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를 모르고 견디는 아이 - 기억#1
그날도 이유 없이 맞았다.
나는 그때도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다.
말을 잘못한 걸까.
눈치를 못 본 걸까.
아니면
그냥 내가 있어서였을까.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혼자 이유를 찾기 시작했다.
말을 줄였다.
웃지 않았다.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 띄지 않으려고 애썼다.
울면 시끄럽다고 더 혼났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말이 없다고 혼났고,
입을 열면 말대꾸 한다고 혼났다.
울지 않으면
더 맞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소리 내어 울지 않는 법부터 배웠다.
방 안에 혼자 남겨지면 그제야 울었다.
숨을 참고,
이불을 뒤집어쓰고,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게.
아무 일도 없는 아이처럼 보이기 위해서.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어느 날은 맞고 나서도 왜 맞았는지보다
다음엔 어떻게 하면 안 맞을지를 먼저 생각하고 있었다.
그 순간 알았다.
아,
이게 익숙해지고 있구나.
눈에 띄어도 혼나고,
눈에 안 보여도 혼났다.
그래서 나는
적당히 보이면서
걸리적거리지 않는 사람이 되려고 애썼다.
분명 좋은 날도 있었을 텐데,
기억은 흐릿하다.
그래도,
지워지지 않는 기억들이 있다.
재래시장.
달고나에 정신이 팔려
엄마 손을 놓쳤던 날.
그 자리에 서서
목놓아 울고 있는데,
어디선가 엄마가 나타나
내 눈물을 닦아주며 말했다.
“그러길래 잘 따라다녀야지.”
그 말이
이상하게 따뜻하게 남아 있다.
또 하나.
초등학교 2~3학년 때,
생일선물로 부모님께 롤러브레이드를 받았다.
탈 줄도 모르면서 계단으로 내려가다
그대로 굴러 떨어졌다.
우당탕탕.
뒤따라오던 오빠가 뛰어 올라가 외쳤다.
“엄마, 아빠! 미영이 떨어졌어!”
그 말 한마디에 부모님이 뛰어나왔다.
아빠는 서둘러 나오느라
런닝에 반바지 차림으로
나를 등에 업고
곧장 병원으로 달렸다.
눈 밑에 여덟 바늘을 꿰맸다.
지금도 그 상처가 남아 있다.
그래도,
아빠 등에 업혔던 따뜻한 온기
행여 내가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던 눈빛
조금이라도 빨리 가려고 서두르던 모습은
모두 선명하다.
며칠 뒤,
다시 공원에 나갔다.
나는 또
롤러브레이드를 신고 나왔다.
“아빠… 나 봐라. 잘 타지?”
한참 신이 나 있었는데,
오토바이 소리를 듣는 순간 몸이 굳어버렸다.
결국 피하지 못했고,
나는 그대로 끌려갔다.
두꺼운 청바지도 찢어지고
살이 다 파였어도,
정신없이 아팠던 그 순간에도
아빠는 끝까지 쫓아가며 외쳤다.
“야! 사람치고 그냥 가냐! 너 어디서 나왔어!”
그리고 바로
“미영아, 괜찮아?”
그 목소리는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
몸은 아팠지만,
그날은 이상하게
마음이 덜 아팠다.
그때는 분명,
나도 아빠를 좋아했고
아빠도 나를 아꼈다.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사랑받고 있다고 느꼈다.
나도 애교가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리 집은
망가지기 전까지는 평범했다.
지금 생각하면
특별한 하루보다
평범한 일상이 더 행복한 거라는 걸 안다.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아버지는 야구를 하던 사람이었고,
어머니는 초등학교 교사였다.
그런데 아버지는 운동선수답지 않게
술을 좋아했다.
아니,
술을 마시기 위해
운동을 하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결국,
위암 판정을 받았다.
그때부터였다.
우리 집이
조금씩 무너지기 시작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