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장. 주저앉았던 날, 다시 일어난 이유

by자신을사랑하기

주저앉는다는 것은 넘어지는 것과 조금 다르다. 넘어지는 것은 무언가에 걸려서 일어나는 일이지만, 주저앉는 것은 걸린 것이 없는데도 더는 서 있을 힘이 없어서 그냥 앉아 버리는 일이다. 그래서 이유를 대기가 어렵다. 누가 왜 그러느냐고 물어도 대답할 말이 없고,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지 못하는 날이 있다.


그런 날에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밥을 먹는 것도, 연락을 받는 것도, 내일을 생각하는 것도 다 버겁다. 해야 할 일이 눈앞에 쌓여 있는데도 손이 가지 않는다. 나는 그런 나를 처음에는 나무랐다. 왜 이것밖에 못 하느냐고, 다들 하는 일을 왜 나는 못 하느냐고. 나무랄수록 일어나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


돌이켜 보면 다시 일어난 이유는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결심이나 깨달음 같은 것은 없었다. 내가 필요하니 다시 일어나 움직였을 뿐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가도 아이들이 부르는 소리에 몸이 다시 움직였다. 다시 일어서는 데 필요했던 것은 큰 이유가 아니라 아주 작은 이유 하나였다.


촛불이 꺼진 직후를 본 적이 있다. 불꽃은 사라졌지만 심지 끝에는 가느다란 연기가 한참 피어오른다. 그때 다른 불꽃을 가까이 가져가면 연기 위로 불이 다시 옮겨붙기도 한다. 꺼졌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아직 불씨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 주저앉은 날의 내 안에도 그런 불씨가 남아 있었다고 생각한다. 보이지 않았을 뿐, 완전히 꺼진 것은 아니었다. 다시 일어난다는 것은 새 불을 켜는 것이 아니라 남아 있던 불씨에 작은 불꽃을 가져다 대는 일이었다.


그 작은 불꽃은 혼자서는 잘 오지 않았다. 아이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 무심코 건네는 말 한마디가 그런 불꽃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주저앉아 있다는 것을 몰랐을 것이다. 그저 평소처럼 나를 찾았을 뿐인데, 그 부름이 나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혼자 일어나는 것이 대단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은 대개 누군가의 작은 불꽃을 빌려서 일어난다. 도움을 받는 것은 약해서가 아니다. 불씨는 남아 있어도 불꽃은 남에게서 옮겨 와야 할 때가 있다.


일어났다고 그 뒤가 늘 평탄한 것은 아니다. 며칠 뒤 다시 주저앉는 날이 오기도 한다. 그럴 때 나는 예전처럼 나를 나무라지 않으려 한다. 주저앉는 것도 살아 있는 사람이 하는 일이고, 앉아서 숨을 고르는 시간도 길 위에 있는 시간이다. 다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은 쉬는 것이다. 그러다 또 작은 이유 하나가 눈에 들어오면 일어나면 된다.


지금도 힘든 날은 온다. 그래도 오늘 나는 일어나 있고, 불씨는 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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