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장. 사람 때문에 아픈 날

by자신을사랑하기

살면서 가장 오래 남는 아픔은 대개 사람에게서 온다. 일이 힘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잊히기도 하는데, 누군가의 한마디는 몇 년이 지나도 문득 떠오른다. 무심코 던진 말, 나를 빼놓고 웃던 자리, 기대했던 사람의 뜻밖의 얼굴. 아픈 것은 그 일 자체보다 그 일이 나에 대한 무언가를 말해 주는 것 같아서일 때가 많다.


그런 날은 하루가 그 사람에게 붙들려 있다. 그때 그 말을 왜 했을까, 나는 왜 아무 말도 못 했을까, 이렇게 대답했더라면 어땠을까. 장면을 되감고 또 되감는다. 그런데 되감는 동안 상대는 자기 하루를 살고 있다. 그 말을 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아픈 쪽만 그 장면 속에 남아 있다.


이 사실이 나는 오래 억울했다. 아픈 것은 나인데 시간까지 나만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되감는 시간에도 내 초는 똑같이 녹고 있었다. 상대가 가져간 시간이 아니라 내가 내어 주고 있는 시간이었다. 억울하다는 마음은 당연하지만, 그 억울함을 붙들고 있을수록 잃는 것은 내 하루였다.


그래서 놓아준다는 말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놓아준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뜻이 아니고 없던 일로 한다는 뜻도 아니다. 그 일이 잘못이었다는 사실은 그대로 있어도 된다. 놓아준다는 것은 그 장면에 묶여 있던 내 시간을 조금씩 돌려받는다는 뜻이다. 상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해서 하는 일이다. 마음에서 곧바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 되감다가 문득 알아차리는 날이 있고, 알아차렸다면 그날은 벌써 절반을 한 것이다.


모든 사람을 이해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이해하려고 애쓰는 일에도 힘이 들고, 끝내 이해되지 않는 사람도 있다. 이해하지 못한 채로 거리를 두는 것도 나를 지키는 방법이다. 촛불도 너무 가까이 두면 데고, 너무 멀리 두면 온기가 닿지 않는다. 사람 사이에도 서로 데지 않으면서 온기가 닿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는 사람마다, 관계마다 다르고 같은 사람과도 시기에 따라 달라진다.


다만 한 가지는 말해 두고 싶다. 참을 수 있는 아픔과 참지 않아도 되는 아픔은 다르다. 같은 사람에게서 반복해서 상처를 받고 있다면, 그것은 내가 예민해서가 아니다. 그럴 때는 거리를 두어도 되고, 주변에 도움을 구해도 되고, 필요하면 전문가와 이야기해 보아도 된다. 사람 때문에 아픈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할 이유는 없다.


나도 누군가에게 사람 때문에 아픈 날을 만들어 주었을 수 있다. 의도하지 않았어도, 무심한 말 한마디가 누군가의 하루에 오래 남았을지 모른다. 그것을 떠올리면 아픈 마음이 조금 부드러워진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게 아픔이 되기도 하고 불빛이 되기도 하는 사람들이다.


사람 때문에 아픈 날이 있는 만큼, 사람 덕분에 견딘 날도 있었다. 불을 데게 하는 것도 사람이고, 꺼진 불에 다시 불을 옮겨 주는 것도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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