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그날, 크리스마스트리 앞에서 소원하던 마음

by봄날의 곰


Jingle bells, jingle bells~
Jingle all the way~♪



거리에 청아한 방울소리와 함께 이 멜로디가 울려 퍼지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뜬다. 한 해를 마무리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다릴 때면, 대바카라 없이 소망하던 선물을 기다리던 어린아이로 돌아간다고 해야 할까.


크리스마스에 얽힌 추억이야 모두가 조금씩 다르겠지만, 나에게도 크리스마스에 대한 나름에 이미지가 있다. 적당히 북적이는 거리에, 선물 꾸러미를 들고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의 웃는 얼굴이 먼저 연상되곤 한다. 춥지만 훈훈한, 살짝 젖혀진 커튼 뒤로 보이는 집안 풍경도 빠질 수 없다. 공들인 저녁 식사 자리에 가족 모두가 둘러앉아 있는 장면도 떠올려 본다. 현실은 성탄 미사가 끝나고 엄마와 돌아오는 길에 제과점 특별세일로 판매하던 버터케이크 한 조각으로 출출함을 달래며 살짝 색다른 기분을 내어보는 정도였지만 말이다.


현실과 이상과의 괴리야 어찌 되었든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크리스마스는 내게 사랑하는 이들과 함께하는 안온한 감성 떠올리게 한다. 해마다 12월 달력으로 넘어가는 순간, 마음 한편으로는 여전히 두근두근 어린아이 같은 기대를 품고서.


그것도 12월이 아닌, 1월의 크리스마스를.






러시아는 새해를 전후해 약 열흘간 긴 연휴가 이어진다. 그리고 그 끝자락인 1월 7일에 정교회 성탄절을 맞는다. 러시아 정교회는 전통적으로 율리우스력을 따르기 때문에 12월 25일이 아닌 1월 7일을 기념한다. 크리스마스는 당연히 12월 25일이라고 믿었는데, 러시아에 와서 국가나 종교에 따라 날짜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새해부터 성탄절까지 이어지는 이 시기는 러시아에서 손꼽히는 대형 명절인 만큼 도시 전체가 축제 분위기로 접어든다. 날짜가 다르다는 점만 제외하면 연말에서 신년, 그리고 성탄절로 이어지는 분위기는 비슷하다. 늦가을부터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는 별빛이 쏟아지는 듯 화려한 조명이 들어서 밤거리를 수놓는다. 정교회 성당 앞과 사람들이 주로 찾는 시내 관광지, 번화가마다 커다란 크리스마스트리가 세워지고, 가로등마저 알록달록한 빛을 뿜어내며 몽환적인 분위기를 뽐내는 것이 밤새 겨울왕국의 엘사 여왕이 다녀간 듯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크리스마스를 즐기는 것 같아 덩달아 마음이 설렜다.


교민들 말로는 모스크바가 유독 겨울 시즌에 '도시 꾸미기'에 진심이라, 행사가 끝나면 장식들을 잘 철거해 보관했다가 이듬해 다시 꺼내 쓴다고 한다. 모스크바 겨울 특유의 운치 있는 풍경 위에 러시아인들의 남다른 미적 감각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다. 어딜 둘러보아도 빛나는 장식물에 눈이 즐거웠고, 한 번 쓰고 버리는 게 아니라 여러 해 재사용한다니 제법 합리적으로 느껴지기도 했다. 이 특별한 볼거리 덕분에 추운 러시아의 겨울이 늘 고통스럽기만 한 건 아니었다.


쇼핑몰은 물론이고 매일 이용하는 지하철역 입구, 평범한 거리의 시설물도 예외는 아니었다. 늦은 오후를 지나 어느 정도 사위가 컴컴해졌다 싶으면 누군가 손가락을 튕기며 사인을 주었나 싶었다. 갑자기 일제히 불이 들어오며 눈부신 불빛으로 반짝이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평범했던 시내 거리가 순식간의 동화나라 한복판으로 변신한 것 같아 걷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졌다. 이 시기에 특히 나는 가족과 함께하는 짧은 저녁 산바카라이 늘 기다려지곤 했다.


연말의 모스크바 거리 풍경, 곳곳에 다양한 조명과 커다란 트리가 설치된다.





이렇게 연말연시의 화려한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즈음,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도 긴 휴가를 앞두고 분주해졌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작은 학예회가 열리기 때문이었다. 안나 선생님은 올해의 마지막 학부모 초청 행사라며 영어 메시지로 참석 여부를 물어오셨다. 남편은 업무 일정 때문에 평일 낮 행사에 함께할 수 없어 조금 아쉬웠다. 결국 두 사람 몫의 응원을 보내리라 다짐하며, 나 홀로 비장한 얼굴로 유치원으로 향했다.


보조 선생님 한 분이 현관문 앞으로 나와 외투 보관소로 안내해 주셨다. 모스크바의 겨울이 깊어질수록 옷차림은 자연히 두꺼워진다. 러시아에서는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식당이나 박물관, 공연장에 가면 으레 입장하며 겉옷을 맡기곤 한다. 처음에는 번거롭기도 했지만, 몇 번 해보니 훨씬 가벼운 차림으로 식사나 관람에 집중할 수 있어 좋은 점도 있었다.


행사가 열리는 강당은 지난번 '어머니의 날' 공연을 했던 곳이었다. 이번엔 한쪽에 놓인 커다란 트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손님용 의자가 나란히 놓인 맞은편 벽면은 파란색과 은색 장식으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한껏 뽐내고 있었다.


두리번거리며 적당한 자리를 찾으려 주위를 둘러보다 고민에 빠졌다. 앞줄에서 첫째를 가까이 보고 싶기도 했지만, 혹시 둘째가 울거나 칭얼대면 잠시 나갔다 와야 할 수도 있었다. 결국 나 홀로 치열한 고민 끝에 출입구와 가장 가까운 뒷줄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나름 행사장 분위기가 한눈에 들어오는 로열석이라 우겨본다.


한 학기를 마무리하는 자리라 그런지 평일임에도 지난 행사보다 훨씬 많은 학부모가 와 있었다. 40~50명 정도의 부모들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강당 안을 바삐 오가며 자리를 찾아 앉았다. 하나같이 멋지게 차려입은 모습이었다.


러시아에서는 학예회뿐만 아니라 전시나 공연을 볼 때도 평소보다 더 신경을 쓰는 것이 당연시된다. 일상을 열심히 살아낸 자신에게 주는 선물처럼, 그날만큼은 공들여 멋을 내는 셈이다. 나는 한국에서 정장이라 부를 만한 옷을 챙겨 오지 못한 데다 매일 신생아를 안고 다니는 처지라, 가장 보풀이 없는 깨끗한 터틀넥 스웨터를 골라 입고 왔다. '단정하게만 보이면 된다.'며 대수롭지 않아 했던 마음가짐은 화려한 공작새 같은 엄마들 틈에 서 있으니 괜히 쭈그러들었다. 슬그머니 손을 뻗어 아기띠 안으로 말려 올라가는 옷자락을 쓱쓱 아래로 끌어내렸다.


날이 날이니만큼 평소에는 잘 보이지 않던 아빠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괜찮다고 생각했건만, 막상 아빠들의 모습을 보니 남편이 함께 오지 못해 못내 아쉬웠다. 엄마들 액세서리에 못지않게 번쩍이는 시계와 완벽한 쓰리피스 슈트를 갖춰 입은 아빠들도 여럿 보였다. 업무 중 잠시 시간을 낸 것인지 인상을 굳힌 채 안팎을 오가며 진지하게 통화하는 모습은 우리네 아빠들과 닮아 있었다. 가장의 무게란 국적을 막론하는 모양이었다.


뒤편에서 이런 학부모들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자니 나름의 특징들이 눈에 들어와 재밌어졌다.

지극히 주관적인 기준으로 세 부류로 나누어 보았다.


우아한 엄마들: 뉴스 진행자처럼 단정한 C컬 단발머리가 돋보인다. 세련된 원피스에 로퍼를 신고 반듯하게 앉아 있다. 높은 교육열을 대변하듯 대다수가 앞줄에 몰려 앉아 있지만, 서로 모여 수다를 떨진 않는다. 얼핏 '겨울왕국'의 얼음 여왕을 연상시킬 만큼 차가운 인상이지만, 아이가 아는 체를 해오면 영락없이 다정한 엄마 미소를 짓는다.


모델 형 엄마들: "세상에, 애 엄마 맞아?" 소리가 절로 나오는 확신의 모델상이다. 출산은커녕 결혼은 한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육아에 찌든 기색 하나 없이 볼륨을 살린 긴 머리를 등 뒤로 늘어뜨리고 와인색 네일까지 완벽하다. 애 엄마가 저렇게 섹시하다니, 이건 반칙 아닌가. '출산을 하면 당연히 몸이 변하는 거 아니냐고….' 연예인 보는 기분이라 질투도 나지 않는다. 긴 다리를 꼬고 앉아 흥미롭다는 듯 전면을 주시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런웨이 관람석을 연상케 한다. 후에 한국 엄마들에게 이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전했더니 "당연하지! 그런 집은 애들도 내니(유모)가 키울걸?" 하며 우리끼리 킬킬거렸지만… 부러우면 지는 거다. 고로 이미 졌다 졌어.


지적인 엄마들: 단정하고 수수한 외형이지만 왠지 모를 비범함이 느껴진다. 원어민처럼 유창한 영어를 구사한다는 점에서 일전에 만났던 미셸 엄마가 딱 그런 느낌이었다. 비가 자주 오고 추운 날씨 탓인지 스포티한 점퍼에 털비니를 쓰고 바쁘게 오가면서도, 사람을 대할 때 특유의 여유가 느껴진다. 차림새에 크게 연연하지 않으면서도 자신감 넘치며 매너 있는 태도가 몸에 배어 있다.


이렇게 혼자만의 의식 흐름에 빠져 있을 즈음, 크리스마스 음악이 울려 퍼지며 드디어 공연이 시작되었다. 지난 행사 때 아이가 제법 잘 참여하는 것을 보았기에 이번엔 크게 긴장되지 않았다. 그저 마음속으로 파이팅을 외칠 뿐,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무대를 기다렸다.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들부터 입장했다. 제법 아동 티가 나는 아이들이 두 명씩 짝을 지어 걸어 나오는데 저마다 흰색 계열의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여자아이들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시 공주님 드레스가 대세였다. 드레스를 입은 아이들이 살랑살랑 움직일 때마다 치맛자락이 은하수처럼 반짝거렸다. 옷이 날개라더니 매일 스쳐 지나가며 눈에 익은 아이들의 얼굴이 한층 예뻐 보였다.


그런데... 우리 애는 어쩌지?
오늘 아침에도 평소처럼 티셔츠를
입혀서 보내버렸는데!!

이런 이런, 남의 집 아이 의상에 감탄하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내가 가정통신문을 놓쳤나?' 드레스코드를 미리 이해하지 못해 살짝 당황하던 찰나, 열린 문으로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입장했다.


"아!! 선생님! 고맙습니다!"


선생님의 혜안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유치원 실내에서 입는 아이 옷 중 유일하게 앞면에 라이온 킹 심바가 그려진 흰 티셔츠가 있었는데, 선생님이 며칠 전부터 미리 챙겨두셨던 모양이었다. 얼마 전 세탁물을 정리하며 '왜 안 보이지?' 하고 의아해했던 기억이 났다.


최애 티셔츠를 당당하게 입고 들어오던 아이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으로 남은 손을 살짝 흔들어 보였다. 나름 긴장은 되나 보다. 여섯,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누나와 형들이 의젓하게 마이크를 잡고 인사말을 건네며 크리스마스 동화 연극이 시작되었다.


'스네구로치카(눈소녀)' 역할을 맡은 선생님이 등장하여 노래를 부르며 극을 이끌었다. 아이들은 그녀의 주변으로 원을 그리며 돌기도 하고, 눈뭉치 소품을 허공으로 던지며 즐거워했다. 내용을 완벽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선생님의 멋진 피아노 연주 솜씨와 이야기에 몰입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너무 깜찍해 눈을 뗄 수 없었다. 클라이맥스가 되자 아이들은 피아노 반주를 하는 선생님 주변으로 반원 모양으로 모여들었다. 종알종알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합창하며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우리 아이만 유독 립싱크 같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괜찮아 꽤 자연스러웠어.'


여기저기서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나 역시 벌떡 일어나 손바닥이 아플 정도로 박수를 쳤다.


자고 있던 둘째가 놀랐는지 짜증을 내며 몸을 양옆으로 뒤틀었다. '미안 미안~'정신없이 아이들 어르는 동안 아이들은 진짜 연극배우처럼 한 줄로 도열하여 옆 친구의 손을 잡고 고개 숙여 관객을 향해 인사를 건넸다.


공연이 끝난 뒤 잠깐의 자유시간 동안 아이들은 앞쪽 객석의 부모에게 달려가 어리광 섞인 반가움을 표했다. 이럴 때 보면 아까의 의젓한 '형아 모드'는 어디 가고 '역시 아직은 애기들이구나' 싶었다. 하지만 선생님들이 다시 집합신호를 주자 주섬주섬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착하게 구는 아이에게 먼저 선물을 준다는 비밀 공약이라도 있었던 건지 평소보다 유난히 동작이 빨랐다.


이번에는 부모들도 앞으로 나와 함께 참여하는 시간이 이어졌다. 지명받은 어른들은 자녀들의 재촉에 쑥스러워하면서도 손에 손을 잡고 나란히 서서 둥근 원을 만들었다. 원 안팎을 넘나들며 아이들을 썰매처럼 끌어주기도 하고, 함께 작은 율동을 따라 하며 모두가 흥겨워했다.


살짝 무서울 정도로 무뚝뚝해 보이던 러시아 아빠들도 옆에 선 딸을 바라볼 때만큼은 눈에서 애정이 듬뿍 묻어났다. '딸바보'는 역시 세계 공통인가 보았다. 마음 같아서는 나도 나아가 함께하고 싶었지만, 둘째가 인내심의 한계에 도달했는지 입을 삐죽거리며 공갈젖꼭지를 밀어내기 시작했다. 칭얼거림이 곧 울음으로 바뀔 것이라는 익숙한 예고였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이미 눈이 마주친 아들의 반복되는 부름에 난감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아이 옆에 서 있던 안나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선생님은 재빨리 상급반 누나와 우리 첫째의 손을 잡아 짝을 지어주셨다. 엄마가 없이 괜찮을까 걱정스러웠지만, 오늘도 헛다리를 제대로 집고 말았다. 아들은 엄마를 더 찾기는커녕 인형 같은 미모의 누나 손을 잡고 원을 돌며 이내 아주 신이 났다. 금사빠 아들에 대한 선생님의 현명한 판단에 마음속으로 경의를 보냈다.


'이거 참, 남의 집 사위를 넘어 옆집 아이 남자 친구를 키우고 있었군!'



그래도 네가 행복하다면야. 엄마는 괜찮아... 흐흑.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 아래 아이들의 모습은 너도나도 깔깔대며 즐거워 보였다. 첫째는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흥에 취한 건지, 좀 더 용기가 났는지 원 한가운데로 나가 음악에 맞춰 덩실덩실 막춤을 추며 학부모들의 열띤 호응을 받기도 했다.


세상에… 내 아이에게 이런 면이 있었나? 우리 집에 '가무 유전자'는 없다고 철석같이 믿어왔는데 또 이렇게 놀라고 말았다. 나는 휴대폰을 들 새도 없이 신기한 마음에 한동안 그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았다. 말도 제대로 안 통하는 유치원에 보내진 아이가 안쓰럽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정작 첫째는 나의 걱정이 무색할 만큼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다.


학예회 막바지에 이르러 아이들이 가장 기다리던 순서가 찾아왔다.

러시아에서는 전통적으로 '데드 모로스(추위 할아버지)'와 아까 동화극에서 보았던 그의 손녀 '스네구로치카(눈소녀)'가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눠준다. 우리가 아는 산타클로스와 비슷한 역할이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데스크에 경비를 담당하는 남자 직원분이 줄곧 보이지 않았는데, 그분이신가…. 궁금해도 미리 알아도 정체를 함구해 주는 건 최소한의 도리이다. 얼마나 공들여 분장을 하신 건지 진짜 할아버지처럼 거동이 느리고 목소리도 투박했다. 아이들의 동심을 지켜주려면 그만큼 어른들의 노력이 필수였다.


추위 할아버지와 눈소녀는 아이들을 한 명씩 불러 세웠다. 분위기상 그동안 어떤 착한 일을 했는지 칭찬해 주는 듯했다. 아이들은 눈을 반짝이며 산타의 말을 경청하고, 들뜬 표정으로 준비된 선물상자를 받아 자리로 돌아갔다.


드디어 우리 아이 차례. 다소 이국적인 러시아 버전 산타할아버지에게 선물을 받은 아이는 어르신 말이 끝날 때까지 눈치껏 잘 기다린 후 자기 몸보다 큰 상자를 받아 들고 입을 활짝 벌리며 기뻐했다. 행사가 끝난 후, 아이는 상체만 한 상자를 머리 위로 번쩍 치켜든 채 "엄마!" 소리치며 달려왔다.

너는 오늘 어떤 칭찬을 들었을까.


나는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속삭이며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지난 일 년의 시간들이 순식간에 마음을 스치고 지나가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그즈음 한 번씩 떼를 쓸 때마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엄포를 놓곤 했었던 것이다.


"올해 엄마한테 한 행동을 생각하면, 이번 크리스마스 선물은 못 받을 수도 있어."


아니다. 내가 틀렸다. 너무 많은 일이 있었던 올 한 해를 이렇게 용감하게, 무사히 버텨준 것만으로도 너는 선물을 받을 자격이 넘치는구나.


이어지는 시끌벅적한 다과회가 끝나고 살짝 선생님께 다가가 학예회용 옷을 챙겨주셔서 정말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넸다. 안나 선생님은 언제나처럼 의연한 표정으로 씩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신다.


행사의 여운이 가시지 않은 채 그래도 '무사히 끝나서 다행'이라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아이와 손을 꼭 잡고 밖으로 나왔다. 그새 소복하게 쌓인 하얀 눈길을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걸었다. 우리는 별다른 말 없이 걷다 늘 지나치던 구세주 그리스도 성당 앞의 트리를 잠시 바라보며 또 처음인 듯 감탄했다.


우리는 늘 그러하듯 나란히 서서 잠시 트리에 소원을 빌어보았다.


뭐든 괜찮아. 간절하면 이루어질 테니까.



우리가 여기 모스크바에서 다시 모인 것처럼.

그렇게 온 마음을 끌어모으며 두 손을 맞잡았다.

곧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시간,

시끌벅적했던 우리 가족의 한 해가 그렇게 따뜻하게 저물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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