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프 인테리어가 낯선 이웃에게 미치는 영향
며칠째 이 시간이면 나는 숨을 참는다.
"하나, 둘, 셋……."
엘리베이터 층수 표시기에 불빛이 하나씩 바뀐다. 나는 고개를 든 채 숫자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땡!
문이 열림과 동시에 바로 앞 뿌연 시야를 확인했다. 나는 재빨리 한 손으로 패딩 깃을 세워 아기띠 속 둘째의 얼굴을 최대한 가렸다. 그리고 첫째를 향해 다급하게 외쳤다.
"손으로 입 막아!"
나는 숨을 참으며 얼른 첫째의 손을 잡아끌었다. 그러고는 쏜살같이 반 층 계단을 뛰어올라 현관문을 열었다.
엘리베이터를 기준으로 반 층 위아래, 'ㄷ'자 구조로 이어진 복도와 계단에는 이미 뿌연 먼지가 자욱했다. 마치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던 80년대 최루탄이 터진 거리를 연상시켰다. 잠깐 지나가는 사이에도 눈은 따갑고 목은 매캐했다. 얼른 집 안으로 몸을 피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서둘러 아이들을 화장실로 데려가 손과 얼굴부터 씻겼다. 첫째는 눈이 따갑다며 연신 칭얼거렸다. 둘째는 일단 가제수건에 물을 적셔 얼굴과 손을 꼼꼼히 닦아주었다. 너무 박박 문질러서 아픈 건지 싫은 건지 아이는 얼굴을 이리저리 피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이게 무슨 난리인가 싶지만, 벌써 며칠째 반복되는 일상이었다.
우리 집 대각선 아래층에서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시작은 그로부터 일주일 전, 모스크바에 온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보내기 시작하면서 비로소 우왕좌왕하던 우리 가족의 생활도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전쟁 같은 등원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아침에 있었던 육아 전투로 폐허를 방불케 한다. 거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아동용 바카라과 자잘한 장난감으로 어지럽지만, 집 안 공기만큼은 고요했다.
둘째를 제일 먼저 바운서에 눕혀두고, 그 옆 거실 바닥에 채 아기띠를 풀지도 못한 채 철퍼덕 주저앉았다. 혼자 '아이고야' 곡소리를 내며 목 뒤와 어깨, 허리를 주먹으로 연신 두들겼다. 아이가 점점 무거워진다는 건 그만큼 잘 크고 있다는 뜻일 터였다. 하지만 이대로 가다간 한국에 돌아가기도 전에 내 어깨와 허리가 수명을 다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무렴 어떠랴. '내가 한 선택인데.' 오늘도 별일 없이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긴장이 풀리며 한시름 놓이는 듯했다.
허기가 밀려왔다. 돌아오는 길 동네 가게에서 사 온 케밥이나 샌드위치를 꺼내 순식간에 게 눈 감추듯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 옆에 누운 아이가 '엄마만 먹냐'는 듯 입맛을 다시며 나를 빤히 바라보면 괜스레 미안해졌다. 욱여넣은 빵 때문에 터질 듯 부풀어 오른 입은 쉴 새 없이 움직이며 "미안, 엄마도 먹어야 힘이 나지." 뭉개진 발음으로 사과하고 멋쩍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래도 한 번씩 바운서를 흔들어 주고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는 이 짧은 점심시간이 나에게는 소박하지만 하루 중 가장 평화로운 시간이었다.
둘째에게 분유를 먹이고 조심스러운 몸짓으로 낮잠까지 재우는 데 바로 성공하면 그날은 꽤 운이 좋은 편이었다. 또 하나의 허들을 넘은 셈이었으니까.
바쁘다, 바빠.
그 사이 밀린 집안일을 하고 저녁때 먹을 반찬도 미리 만들어야 했다. 다행히 둘째는 한 번 잠이 들면 좀처럼 깨지 않는 순둥이였다. (물론 과거형이다. 그 '순둥이'는 어느새 과. 거. 속 인물이 되어버렸다.)
아이가 두어 시간 자는 동안 빠듯하게 계획해 둔 일을 부지런히 해치우고 나면 어느새 첫째를 데리러 갈 시간이 되었다. 시계를 한 번씩 확인하며 서둘러 바닥 걸레질에 박차를 가했다. 어느새 둘째가 "엥~" 하는 소리와 함께 일어났다고 신호를 보냈다. 급히 기저귀를 확인하고 따뜻한 분유를 데워와 아이를 품에 안았다. 수유를 하며 곧 나갈 타이밍을 가늠해 보았다. 집도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고 잘 마른 빨랫감도 제 자리를 찾아 개어져 있다. 이렇게 나름 수월한 그 평화로운 오후는 모두 둘째의 소중한 낮잠 시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평화의 시대'가 이리 허무하게 짧을 줄은, 그땐 미처 몰랐다.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다고 생각했다. 보통 아이를 겨우 재우고 침대에 눕힐 때까지가 가장 큰 고비다. 육아에 '등센서'라는 말이 왜 있겠는가. 아이 목과 머리를 단단히 받치고 최대한 완만한 각도로 숨을 참으며 함께 몸을 기울였다. 침대 매트리스 위에 아이를 어떠한 꿀렁임도 없이 부드럽게 안착시키는 게 가장 힘들었다. 휴.... 괜찮은 건가. 아이는 여전히 눈을 감고 새근새근 공갈젖꼭지를 규칙적으로 빨고 있었다. 몇 번 가슴을 토닥이고 살살 몸을 떼는 건 고난도 과정이었다. 잔다. 우와, 단번에 성공! 살금살금 방을 빠져나오며 속으로 승자의 미소를 짓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드르륵! 드르륵!
쿵쿵 쿵쿵!
쾅! 쾅! 쾅!
쨍그랑! 쨍그랑!
갑자기 온 집 안에 벽이 흔들리며 예상치 못한 진동이 전해졌다. 이어 아파트 건물을 통째로 후려치는 듯한 굉음이 집 안을 뒤흔들었다.
쾅! 쾅! 쾅! 왱~ 왱~
"앗, 뭐지?!"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굉음에 놀람과 동시에 공포감이 먼저 밀려왔다.
소음은 잠시 멈췄다가 다시 시작되었다. 뜻밖의 상황에 혼자 집 안에서 잠시 우왕좌왕하다 일단 앞치마를 벗어놓고 아기띠와 외투부터 챙겼다. 무슨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나갈 준비부터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잠시 사방이 조용해졌다.
'끝났나?'
나는 겁도 없이 현관 걸쇠만 걸어둔 채 문을 빼꼼히 열어 복도의 동태를 살폈다. 다행히 별다른 이상한 기척이나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뭐였지? 건물에 무슨 일 생겼나?'
좀 더 살펴보려 문을 더 열려던 순간.
쾅! 쾅!
다시 매캐한 냄새가 훅 끼치며 건물 안에 굉음과 진동이 연달아 전해졌다. 나는 화들짝 놀라 문을 닫고 안으로 물러섰다. 반사적으로 현관문에서 한참 떨어진 곳까지 뒷걸음질 쳤다. 잠시 뒤 용기를 내어 도어뷰어로 내다본 복도는 이미 뿌연 먼지로 자욱했다. 아래층에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5분쯤 지나 소리가 잦아들자 일단 다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상황을 알아야 아이를 데리고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반 층 아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더니 허름한 작업복 차림의 인부 네댓 명이 장비와 함께 우르르 내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아래층으로 향했다. 나도 살금살금 벽에 붙어 계단을 조금 내려가 건너편 상황을 살폈다. 혼자 첩보 영화를 찍는 사람처럼 발소리를 죽이며 두리번거렸다.
다행히 사람들은 자기 일에 정신이 팔려 내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집 안에서는 돌과 깨진 타일등을 담은 포대 자루를 부지런히 밖으로 나르고 있었고, 엘리베이터에서 아래층으로 이어지는 계단에는 시멘트 포대와 각종 자재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반 층쯤 더 내려가서야 상황이 대략 이해됐다.
아랫집에서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한 모양이었다.
'오, 마이 갓.'
놀란 마음을 가라앉히며 남편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여보, 우리 아래층에서 공사하는 것 같아. 혹시 집주인한테 뭐 들은 거 있어?"
"아니? 그런데 러시아도 주변 이웃에게 공사를 의무적으로 공지하는지는 잘 모르겠네.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집 앞에 무슨 조그마한 종이가 붙어 있던 것 같은데, 그게 그건가? 뭔지 몰라서 그냥 떼어버렸는데."
광고지인 줄 알았다는 남편도 긴가민가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한국처럼 엘리베이터에 공지문을 붙이거나 아래, 위층 입주민에게 찾아가 미리 동의를 구하는 문화가 이곳엔 드문 듯했다. 현관 앞에 붙어 있던 종이 한 장이 아마 유일한 사전 공지였을 것이다.
이런…. 낭패였다.
하지만 어쩌겠나. 본인이 자기 집을 공사하는데 우리가 막을 방법은 없지 않은가.
"그래? 한 일주일만 참으면 될까? 아파트 복도가 지금 먼지로 자욱해. 계속 뭐 때려 부수는 소리도 나는데 너무 시끄러워. 간단한 공사가 아닌가 봐. 낮에도 계속 이러면 애가 낮잠도 아예 못 잘 것 같은데 어떡하지? 계속 밖에 나가 있을 수도 없고."
반복적으로 울려 퍼지는 드릴 소리에 내 목소리도 점점 커졌다. 남편은 옆자리 현지 직원들에게 잠시 상황을 묻는 듯했고, 수화기 너머로 두런두런 말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잠시 후 남편이 다시 수화기 너머로 입을 열었다.
"글쎄…. 러시아는 공사를 시작하면 금방 안 끝난다네. 집주인이 직접 하면 대략 두 달에서 석 달 이상도 하나 봐."
"두세 달?!"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다. 건물을 새로 짓는 것도 아니고 집 안 인테리어 공사인데, 이런 상태로 석 달을 버텨야 한다니.
설마...
남편과 동료들이 잘못 알고 있기를 바랐지만, 불길한 예감은 늘 그냥 빗나가질 않는다. 나중에 듣기로 러시아에서도 골조만 남은 상태로 분양받아 벽과 배관, 바닥까지 소유주가 직접 시공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전문 업체가 투입되어 단기간에 처음부터 끝까지 마무리하는 한국과 달리, 집에 거주하면서 조금씩 고쳐나가는 방식이라 공사가 몇 달씩 이어지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같은 아파트에서 석 달 가까이 이런 소음을 낸다면 과연 누가 견딜 수 있을까.
하지만…… 여긴 러시아였다.
언제 어디서든 내 상식 밖의 일들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그날 느낀 불길한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내게 모스크바에서 편히 있을 곳은 여기밖에 없었는데.... 집에 돌아오는 일이 점차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창밖에는 오후로 접어들수록 매서운 바람이 불고, 집 앞은 소음과 먼지로 화생방을 방불케 했다. 안에도, 밖에도 마음 편히 쉴 곳이 없었다. 더구나 아이까지 데리고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밖을 떠돌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럴 때 친정이나 친한 친구 집이 가까이 있었다면 몇 시간이라도 신세를 졌을 텐데, 이곳에는 그만큼 편하게 기댈 사람이 없었다. 설령 피신할 곳이 있다고 해도 현실적으로 매일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건 달라지지 않았다. 빨래와 청소는 물론이고 둘째 이유식을 비롯해 저녁 식사 준비도 빼놓을 수 없었다.
안 그래도 빠듯하게 돌아가던 오후의 루틴은 완전히 무너졌다. 나 같은 파워 J에게 생활 속 루틴은 정말로 절실한 것이었다. 이러다 애써 잡아가던 멘탈도 아랫집 공사판처럼 붕괴될 판이었다.
그렇지만 다른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선택지는 하나. 마음을 단단히 먹고 버티는 것뿐이었다.
둘째가 조금 걱정되긴 했지만, 얼마간 견디다 보면 언젠가는 끝나겠지 하는 마음뿐이었다.
'한 일주일만 참으면 되지 않을까…….'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야무진 기대였는지 모른다.
공사가 시작된 첫 며칠은 하루에도 몇 시간씩 드릴 소리와 벽을 깨부수는 소리가 집 안을 뒤흔들었다. 어떤 날은 진동 때문에 어금니가 울리는 것 같더니 머리까지 지끈거렸다. 몇 시간씩 이런 소음과 진동을 견디다 보면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도 흑화 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데 의외인 건 우리 집 둘째였다. 분유를 한 병을 비우고 나면 처음 잘 때만 좀 힘들지 어느 정도 후부터는 요란한 드릴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곤 했다. 역시 신생아의 수면의지는 생각보다 강력한 모양이었다. 물론 아주 큰 소리가 '쾅!' 하고 울리면 깜짝 놀라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지만 말이다.
참아보려 노력했지만 정말 견디기 힘든 날이면 반찬을 만들다 말고 나부터 살고자 옷부터 챙겨 입었다.
'아.... 나도 모르겠다.'
잔뜩 골이 난 상태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왜 현관문은 계속 열어놓고 작업을 하는 건지, 복도는 여전히 화생방을 방불케 하는 먼지로 자욱했다.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러 계단을 내려가다 말고 공사 중인 집 앞을 한참 노려봤다. 일주일 넘게 소음과 먼지에 시달렸으니 이 정도 눈총은 줄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열린 현관 안에서 그 집 여주인과 눈이 마주쳤다. 예전에도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어 눈인사를 건넸으나 무표정하게 응수했던 그 사람.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건 간에 낯이 익으니 내가 같은 건물 주민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힐끔 나를 쳐다보더니 아무 일도 관심 없다는 듯 묵묵히 벽돌을 정리할 뿐이었다.
다른 이웃들은 아이들을 보면 먼저 인사를 건네거나 예쁘다고 한 마디씩 해주곤 했는데, 생각해 보니 이 집 사람들과는 그런 작은 친분조차 없었다. 그래서......
괜히 더 미웠다.
층간소음도 아는 사람 집이면 조금은 덜 거슬린다는데, 소음 공격이 일주일이 넘어가자 내 인내심도 슬슬 바닥을 드러냈다. 한국에서는 보통 30평대 아파트 기준으로 공사 첫 이틀 정도만 크게 시끄럽고 이후에는 소음이 한결 줄어든다. 그런데 이곳은 일주일이 지나도록 여전히 벽을 깨고 무언가 뜯어내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우리 집도 그리 넓지 않은데 뭐가 이리 고칠 게 많담 말인가. 집집마다 평수가 다른지 얼핏 계산을 해봐도 감이 오지 않았다.
참을 수 없는 소음 공격에 나는 아이를 안고 목적지도 없이 집을 나섰지만 곧바로 후회했다. 시간이 애매한 데다 카페 같은 실내에 들어가자니 그나마 자고 있는 둘째가 울까 봐 걱정도 되고 예기치 않게 발생하는 비용도 아까웠다. 그나마 서늘한 밖이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인적 드문 공원을 혼자 서성이자니 괜히 무섭기도 하고, 그렇다고 집으로 돌아가기도 싫었다. 이도 저도 못 한 채 시간을 보내다 평소보다 조금 일찍 첫째를 데리러 갔다. 아이는 엄마가 일찍 왔다고 잔뜩 신이 났다.
'미안, 아들. 네가 생각하는 그런 감동적인 하원은 아니야…….'
나는 속으로만 조용히 사과했다. 저간의 속사정이 어떻든, 우리는 손을 잡고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왔다. '제발 오늘은 좀 끝나라~' 어금니 꽉 깨물고 조용히 주문을 외우면서.
어느덧 오후 5시가 넘어 어둑어둑해진 시각.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 복도는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와…… 오늘 공사는 끝났나 보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집으로 들어와 코트를 벗어 걸었다. 바로 그 순간.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망했다. 다시 시작이었다.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악!!!!!!!!!!!!!!!!"
손을 씻는다며 화장실에 갔던 첫째가 양쪽 귀를 틀어막은 채 나를 향해 뛰어왔다.
"엄마, 시끄러워! 엄마! 귀 아파!!! 머리 아파 악!!!!!"
정말 귀가 아픈 건지, 장난기가 한 스푼 섞인 건지 아이는 드릴 소리에 맞춰 더 큰 소리로 비명을 질렀다.
'아들아…… 지금은 네가 더 시끄럽다.'
검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다 대고 진정시키려 했지만 공사 소음도 아이의 비명도 일단락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결국 나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저녁은 그냥 밖에서 먹자."
엄마의 갑작스러운 외식 선언에 첫째는 신이 나는지 드릴 소리 박자에 맞춰 더 크게 비명을 질렀다.
'하.... 너 진짜 시끄러워서 그러는 거 맞는 거지?'
그렇게 계획에도 없이 먹은 포테이토 피자는 맛있었다. 아이도 좋아했고, 나도 설거지를 안 해도 되니 편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왠지 쓴맛이 느껴지는 건 순전히 내 마음 때문이었을 거다. 오늘의 승자는 본인의 희망대로 좋아하는 피자를 잔뜩 먹은 우리 아들뿐이었다.
후일담을 덧붙이자면, 우리는 그 뒤로도 2주 넘게 큰 소음에 시달렸다. 체감상 거의 한 달이 넘은 시간이었다. 그리고 귀국 전 숙소를 한 번 더 옮길 때까지도 그 집은 여전히 공사 중이었다.
한국이었다면 아마 항의가 빗발쳤겠지만, 둘러봐도 소음이 심할 때 한 번씩 복도를 빼꼼히 내다보는 건 나뿐이었다. 오락실의 두더지 게임처럼 내가 나온 시간에만 못 본 게 아니라면, 이곳 사람들은 그 엄청난 소음을 일상의 일부처럼 담담하게 견뎌내고 있었다.
결국 나만 이 동네에서 유일하게 예민한 두더지였던 셈이다.
수십 년간 몸에 배어 있던 한국인으로서의 상식이 여지없이 깨지는 순간,
역설적으로 '여기는 모스크바구나' 하는 현실감이 밀려왔다.
타국 생활의 매캐한 쓴맛은 뜻밖의 이웃집 인테리어 공사에서 맛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