떨렸다.

무서웠다.

그런데 이번에는 예전과 달랐다.

나는 자는 척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그대로 굳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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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사는 법보다 행복하게 사는 법을 찾고 싶어 용기를 내어 나의 꿈을 다시 꺼내봅니다. 조금 늦은 봄이지만 언젠가 꽃을 피우기 위해 오늘도 꿈을 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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