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발레 대신, 짜릿한 서커스의 세계로
여기 흔히 말하는 '문화예술 애호가'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 있다.
물론 싫어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어쩐지 진입장벽이 높게 느껴졌달까.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콘서트나 뮤지컬도 몇 년에 한 번쯤 큰맘 먹고 찾는 특별한 이벤트였고, 클래식 음악회나 발레 같은 고전 예술은 막연히 ‘나와는 거리가 먼 고급 취미’라고 여겼다. 솔직히 잘 알지도 못하는 분야에 적지 않은 돈을 선뜻 쓰기란 쉽지 않았다.
이 막연한 선입견이 깨진 건 정말 우연이었다. 남편과 신혼여행으로 찾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기왕 러시아에 왔으니 그 유명하다는 발레나 한번 볼까 싶어 가벼운 마음으로 한인 민박집 사장님을 통해 표를 예매했다. 순수한 작품 감상보다는 한 번쯤은 러시아의 명물을 구경하겠다는, 관광객의 호기심이 더 컸다.
그렇게 보게 된 《잠자는 숲 속의 공주》공연에서 내 편견은 어느새 보기 좋게 무너져 내렸다. 발레가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적인 춤일 거라는 예상과 달리, 무대 위로 검은 옷자락을 휘날리며 나타난 '마녀' 역 발레리노의 강렬한 독무에 매료되었다.
검은 망토를 휘날리며 무대 위를 돌풍처럼 휘감던 실루엣. 온 무대를 누비며 쉬지 않고 이어지는 회전과 힘 있는 움직임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괴력 있는 에너지에, 그만 넋을 잃고 시선을 빼앗겼다. 무대 전체를 집어삼키는 압도적인 기세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순간 생각했다.
와~ 이게 진짜 예술이구나!!
무어라 설명하기 어려운 충격이었다. 언어가 아닌 몸짓만으로도 감정을 온전히 전달할 수 있다니. 그것이야말로 예술이 가진 강력한 힘인 것 같았다.
공연장을 나서는 길, 가슴 가득 깊은 여운을 안은 우리 부부는 언젠가 다시 러시아에 오게 된다면 다른 공연도 꼭 보자며 기약 없는 약속을 나누었다.
그런데 사람 일은 모르는 법이라더니,
그로부터 4년 후 우리는 정말로 계획에도 없던 모스크바에 살게 되었다.
말이 씨가 된다는 옛말은 틀린 데가 없었다.
우리의 모스크바 집 근처에는 전시장과 공연장이 곳곳에 있었다. 러시아인들에게 전시나 공연 관람은 일상에 녹아든 자연스러운 보상 같았다.
나 역시 먼 나라까지 온 특권을 한 번쯤 누리고 싶었지만, 현실은 늘 변수를 품고 있었다.
대부분의 발레 공연은 '7세 미만 입장 제한'이 있었고, 세계적인 볼쇼이 발레단 공연의 괜찮은 좌석을 구하려면 거의 전쟁에 가까운 예매 경쟁을 뚫어야 했다.
운 좋게 예매에 성공한다 해도, 남편의 갑작스러운 업무상 일정 변경이나 아이들의 감기 같은 육아 변수 앞에서는 대바카라이 없었다. 높은 취소 수수료 앞에 망설이다 노트북에 떠 있는 예매 창을 닫기를 여러 번. 결국 포기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그렇게 나의 우아한 발레 관람은 멀어져 갔다.
드러내놓고 아쉬워하던 내게, 어느 날 남편이 뜻밖의 대안을 내놓았다.
"여보, 그럼 볼쇼이 서커스를 보러 가자."
이미 회사 동료들과 다녀온 적이 있던 남편은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었다며 소문난 잔치에 우리를 초대했다. 무엇보다 연령 제한이 없어 우리 아이들도 당당하게 입장할 수 있고, 다른 가족 단위의 관람객도 많다는 점이 가장 반가웠다.
그렇게 우리의 모스크바 문화생활은 우아한 발레 슈즈 대신, 활기찬 서커스 천막 아래에서 새로운 방향을 찾게 되었다. 직접 눈앞에서 펼쳐지는 서커스라니. 어른인 나도 설레는데 아이들은 얼마나 좋아할까.
약속된 공연 당일, 지하철을 타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가을날의 늦은 오후, 구름 낀 하늘은 어느새 푸르스름하게 짙어지고 있었다. 역에서 내리자 저 멀리 거대한 돔 형태의 건물이 보였다. '서커스 천막'은 옛말인가 보았다. 그래도 어떠랴, 공연에 대한 기대를 한가득 안고 씩씩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공연장 주변은 이미 대기 관객들로 북적였다. 모처럼의 외출에 신이 난 큰아이는 아빠 어깨 위 목마를 타고 내려올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제발 오늘만큼은 얌전히 있어 주라...'
입장 순서를 기다리는 내내 아빠 다리를 붙잡고 서있는 큰아이와 내 품 안의 작은아이를 번갈아 살피며, 속으로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른다.
객석으로 들어서니 남편의 동료들이 먼저 와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인사를 건네고 우리 가족도 옆에 자리를 잡았다. 혹여 아이가 중간에 화장실이라도 가고 싶어 하면 어쩌나 졸였던 마음은, 생각보다 앞뒤로 넓은 좌석 간격을 보고서야 조금 가라앉았다. 휴... 다행이다. 들뜬 관객들의 시선이 중앙의 텅 빈 무대로 모여들 무렵, 서서히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제 시작이야." 옆자리 남편의 속삭임과 함께 객석은 완벽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
펑~!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폭죽 소리가 힘차게 터졌다. 연달아 힘찬 박수 소리가 쏟아지며 분위기가 순식간에 달아올랐다. 하지만 그 우렁찬 신호탄은 내 품에서 곤히 자고 있던 작은아이에게는 폭탄이 터지는 것 같은 재난 경보였던 모양이었다. 곤히 잘 자던 아이가 갑자기 "우엥!" 하고 울음을 터뜨렸다.
'아이코, 놀랐구나!' 얼른 공갈젖꼭지를 다시 물리고 다급히 토닥여 보았지만 소용없었다. 평소 낮잠 시간에 아래층에서 공사하는 굉음도 무시하고 잘 자던 아이라 괜찮을 줄 알았는데…… 나의 오산이었다. 아이의 울음소리는 그칠 기미 없이 점점 더 극장 안에 울려 퍼졌다.
'아... 망했다.'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아무도 우리를 쳐다보거나 눈치를 주지는 않았지만, 사방에서 조여 오는 듯한 공기에 괜히 온몸이 움츠러들었다. 결국 옆 사람들에게 고개를 숙이며 연신 미안한 눈빛으로 사과를 전하고는, 황급히 객석을 빠져나왔다.
밖으로 나와 문을 닫으려는 찰나, 아이의 울음이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어? 괜찮은 건가?' 희망이라는 녹색 신호가 살포시 켜지려던 그 순간, 다시 공연장 안쪽에서 새로운 묘기가 시작되려는지 커다란 함성과 함께 우레 같은 박수 소리가 터져 나왔다. 내 마음에 '띠용 띠용' 요란한 적색경보가 울려 퍼졌다. 아이는 크게 놀란 듯 다시 목청을 높여 바락바락 울어대기 시작했다.
시원하게 해 주려 양말도 벗기고 진정시키려 엉덩이를 규칙적으로 토닥거렸다. 서둘러 좋아하는 공갈젖꼭지를 다시 물려 보았지만 화가 났는지 혀로 밀어내더니 더 크게 울었다. 할 수 없이 '끙' 힘을 주어 무거운 입구 문을 닫고 대기 홀로 완전히 빠져나왔다.
'힝... 어떻게 온 공연인데.'
어쩌면 내 인생 마지막 볼쇼이 서커스일지도 모르는데...
하지만 체념은 빠를수록 덜 괴로운 법이다. 조금 전까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이던 공간은 거짓말처럼 조용했다. 문 너머에서는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이어지는 함성이 드문드문 희미하게 들려왔다. 안에서는 한창 즐거운 공연이 이어지고 있겠지.
얄궂게도 시원한 공기를 쐬자 아이는 언제 울었냐는 듯 금세 평온해졌다. 다시 들어가 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또 아이가 울어 나오게 되면 옆 관객들에게 민폐일 것 같아 망설여졌다. 아이를 안은 채 자리를 찾으러 컴컴한 객석 계단을 오르내릴 자신도 없었다.
텅 빈 대기 홀을 서성이다 보니 군데군데 아기자기한 포토존이 조성되어 있는 게 보였다. 아쉬운 마음에 휴대폰을 꺼내 아이와 셀카를 찍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우리 공연장에는 와 봤다. 그렇지? 증거 사진 남길 테니 나중에 딴 소리하면 안 돼. 너도 볼쇼이 서커스 본 거야~"
다행히 아이는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과장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말을 거는 엄마를 보고 눈을 맞추며 배시시 웃어주었다.
'그래, 네가 좋으면 나도 좋다, 뭐.'
그렇게 아이와 둘이 어설픈 데이트를 즐기고 있으니 어느새 1부가 끝났다. 휴식 시간을 이용해 나온 남편은 선뜻 교대를 제안했다. 자신은 이미 한 번 본 공연이니 2부는 내가 보라고 했다. 덕분에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객석에 들어갔지만, 역시 육아의 현장은 늘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1부 내내 멀쩡하던 큰아이가 칭얼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남편 말로는 호랑이와 코끼리가 등장할 때는 눈을 반짝였다는데, 사람들의 곡예는 네 살 아이에게 다소 지루했던 모양이다. 아니, 시간이 문제인 걸까? 엄마는 재밌기만 하고만!
TV나 영화에서 보던 공중곡예가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안전장치도 없이 저 높은 곳에서 망설임 없이 그네를 타며 오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앉아서 보는 내가 심장이 다 벌렁거릴 만큼 아슬아슬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 역시 집중력이 최고조로 올라가던 순간이었다.
아이가 귓속말을 걸어왔다.
"엄마, 나갈래. 심심해."
'안 돼…… 나 아직 못 봤단 말이야.' 시계를 확인하니 이제 곧 끝날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조금만 참으라며 귓속말로 조용히 달래 보았지만, 지칠 대로 지친 아이는 좀이 쑤시는지 온몸을 배배 꼬며 보챘다. "가만히 좀 있어!"라는 엄포와 "나가면 시원한 음료수 사줄게"라는 필사적인 타협안을 번갈아 제시하며 아이를 진정시키느라, 나는 또다시 온몸에 진땀을 흘려야 했다.
결국 2부의 하이라이트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제대로 기억나지 않았다.
아, 눈물겹게 아까운 내 서커스여~~
공연이 끝난 뒤 우리 일행은 근처 아시안 식당에 들어가 쌀국수와 만두를 주문했다. 맛은 평범했지만 이미 녹초가 되어 있던 터라 순식간에 그릇을 비웠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미처 보지 못한 공연에 대한 아쉬움과 그래도 시도해 보았다는 만족감이 묘하게 뒤섞여 내 안에 맴돌았다.
좋게 생각하자. 네 식구가 함께 남길 추억 하나가 생겼다는 사실에 조금은 웃음이 났다. 큰아이가 더 어렸을 때는 이런 공연장은커녕 집 앞 공원 산바카라조차 아이가 울까 봐 시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는데, 우리도 부모로서 조금씩 커지는 모양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내가 보지 못한 1부 몇 장면을 사진으로 보여주었다. 이런 센스쟁이!
영상 속에는 원형 무대를 질주하는 말들, 말 위에서 균형을 잡는 곡예사들, 의자 위에서 묘기를 부리는 맹수들과 공을 주고받는 코끼리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담겨 있었다.
아이들을 겨우 재운 뒤, 남편은 그날 공연에서 있었던 재미있는 장면들을 실감 나게 들려주었다. 어떤 동물이 등장했을 때 아이가 가장 크게 환호했고, 또 어떤 순간에 겁을 먹었는지 듣고 있자니 그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저절로 재생되는 듯했다.
남편과 아이들이 모두 잠든 밤이 되었을 때도 나는 몹시 피곤했지만 좀처럼 잠들 수 없었다. 휴대폰을 들고 어두운 거실 소파에 홀로 앉아 차가운 맥주 한 캔을 홀짝이며 목을 축였다.
무대를 끝까지 보지 못한 아쉬움이 미련처럼 남아서였을까. 남편이 대신 담아 온 사진을 몇 번이고 들여다보며, 놓쳐 버린 무대의 시간을 조금이나마 붙잡아 보려 했다.
나도 서커스를 봤다. 뭐, 그럼 된 거지.
이제 조금 큰 우리 아이들은 한 번씩 그때의 사진들을 찾아보며 신기해할 때가 있다.
몇 번은 본 것 같은데 늘 처음처럼 "우와!" 하고 감탄을 내질렀다.
'얘들아... 실제로 봤을 때도 그렇게 좋아해 주지 그랬어.' 속으로 나 혼자 씁쓸하게 웃었다.
시간이 지나면 과거가 미화된다는 속설처럼,
우리 가족 내 공식 기록으로는 "모두 볼쇼이 서커스를 재밌게 보았다."가 정설로 남아 가끔 회자되는 즐거운 대화 주제가 되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아마 그런 걸까.
이제는 내 행복과 관심사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어려워진다는 사실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과정에 놓이는 것.
예전에는 정말 '내'가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가 어디를 가고, 무엇을 보고, 누구를 만나는지가 가장 중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삶의 무게중심이 조금씩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있다. 나의 세계가 그만큼 넓어진다고 해야 할까.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고심 끝에 세운 계획이 엉망이 되어 실망하기도 하고, 기대와 달리 아이가 예상치 못한 반응을 보이면 아쉬운 마음에 살짝 발을 구르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이 소란스럽고 정신없는 시간을 조금씩 껴안아 보기로 했다.
비록 서커스는 절반밖에 보지 못했지만, 나머지 절반은 우리 가족의 즐거운 입담과 아이들의 상상으로 가득 채워질 테니까.
어쩌면 육아란 내가 놓친 것들을 아쉬워하기보다, 그보다 더 소중한 무언가를 찾아 나서는 여정일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조금씩 부모가 되는 법을 배워 가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