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장. 아무도 몰라주는 하루

by자신을사랑하기

하루를 마치고 돌아와 앉으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오늘 내가 무엇을 견디고 왔는지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하루 종일 애썼는데 누구도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알아 달라고 말할 기회도 없이 하루가 끝난다.


몰라주는 하루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애써서 해낸 일이 당연한 일처럼 지나가는 날이 있다. 실수 없이 마무리한 일은 티가 나지 않고, 문제가 생겨야 비로소 눈에 띈다. 아무 일 없이 굴러가는 하루 뒤에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수고가 있는데, 그 수고는 아무 일이 없다는 사실 속에 묻힌다. 또 어떤 날은 마음속에서만 큰일이 있었다. 겉으로는 평소와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으니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고, 나도 굳이 말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면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된다. 밀린 집안일이 기다리고 있고, 아이들 앞에서는 애써 웃는 얼굴을 짓는다. 그렇게 다 해내고 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오늘 하루도 참 열심히 살았구나, 애썼구나. 그 애씀을 알아주는 사람은 나 하나뿐일 때가 많다.


이런 날이 서운한 것은 당연하다. 대단한 칭찬을 바라는 것이 아니어도 "오늘 고생했네" 하는 한마디쯤은 듣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을 바라는 마음은 욕심이 아니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진 마음이다. 그 서운함을 못난 마음으로 밀어내지 않았으면 한다.


다만 몰라주는 하루는 사라진 하루가 아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방에서도 촛불은 탄다. 보는 사람이 없다고 불이 꺼지지 않고, 보는 사람이 있어야 빛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 내가 견딘 것, 참은 것, 해낸 것은 알아주는 이가 없어도 오늘 안에 분명히 있었다. 적어도 한 사람은 그것을 안다. 오늘을 통과해 온 나 자신이다.


그래서 자기 전에 내 어깨를 한 번 다독인다. 오늘 고생했어. 한마디면 된다. 누가 해 주지 않으면 내가 나에게 해 준다.


그렇다고 모든 것을 혼자 알고 혼자 지고 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들이 몰라주는 이유는 무관심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가 말하지 않아서인 경우도 많다. 힘들었다고 말하는 것이 어색하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될까 망설여지고, 괜히 짐이 될까 싶어 삼킨다. 그러다 보면 알아줄 수 있는 사람도 알 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주 작게라도 꺼내 놓아 본다. "오늘 좀 힘들었어." 이 한마디면 된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되고, 해결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그 한마디를 들어 주는 사람이 곁에 한 사람만 있어도 하루의 무게는 눈에 띄게 달라진다.


반대로 지금 내 곁의 누군가도 아무도 몰라주는 하루를 보내고 있을지 모른다. 늘 웃는 얼굴로 인사하는 사람, 조용히 자기 몫을 해내는 사람, 아무렇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이 그렇다. 내가 먼저 그 하루를 알아봐 줄 수 있다면, 오늘 나는 누군가의 몰라주는 하루에 불을 하나 켜 주는 셈이다. 고생했다는 말은 거창하지 않고, 받는 사람에게는 오래 남는다.


오늘 하루를 아무도 몰라도 괜찮은 날이 있고, 누군가 알아주었으면 하는 날이 있다. 어느 쪽이든 오늘은 분명히 있었고, 나는 그 하루를 지나왔다. 그것을 나는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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