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솥은…구수한 향기를 남기고
뜬금없이 고백하자면…
나는 공복이 무섭다.
건강검진에서도 별다른 이상은 없다는데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친정 식구들도 배가 고프면 유독 예민해지는 공통점이 있는 걸 보면, 유전의 힘은 무시할 수 없나 보다. 평소에는 웬만한 일에도 “허허” 웃으며 넘기는 편이라 인상 좋다는 말을 꽤 듣는데(갑자기 왠 자기 자랑?), 학창 시절부터 배가 고프면 공부고 뭐고 기력이 갑자기 뚝 떨어졌다.
일단 ‘배고프다’고 느끼는 순간부터 마음속 비상등이 요란하게 빨간불을 깜빡인다.
머릿속 엔진에 기름이 떨어진 듯 반응 속도가 갑자기 느려지고, 심하면 손까지 떤다.
그러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집중력이 떨어지며 신경도 잔뜩 곤두서서,
말끝마다 냉소가 묻어나는 ‘공복 괴물’로 변신한다.
양으로 승부하는 대식가도, 까다로운 미식가도 아니지만 ‘공복 기피자’ 정도는 되는 듯하다.
고로 나는 야식 없는 야근은 해본 적이 없다.
이런 내가 외국에 있다고 달라질 리 없었다.
출국 전 가장 큰 근심거리였던 ‘주(住)’가 해결되자,
마음은 자연스럽게 다음 문제로 향했다. 바로 ‘식(食)’이었다.
‘의(衣)’야 겨울옷 몇 벌 챙겨 왔으니 어떻게든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를 키우다 보면 결국 실생활에서 가장 자주 붙들게 되는 고민은 ‘먹거리’였다.
오늘은 뭘 먹일지, 내일은 또 뭘 해 먹어야 할지. 하루가 밥으로 시작해 밥으로 끝났다.
그 '밥 타령'은 돌고 돌아, 모스크바에 왔다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한국 사람에게는 예부터 ‘밥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하지 않는가.
그래서인지 내 하루의 가장 중요한 일도 결국 식량 창고를 든든히 채워 두고,
가족들의 끼니를 바카라임지는 일이었다.
모스크바 도착 2일 차.
간단히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남편과 첫 장을 보러 나갔다. 우리는 뉴아르바트 거리 근처의 현지 마트로 향했다. 짧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구조였는데, 벽면에 세일 품목 전단지가 붙어 있는 모습이 꼭 우리나라 동네 마트처럼 정겨웠다.
남편은 매장마다 품목별 가격 차이가 조금씩 있을 수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급한 물건이 아니라면 집 근처 마트들을 여러 군데 둘러보고 비교해 보라는, 제법 ‘현지인스러운’ 팁도 덧붙였다. 당시 환율은 1 루블에 약 18원 정도였는데 계산이 복잡할 땐 그냥 20을 곱해 대략적인 가격을 가늠하곤 했다.
체감상으로는 기본 식재료 물가가 한국보다 꽤 저렴하게 느껴졌다. 물론 품목에 따라 훨씬 싼 것도, 한국과 비슷하거나 오히려 더 비싼 것도 있었다. 특히 양파나 감자, 우유처럼 현지 가정에서 많이 소비하는 식재료들은 대체로 품질도 좋고 가격이 저렴했다. 한국에서는 달걀 한 판을 집어 들 때도 가격표 맨 앞자리를 슬쩍 확인하곤 했는데, 여기서는 거의 반값 수준이라 마음이 한결 여유로웠다.
물론 러시아에도 다양한 형태와 규모의 가게들이 있었다. 우리나라처럼 24시간 편의점이 거리마다 촘촘하게 자리 잡고 있진 않지만, 저녁 늦게까지 운영하는 동네 식료품점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집에서 가장 가까웠던 백화점 지하 식품관은 한적한 분위기에 매대 정리도 잘 되어 있어 쇼핑하기 무척 쾌적한 환경을 제공했다. 육류는 가급적 신선한 제품을 바로 사서 당일 요리하고 싶어 특히 이유식 재료를 구입할 때 종종 애용했다. 영롱한 핑크빛의 닭고기도 부위별로 손질되어 깔끔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직원에게 필요한 닭가슴살 개수를 말하면 일회용 플라스틱 용기에 담아 무게를 달아주었다.
카트에 한가득 담긴 장을 보고 나면, 직원들은 계산이 끝난 물건들을 따로 요청하지 않아도 친절하게 비닐봉지에 착착 담아 건네주었다. 반면 일반 마트에서는 계산 후 스스로 물건을 담아가야 해서 한국과 비슷했다. 계산대 끝에 서서 미리 준비한 배낭이나 장바구니에 테트리스 하듯 직접 물건을 채워 넣어야 했기에, 아이를 안고 장을 보는 입장에서 이런 친절은 새삼 고맙게 느껴졌다.
하지만 역시 문제는 가격이었다. 편리함과 친절함 뒤에는 늘 그만큼의 ‘품위 유지비’가 따라붙는 법이니까. 다른 곳에서도 살 수 있는 생필품들의 가격표를 몇 번 눈으로 확인한 뒤부터는, 정말 꼭 필요할 때만 가끔 발걸음을 옮기곤 했다.
역시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었다. 주로 평일 오전에 홀로 장을 보러 다녔는데, 어떤 날은 이 넓고 근사한 프리미엄 매장에 손님보다 직원이 더 많아 보일 때도 있었다. 남의 일인데도 ‘이렇게 운영해서 과연 남는 게 있을까’ 하는 괜한 오지랖이 슬그머니 발동하곤 했다.
'이러다 문 닫는 거 아니야?' 하는 걱정이 쏙 올라오지만... 아니다. 남편 말대로 나는 남 걱정할 처지가 아니라 내 걱정을 더 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어쨌든 이렇게 한 번씩 마트에 들를 때마다 무거워도 꼭 사 오는 제품이 있었는데, 바로 우유와 요거트였다.
러시아 우유는 진하고 고소해서 기대 이상으로 맛있었다. 추운 기후와 유목 문화의 영향인지 유제품 종류도 다양했다. 요거트 역시 기본 플레인도 좋지만 망고나 열대과일 맛 제품도 인기가 많았다. 유제품 코너 앞을 서성이다 보면 할인이 많이 되는 날도 아니건만 다들 몇 개씩 담아가기도 했다.
우유는 유지방 함량이나 종류가 한국보다 훨씬 다양해 선택의 폭이 넓었다. 비슷해 보여도 조금씩 다른 제품이 많아 장바구니에 담기 전 꼼꼼한 확인은 필수였다. 특히 러시아 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발효유 ‘케피르(Кефир)’와 일반 우유인 ‘말라꼬(Молоко)’를 헷갈리지 않도록 겉면을 한 번 더 유심히 살피곤 했다.
호기심에 케피르를 한 번 샀다가, 예상치 못한 시큼하고 강렬한 맛에 숨을 꾹 참아가며 겨우 삼켜야 했던 날도 있었다. ‘으악, 이건 음료가 아니라 약이다. 건강에 좋다.’ 스스로 최면을 걸며 한 모금씩 애써 잔을 비워냈다. 현지인들처럼 그 맛을 자연스럽게 즐길 엄두는 도무지 나지 않아 재구매는 포기했지만, 인정할 건 인정해야겠다. 적어도 화장실 효과만큼은 정말 확실했다.
특히 장보기는 나만의 은밀한 ‘보물찾기’ 시간이었다. 첫째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돌아오는 길, 집 근처에 있는 서너 군데의 마트를 동선에 따라 번갈아 들르곤 했다. 한 매장은 유제품이 유독 저렴했고, 어떤 곳은 우리나라 유기농 마트처럼 달지 않은 아이들 간식이 다양했으며, 또 다른 곳은 야채가 싸고 싱싱했다. 장바구니를 가득 채우고도 예상보다 소박하게 찍힌 영수증 금액을 볼 때면, 쏠쏠한 성취감과 쾌감마저 느껴졌다.
덕분에 모스크바 육아 전선에서도 최소한 식량 보급만큼은 끊기지 않고 이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곧 새로운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우리의 주식인 ‘밥’, 정확히는 ‘전기밥솥’ 문제였다.
21세기를 살아가는 4인 가구 한국인 가정인데, 집에 전기밥솥이 없다니!
출국 전 숙소에 전기밥솥이 있다는 남편 말만 믿고, 짐 하나 덜었다며 안도했던 내가 순진했다. 도착하고 알고 보니 그 밥솥은 남편이 동료에게 잠시 빌린 물건이었다.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듣고는 어이가 없었다. 이게 무슨 돌려쓰는 필기구도 아니고, 밥솥은 매일 쓰는 건데...
“처음부터 반납할 거였으면 집에 있는 작은 거라도 챙겨 오라고 했어야지!!”
아직도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는 남편의 멀뚱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갔다.
아… 두통이야.
연타로 타박이 이어지자, 남편도 이젠 숫제 억울하다는 듯 말했다.
“난 원래 밖에서 주로 먹어서 밥솥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은 못 했어. 그거 꼭 있어야 돼?”
참나, 말도 안 되는 이상한 소리도 정성스럽게 하면 멀쩡해 보이는 줄 아나 보다.
그래, 무지하면 원래 용감한 법이니까.
하아... 집안일과 담쌓은 사람이여~
더 설명하자니 내 입만 아플 것 같아 이쯤에서 말을 접었다.
큰아이도 아침은 늘 요거트나 과일 등으로 간단히 때우는 편이었고, 유치원에서는 다진 고기와 채소를 넣은 러시아식 빵에 차와 과일을 곁들인 점심을 먹곤 했다. 영양소가 부족한 식단은 결코 아니었겠지만, 밥을 유난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 엄마의 입장에서는 저녁 한 끼만큼은 소박하더라도 온기 어린 한식 집밥을 꼭 챙겨 먹이고 싶었다.
게다가 이제 막 시작된 둘째의 이유식 문제도 걸려 있었다. 초기야 냄비로 어떻게든 견딘다 해도, 양이 늘어나는 중기로 접어들면 전기밥솥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으니까. 첫애도 아니고 둘째까지 키우는 아빠가 그걸 모르냐고 한마디 쏘아붙이자, 남편은 자신은 ‘육아 비정규직’이라 잘 몰랐다는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다가 본전도 못 찾고 더 혼이 났다. 하여간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만드는 것도 재주였다.
예상치 못한 나의 거센 반발에 남편도 그제야 자신의 생각이 짧았음을 순순히 인정했다. 물론 며칠 머물다 떠나는 단기 여행이었다면, 근처 피자집이나 저렴한 쌀국수 가게에서 몇 끼쯤 대충 때울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잠시 머물다 떠나는 여행자가 아니었다. 이곳에서 묵묵히 ‘삶’을 일궈가야 하는 생활자들이었다.
결국 현지에서 적당한 제품을 찾아보는 것으로 타협했다.
주말에 부랴부랴 시간을 내어 시내 외곽의 대형 가전 마트로 향했다. 러시아는 우리와 식문화가 달라 단순한 밥솥보다는 베이킹이나 찜 기능까지 갖춘 ‘멀티쿠커’가 훨씬 대중적이고 인기 있는 듯했다.
그런데 가격이 정말 천차만별이다. 밥솥처럼 생긴 제품들이 진열된 코너를 둘러보는데,
난생처음 보는 브랜드 제품들이 무슨 명품 가방이라도 되는 양 도도하게 비쌌다.
러시아는 생활 가전 상당수를 수입에 의존하다 보니 유통비와 관세, 세금 등이 붙어 공산품 가격이 결코 저렴하지 않았다. 종류에 따라 체감상 한국보다 훨씬 더 비싸게 느껴졌다. 가격도 문제였지만 기능은 지나치게 복잡했고, 막상 마음에 드는 제품도 잘 보이지 않았다. 품질은 덜 견고해 보이는데 가격만 콧대 높게 느껴졌다. 들었다 내려놓기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물론 사려면 살 수는 있다. 하지만 언제 다시 떠날지 모르는 상황에서 부피 큰 주방 가전을 덜컥 새로 들이는 게 내키지 않았다. 시간을 쪼개 여러 매장을 돌아다니고 온라인 한인 커뮤니티의 중고 거래까지 기웃거렸지만 원하는 제품은 좀처럼 나타나지 않았다.
내가 원래 이렇게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었는지, 새삼 의구심이 밀려왔다.
차라리 예전 혼자 생활하던 시절처럼 필요할 때마다 냄비 밥을 해 먹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가 아니라 챙겨야 할 입이 자그마치 넷이었다.
냉동실도 작은 데다 한국에서 흔히 살 수 있는 반찬통은 사려고 보면 어딘가 부실했고, 그나마 좀 괜찮다 싶은 것은 터무니없이 비싸 입맛만 다시며 내려놓기를 반복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밥을 한 번에 넉넉히 지어 보관할 형편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이유식을 만들 때마다 아이를 둘러업은 채 가스 불 앞에 서서 정신없이 냄비를 저어야 하는 일은 솔직히 피하고 싶었다.
그렇게 며칠을 속만 태우고 있을 무렵, 뚜둥! 뜻밖의 구세주가 등장했다.
비자 문제로 잠시 한국에 다녀오게 된 남편 회사 직원분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것이다. 낯선 환경에서 아이 둘을 데리고 허둥대는 우리가 안쓰러우셨는지, 사정을 듣고 흔쾌히 밥솥을 가져다주시겠다고 했다.
이런 고마울 데가!!!
친정 부모님이 우리 집에서 고이 잠자고 있던 3인용 밥솥을 찾아 그분의 한국 자택으로 보내주셨고,
덕분에 꼬마 밥솥 하나가 비행기를 타고 무사히 모스크바까지 도착할 수 있었다.
그 전기밥솥 하나를 모스크바 땅에 들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 손을 거쳤는지 모른다.
우여곡절 끝에 작은 밥솥과 다시 만났을 때 우리 가족은 마치 귀한 손님이라도 맞이한 듯 환호성을 질렀다.
변압기 없이 220V 플러그를 그대로 꽂아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 번 감격했고, 냄비 속 설익은 꼬들밥과 드디어 작별할 수 있다는 사실에 또 한 번 감사했다.
그날 이후 매일 저녁 “칙칙~ 폭폭!” 정겨운 소리와 함께 퍼지는 밥 냄새는 그 자체로 행복이었다.
타국의 부엌에서 처음으로 ‘우리 집’ 같은 냄새가 났다.
매일 저녁, 고소한 향을 머금은 따뜻한 공기가 주방을 가득 채우면 가족들이 하나둘 식탁으로 모여들 시간이 가까워졌다는 신호였다. 싱크대 앞에서 채소를 썰고 쌀뜬물에 된장 한 숟갈을 물에 풀어 찌개를 끓이다가도, ‘칙~’ 하는 소리와 함께 구수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면 나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코끝을 감도는 그 익숙한 향을 음미하다 보면, 주방을 맴도는 안온한 기운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그렇게 몇 달 동안, 타국에서 우리 집의 생존을 바카라임져 준 최고 효자템의 활약은 그야말로 대단했다.
부족함은 이토록 사소한 것도 특별하게 만든다.
이 무적의 꼬마 밥솥이 들어온 뒤로 흰쌀밥과 이유식을 척척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밥솥을 구했다고 해서 모든 게 해결된 건 아니었다. 입맛에 맞는 쌀 품종을 선택하는 것 또한 새로운 숙제였다. 러시아 마트에는 생각보다 정말 갖가지 종류의 쌀이 진열되어 있었다. 생각보다 러시아 사람들도 볶음밥 종류를 꽤 즐겨 먹는 모양이었다. 아무거나 호기심에 덥석 집었다가는 입안에서 쌀알이 따로 노는 ‘찰기 실종 사건’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자칫 원치 않는 동남아식 식단을 강제 배급받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마트에서 1kg짜리 ‘꾸반스키(Кубанский)’ 쌀을 무사히 공수해 오면 그다음 숙제는 보관이었다. 지퍼백도 아닌 얇은 비닐 포장이라 조금만 잘못 다뤄도 찢어지기 쉬웠다. 작은 쌀알들이 부엌 바닥에 와르르 쏟아지는 상상만 해도 아찔했다.
귀한 쌀을 한 톨도 잃을 수 없었던 우리는 페트병을 잘 씻어 말린 뒤 그 안에 보관하기로 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흔하디 흔한 깔때기가 왜 이곳에서는 그렇게 찾기 힘들던지.
쌀을 생수병에 옮겨 담는 날이면 우리 부부의 팀워크가 빛을 발했다.
종이를 돌돌 말아 임시 깔때기를 만드는 것부터 호흡이 잘 맞아야 했다. 한 사람은 생수병을 단단히 붙잡고, 다른 한 사람은 종이 깔때기 안에 조심조심 쌀을 부었다.
혹시라도 쌀 한 톨이 흘러내릴까 봐, 둘 다 입을 꾹 다문 채 숨소리마저 죽인 채 집중했다. 쌀 보관 하나에 이렇게 진심이라니! 새삼 진지한 서로의 모습이 우스워 꾹 참아보다 웃음이라도, '큭' 터지면 큰일이었다.
코평수를 힘껏 넓히는 한이 있어도 어금니를 사려 물던지 해서라도 어떻게든 참아야 했다.
그렇게 모스크바 집에서 국보급 대접을 받던 꼬마 전기밥솥과도 결국 작별할 시간이 왔다.
한국 귀국을 며칠 앞두고, 한인들이 주로 모여 있는 온라인 단체 채팅방에 중고 제품으로 밥솥을 내놓았다. 한국에서 산 가격의 3분의 2 정도로 올렸는데, 사진을 올리자마자 채팅창이 폭발하듯 불타올랐다. 채 30초도 지나지 않아 지금 바로 가지러 오겠다는 구매 희망자가 나타났다.
당일 저녁, 제법 먼 곳에서 눈보라를 뚫고 지하철을 몇 번이나 갈아타며 달려온 한국인 여대생들에게 정든 밥솥을 건넸다. 먼 타국에서 고생하는 유학생들의 모습에 마음이 쓰여, 정든 밥솥과 함께 아껴둔 한국 과자 몇 개를 덤으로 얹어주었다. 가다 말고 돌아서서 아이처럼 몇 번이나 고맙다고 인사하며 기뻐하는 그녀들을 보니, 대단한 일을 한 것도 아닌데 괜히 마음이 뿌듯해졌다.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에게 타지에서의 끼니 해결은 늘 간절하고 중요한 문제였을 것이다. 현지 지인들은 워낙 한국 밥솥이 귀해서 중고라도 구입가보다 더 비싸게 팔 수 있었다며 연신 아쉬워했다. 하지만 나는 그저 이 작은 밥솥의 쓸모를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에게 전달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우리 가족의 매 끼니를 지켜주었던 그 작은 밥솥이, 지금은 어느 집 자취방 창가에 놓여 있을지 문득 궁금해졌다. 아무쪼록 그 학생들의 식탁에도 구수한 밥 냄새가 작은 위로가 되어 주길....
모두 각자의 희망과 꿈을 품고 왔겠지만,
타국에서의 삶은 생각보다 화려하지도, 늘 성공적이지도 않을 것이다.
하지만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밥 한 그릇은 때때로 고단한 하루를 버티게 하는 소박한 안식이 되어줄 거라 믿는다.
오늘도 누군가의 타국살이 부엌에 따뜻한 밥 냄새가 오래도록 머물기를, 조용히 응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