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씻고, 같은 길로 나서고, 같은 자리에서 비슷한 일을 하고, 비슷한 시간에 돌아와 밥을 먹고 잠자리에 든다. 내일도 아마 그럴 것이다. 하루가 하루를 복사한 것처럼 이어질 때, 힘든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무 일도 없어서 지치는 날이 있다.
이런 지침은 이름을 붙이기 어렵다. 큰 슬픔이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털어놓을 만한 사건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더 말하기 조심스럽다. "그냥 좀 지쳐" 하고 말하면 "다들 그렇게 살지" 하는 대답이 돌아올 것 같다. 맞는 말이다. 다들 그렇게 산다. 그렇다고 내 피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반복은 힘이 세다. 한 번은 견딜 수 있는 일도 백 번, 천 번 되풀이되면 사람을 닳게 한다. 물방울이 바위에 구멍을 내듯 같은 하루의 무게가 마음을 조금씩 깎아 낸다. 그런데 반복은 반대의 일도 한다. 우리를 붙들어 주는 것도 대개 반복이다. 매일 눈을 뜨고, 밥을 먹고, 누군가의 얼굴을 보는 일이 흔들리는 날에도 나를 제자리에 세워 준다. 반복은 지치게도 하고 붙들어 주기도 한다.
지친다는 것을 나쁘게 보지 않으려 한다. 게을러서 지치는 것이 아니라 오래 꾸준히 해 왔기 때문에 지친다. 같은 하루를 성실하게 지나온 사람만이 같은 하루에 지칠 수 있다.
수반에 촛농이 차오르면 초가 더 무겁게 느껴진다. 그 무게를 덜어 내려고 몸부림치듯 촛농을 털어 내기도 한다. 그러면 수반은 가벼워지지만, 그 몸부림 때문에 초가 오히려 더 빨리 타들어 가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지친 마음을 억지로 밀어내려 애쓰는 것도 그렇다. 서둘러 털어 내려는 몸부림이 오히려 나를 더 지치게 할 때가 있다.
그런데 똑같아 보이는 하루도 자세히 보면 똑같지 않다. 촛불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다. 바람 한 점 없는 방에서도 불꽃은 한순간도 같은 모양이 아니다. 조금 기울었다가 곧아지고, 밝아졌다가 잦아든다. 멀리서 보면 늘 같은 불 같아도 가까이서 보면 계속 다른 불이다. 하루도 그렇다. 같은 길을 걸어도 오늘은 바람이 다르고, 같은 밥을 먹어도 오늘은 맛이 다르고, 같은 사람을 만나도 오늘은 표정이 다르다. 다만 지쳐 있으면 그 작은 다름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그래서 똑같은 하루에서 다른 점을 하나만 찾아본다. 큰 것이 아니어도 된다. 오늘 하늘의 빛깔, 우연히 들린 노래 한 소절, 밥 한 술의 온기, 누군가 건넨 짧은 안부. 그 하나를 찾으면 오늘은 어제의 복사본이 아니라 오늘이 된다. 힘들기도 하고 기쁘기도 한 것이 하루인데, 지친 날에는 기쁨 쪽이 작게 접혀 있을 뿐이다. 찾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런 날은 찾지 못한 대로 지나가도 괜찮다. 하루를 무사히 마쳤다는 것도 이미 오늘만의 일이다.
오늘의 불도 어제의 불과 닮았다. 그러나 어제의 불은 아니다. 오늘은 오늘의 불이 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