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딘다'는 말은 조용하다. 무언가를 이루는 것도, 만들어 내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 자리에서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일처럼 들린다. 그래서 견디는 하루를 보낸 날에는 오늘 내가 한 일이 없다는 기분이 든다.
그런데 견디는 날이 가장 많은 힘을 쓰는 날일 때가 있다. 겉으로는 평소와 같은 얼굴로 일하고, 밥을 먹고, 사람들과 말을 주고받는다. 속으로는 계속 무언가를 붙잡고 있다. 집에 돌아와 현관문이 닫히고 나서야 어깨가 툭 내려앉는 날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없어도 하루치의 몫을 분명히 해낸 날이다.
견디는 것도 사는 일이다. 기쁜 날만 살아낸 날이 아니고, 잘 해낸 날만 살아낸 날이 아니다. 버티기만 한 하루도 하루만큼 산 것이고, 그 하루가 있었기에 다음 날 아침이 온다. 견디는 동안에도 불은 타고 있다.
참는 일에 대해서도 말해 두고 싶다. 참는 것과 눌러 담는 것은 다르다. 올라오는 마음을 한 번 숨 고르며 지나가게 두는 참음은 나를 지켜 준다. 반대로 말해야 할 것을 계속 삼키고, 부당한 일까지 아무 말 없이 받아 내는 참음은 나를 조금씩 상하게 한다. 견딘다는 말이 어떤 상황도 그냥 감수하라는 뜻은 아니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말하고, 나눌 수 있는 짐은 나누고,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있으면 구하는 것도 견디는 일의 일부다.
혼자 지는 짐이 아니어도 되는 것이 많다.
예전에 윤상과 故 신해철이 노땐스(No Dance)라는 이름으로 함께 부른 라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다. 달리다 보면 지겹고 힘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순간이 온다고, 그래도 이미 시작한 길이니 어쩌겠느냐고 노래는 말하는 듯했다. 그러면서 이 길에 끝이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약속이라고. 그 말이 이상하게 위로가 되었다. 지금 이 구간이 영원하지는 않다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그 노래를 들으며 생각했다. 숨이 찬 것은 잘못 살고 있어서가 아니라 달리고 있기 때문이라고.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은 숨이 차지 않는다. 걷다가 멈춰서 숨을 고르는 것도 달리기의 일부이고, 앞선 사람을 따라잡지 못해도 내 걸음은 내 걸음이다. 지금의 힘겨움이 나에게만 유난히 무겁게 느껴져도, 그것은 내가 이 길을 계속 걷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월요일 아침에는 언제 금요일이 되나 싶다. 그런데 지나고 보면 어느새 금요일이 되어 있다. 아침이다 싶어 시계를 보면 퇴근 시간이다. 견디는 동안에는 시간이 더디게 가는 것 같은데, 지나 보면 그렇지도 않았다.
그리고 이 힘든 구간에도 끝이 있다. 언제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지금과 같은 무게가 영원히 같은 크기로 머물지는 않는다. 모퉁이를 돌고 나면 길이 조금 넓어지는 때가 있고, 어느 날 문득 전보다 숨이 편해졌음을 알게 되는 때가 온다. 그때까지 필요한 것은 결승선을 바라보는 눈이 아니라 다음 한 걸음을 내딛는 발이다.
오늘은 다음 한 걸음까지만 가면 된다. 불이 흔들리는 날에도 나는 그 불을 들고 걷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