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나는 함께 있는 줄 알았다

상처를 모르고 견디는 아이 - 기억#2

bybloom

사실 나는 부모님과 함께 산 시간이 많지 않다.
그래서인지 좋은 기억보다 아픈 기억이 더 선명하다.


맞벌이였던 부모님 대신, 나는 어릴 적 큰엄마 집에서 자랐다.
여름방학, 겨울방학이 되어야 어머니가 나를 보러 왔고,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이 되어서야 같이 살게 되었다.


그전까지 나는 정말 몰랐다.

엄마가 누구인지.

“미영아, 니네 엄마 왔다.”

큰엄마의 그 말을 듣고서야 나는 엄마에게 이렇게 인사를 했다.


“니네 엄마, 안녕하세요.”

그만큼 우리는 낯선 사이였다.


엄마는 말했다.
큰엄마는 엄마가 아니고, 자기가 진짜 엄마라고.

하지만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왜 우리 엄마가 더 큰데, 큰엄마가 ‘큰엄마’인지.


그때 TV에서는 머털도사가 나오고 있었다.
요괴 때문에 묘선이가 똑같이 둘로 나뉘는 장면.

머털이는 질문을 하며 누가 진짜 묘선인지 가려냈다.

나는 그걸 보며 생각했다.

나도 해봐야겠다.


하지만
어릴 적 내가 할 수 있는 질문이라곤
고작 이런 것들뿐이었다.

“내 생일은?”
“내 이름은 누가 지어줬어?”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은?”

나는 그게 꽤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는 질문들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하나하나 대답해 줬다.

잠깐의 망설임도 없이.


어머니는 많이 서운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어쩌면
큰엄마와 살던 그 시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평범하고 행복했던 시간인지도 모른다.




아빠가 야구를 할 때면 가족들은 다 같이 응원을 갔다.

그땐 집안 분위기도 나쁘지 않았고,

나 역시 그런 아버지가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야구가 끝나면 자연스럽게 술자리가 이어졌다.

아버지는 사람들 사이에서 중심이었고,
나는 그 옆에서 불려 다녔다.


“미영이 왔어?”
“아빠 잘 보고 있어?”

아빠는 운동을 하면서도 몇 번이나 내 쪽을 돌아봤고,
그때마다 나를 불렀다.

나는 그게 싫지 않았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괜히 더 똑바로 앉게 됐고,
더 잘 보고 있는 척을 했다.


사실은 야구보다 치어리더를 더 열심히 보고 있었으면서도.


하지만 엄마는 그 자리를 좋아하지 않았다.
야구가 아니라, 그 이후가 문제였으니까.


“미영아, 웃어야지.”
“여기 앉아봐.”
“노래 하나 해봐.”
“술도 좀 따라봐라.”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잘 모르겠다.


“여기 앉아봐.”
“아빠 옆에 와야지.”

나는 자연스럽게 그 사이에 앉았다.


술잔이 오갔고,
웃음소리가 더 커졌다.

누군가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렸고,
누군가는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는 가만히 있었다.


가끔은 몸이 조금 밀리기도 했고,
자세를 고쳐 앉아야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으니까.


“노래 하나 해봐.”
“아는 거 없냐?”

나는 기억나는 노래를 하나 불렀다.

박수가 들렸고, 누군가는 웃으면서 돈을 쥐여줬다.


“잘하네.”

나는 같이 웃었다.

왜 웃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냥,
그래야 할 것 같아서.


그리고 그 순간에도 나는 계속 생각했다.

아빠가 보고 있을까. 내가 잘하고 있는 걸.


그렇게 웃고, 인사하고,
시키는 걸 다 하고 나면
주머니에는 항상 용돈이 들어 있었다.

그게 조금은 기분 좋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웃었다.


언젠가는 노래를 부르다가
고개를 들었는데,

아빠는 보이지 않았다.

언제 자리에서 일어났는지도 몰랐다.

주변을 둘러봤다.


사람들은 여전히 웃고 있었고,
술잔은 계속 오가고 있었다.

아무도 내가 두리번거리는 걸 신경 쓰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서 혼자.


엄마를 찾았지만 없었다.
오빠도. 없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엄마와 오빠는 매번 먼저 집에 가고 없었다.


나는 그제야 알게 됐다.

나는 함께 있었던 게 아니라,
남겨져 있었던 거라는 걸.


그저 사람들이 많고, 소리가 크고,
웃음이 있는 그 자리가 좋았다.

아빠 옆에 앉아 있으면 나는 그 안에 끼어 있는 사람이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더더욱 그 자리에 남고 싶었다.


아빠와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종종 이런 말을 들었다.

“니네 엄마는 왜 그러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빠는 술에 취해 있었고,
나는 그 옆을 조용히 걸었다.


집에 도착하면 아빠는 거실 소파에 그대로 누워버렸고,
나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는 언제나 깨어 있었다.

그리고 늘 그랬듯,
내 주머니부터 확인했다.


“용돈 받았지? 내놔봐.”

나는 아무 말 없이 돈을 꺼냈다.


엄마는 그걸 세어보고, 아무렇지 않게 가져갔다.


“엄마가 모아줄게.”

그 말은 늘 같았고,
그 뒤도 늘 같았다.

돈은 다시 돌아온 적이 없었다.

나는 묻지 않았다.


대신, 그렇게 생각했다.

아,
나는 오늘도 잘한 거구나.

그래서 돈을 받은 거구나.


하지만 그때부터
이런 생각도 함께했다.

엄마는, 오빠만 좋아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믿었다.
이 정도는 다들 사는 모습이라고.

하지만 아니었다.

아버지는 술자리를 계속 이어갔고,
결국 사람들을 집으로 데려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엄마도 함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엄마와 오빠는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미영아, 니네 엄마 뭐 하니.”
“자면 깨워봐라.”

몇 번 부르다 포기하면

그다음은 늘 내 차례였다.

숟가락을 놓고, 안주를 준비하고,
술과 담배 심부름을 하고.

나는 점점 그 자리를 대신하는 사람이 되어갔다.

그렇게 술로 이어진 시간 끝에
아버지는 결국 쓰러졌다.


암이었다.

“위암 3기입니다.”

위 일부를 절제해야 한다는 말.
죽을 수도 있다는 말.

어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길래 술 좀 그만 마시지.”

울지 않았다.
그래서 나도 울지 못했다.

그때의 나는 그래도 아버지가 죽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때가 끝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
그때 끝났다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

그 이후로 우리 집은 정말 빠르게 무너졌다.


그때는 몰랐다.

그게 시작이 아니라
끝에 가까워지고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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