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도 모르게 아이는 조금씩 자란다
모스크바의 유아 기관에 다닌 지 어느덧 두 달이 되어갈 무렵, 휴대폰에 메시지 하나가 도착했다.
내일 ‘엄마의 날’ 행사에 초대합니다.
러시아에서는 11월 마지막 주 일요일에 ‘마더스 데이(Mother’s Day)’ 기념하는데,
어머니인 여성에게 존경과 사랑의 마음을 담아 꽃이나 카드를 선물한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어버이날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한국에서 지인들과 연락할 때 주로 카지노톡을 사용하듯, 당시 러시아에서는 메시지를 보내야 할 때 왓츠앱(WhatsApp)을 많이 사용했다. 아이와 관련한 소통 창구로, 보다 정확한 의사전달을 위해 선생님과 나는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선생님이 러시아어로 작성한 뒤 영어로 번역한 메시지를 보내오면, 나는 영어로 답장을 쓴 후 러시아어로 번역한 문장을 함께 첨부하는 식이었다. 그렇게 번역기를 사이에 둔 채 서로의 언어를 오가며 종종 짧은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부터 유치원에 대해 긍정적인 인상을 가지고 있었지만, 아이를 맡기는 부모의 마음에는 늘 소소한 걱정도 따랐다.
'오늘 하루는 어땠는지',
'선생님의 지시를 잘 따르고 있는지',
'집에서 더 신경 써야 할 것은 없는지.'
다만 서툰 언어로 얼굴을 보며 선뜻 질문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원 시간마다 선생님들도 무척 분주해 보여 몇 번이나 말을 붙여보려다 결국 실패. 결국 잔뜩 늘어난 물음표를 마음에 담아둔 채 아쉬운 발길을 돌리곤 했다.
이런 나의 마음을 아셨던 걸까.
어느 날 선생님으로부터 메시지가 도착하기 시작했다. 주 2~3회 정도, 낮잠 시간 즈음이면 짧은 메모와 함께 아이의 사진이 전송되었다. 미간에 힘을 주고 집중해서 붓으로 과일을 색칠하는 모습, 친구들과 나란히 카펫 위에 앉아 한쪽 팔을 번쩍 들고 발표하려는 모습, 간식을 앞에 두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까지. 사진 속에는 유치원에서의 하루를 차곡차곡 채워 가는 아이의 생생한 일상이 담겨 있었다.
물론 한 달에 한 번씩 러시아어로 적힌 가정통신문도 따로 받았다. 일단 번역기를 돌려 대략적인 내용을 확인하곤 했지만,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이 맞는지, 혹시 놓친 부분은 없는지 늘 확신하기 어려웠다.
이런 상황에서 선생님의 짧은 메시지와 함께 도착한 사진들은 이런 나의 마음을 안심시켜 주었다. 마치 '괜찮아요. 걱정 마세요.'라고 격려를 담아 보내는 다정한 안부처럼 느껴졌다.
사실 아이의 하루를 기록한 사진과 소식을 매번 챙겨 보내는 일은 매우 번거로운 일일 터였다. 그래서 담임선생님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아마 선생님 나름의 방식으로 말이 통하지 않는 외국인 엄마의 불안을 다독여 주신 것이리라. 덕분에 나는 사진 속 아이의 표정을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보이지 않던 유치원에서의 일상을 조심스레 엿보고 안심할 수 있었다.
문득 전날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한 장이 떠올랐다. 아이와 친구들이 머리에 비닐 캡을 야무지게 쓴 채 반죽 만들기에 한창인 모습이었다. 뺨과 눈썹 주변에는 하얀 밀가루가 묻어 있었고, 작은 손들은 쉴 새 없이 반죽을 만지고 있었다. 사진 속 아이들은 하나같이 사뭇 진지한 표정이었다.
'오~오늘은 요리 시간이 있었구나. 정말 신났겠네.'
몰두하여 열심히 요리하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기특한 마음에 절로 웃음이 났다.
선생님은 초대 메시지 말미에 내일 행사에 참석할 수 있는지 물으셨다. 어차피 아이를 데리러 가야 했으니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흔쾌히 참석하겠다고 답하며 초대해 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덧붙였다.
다음 날, 평소보다 한 시간 일찍 유치원으로 향했다. 불과 몇 시간 전 헤어진 엄마였지만, 아이는 복도에서 마주친 나를 보자마자 뛰어와 꼭 안기며 반가움을 감추지 못했다. 사실 이때까지만 해도 '마더스 데이'가 정확히 어떤 행사인지 잘 몰랐다. 그저 꽃 한 송이나 카드 한 장을 건네받고 기념사진을 찍는 정도의 시간이겠거니 짐작했을 뿐이었다.
마중 나온 낯익은 선생님 한 분이 무용실을 연상시키는 큰 홀로 안내해 주셨다. 고풍스러운 무늬의 나무 마룻바닥 위에는 의자가 스무 개 남짓 놓여 있었고, 세로로 길게 난 창문 사이로는 따뜻한 햇살이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층고가 높은 덕분에 공간은 한층 더 시원하고 널찍해 보였다. 홀 안을 둘러보며 마치 외국 영화 속 작은 무도회장에 서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예정된 시간이 되자 학부모들이 하나둘 자리를 채웠다. 잠시 후 나뭇잎 왕관을 쓰고 나무 몸통을 연상시키는 갈색 앞치마를 두른 선생님 한 분이 앞으로 나와 스텐딩 마이크를 앞에 두고 인사말을 전하셨다. 분위기로 보아 곧 짧은 공연 시작될 모양이었다. 안내 말씀은 거의 알아듣지 못했지만, 나도 다른 부모들과 함께 분위기에 맞춰 열심히 박수를 쳤다.
실은 전날 저녁, 아이에게 유치원 행사에 갈 거라고 미리 일러두었다. 아이에게 돌아온 대답은 심드렁한 어투의 "알고 있어." 한마디가 전부였다.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얹지 않았다.
또래보다 말문이 늦게 트인 아이이기도 했지만, 경험상 아들들은 어릴 때부터 먼저 묻지 않으면 제 이야기를 좀처럼 꺼내지 않는다. 마치 발설해서는 안 되는 국가기밀이라도 되는 양 입을 다무는 통에, 아이의 하루를 알아내려면 늘 스무고개 퀴즈를 치러야 했다.
아이들의 등장을 기다리는 그 잠시의 시간 동안 기대감과 동시에 걱정도 슬그머니 고개를 들었다. 우리 아이도 선생님의 지시를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을까. 언어 문제는 그렇다 쳐도 더 어릴 적 한국 어린이집에 다닐 때만 해도 아이는 단체 활동보다 혼자만의 탐구생활을 훨씬 좋아했다.
'누가 뭐래도 난 내 갈 길을 간다!'가 삶의 모토인가.
괜스레 초조함에 두 손을 꼭 맞잡고 아이들이 들어올 방향의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곧 경쾌한 음악이 홀 안에 울려 퍼졌다. 문이 열리고 앙증맞게 양손을 허리에 올린 아이들이 박자에 맞춰 두 줄로 짝을 지어 입장했다. 객석에 앉아 있는 엄마들을 발견하자 아이들의 입꼬리가 슬그머니 올라갔다. 작게 손을 흔들기도 하고, 티 나지 않게 눈동자만 굴려 가족을 찾기도 했다. 그 작은 몸짓 하나하나가 어찌나 사랑스럽던지,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왼쪽 벽을 따라 놓인 의자들의 용도가 궁금했는데, 아이들은 음악에 맞춰 각자 제자리를 찾아 앉았다. 그리고는 앞에 선 선생님을 바라보며 고개를 까딱까딱 움직였다. 세 번째 줄에 앉은 우리 아이도 눈에 띈다.
'아니... 우리 애가?!!'
아이는 살짝 긴장한 듯 다소 표정이 굳어있었지만 선생님의 손짓에 맞춰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있었다. 곧 아이들은 앞에 핸들이 있는 것처럼 양팔을 앞으로 길게 뻗더니 이리저리 방향을 틀며 운전하는 시늉을 한다. 선생님이 무어라 구호를 외치자 운전 실력은 한층 과감해졌다. 속도를 즐기는 듯한 실감 나는 표정 연기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냥 막 돌리는 것 같아도 좌회전과 우회전 타이밍이 제법 정확하게 맞아떨어졌다. K팝 아이돌도 울고 갈 칼군무였다.
아니, 저 꼬마 기사님들은 아직 면허도 없는데 왜 이렇게 호흡이 잘 맞는 거지?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아이의 표정도 한층 밝아졌다. 극 전개와 별개로 나는 속으로 연신 탄성을 질렀다.
'어머나, 한다!
쟤가 같이 하고 있어!!!'
엄마는 아이의 모든 것을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순간에는 아이에 대한 모든 것이 새로웠다.
아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친구들과 동작을 맞추고 있었고, 이제는 객석에 앉아 있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활짝 웃는 여유까지 보였다.
불과 1년 전, 소풍 단체 레크리에이션 참여를 끝내 거부하고, 어디서 긴 막대기 하나를 주워 와 반나절 꼬박 혼자 개미떼를 쫓아다니던 아이였다. 그날 밤 잠든 아이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왜 우리 애만 어울리지 못하고 겉돌까'라는 질문을 붙들고 꽤 오래 속앓이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말도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타국에서, 저 작은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웃고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울렁거리는 감동이 찾아왔다.
아니, 이쯤 되면 감동이 체질인가?
으이구, 나도 어쩔 수 없는 도치맘인가 보다.
신나는 여행의 시작을 담은 짧은 극이 끝나고, 힘찬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아이들의 얼굴은 저마다 똘똘한 눈빛으로 객석을 바라보며 연극배우들처럼 예를 갖춰 인사를 했다. 얼굴엔 개구쟁이 같은 미소와 해냈다는 뿌듯함을 가득 담고서.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을 인솔하여 엄마들과 함께 교실로 안내해 주셨다. 학기 중에 아이가 생활하는 공간을 직접 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은근 가슴이 설렜다. 밝은 분위기의 교실에는 은은한 파스텔톤 카펫이 깔려 있었고, 한쪽에는 교구와 인형, 장난감 등이 오밀조밀하게 배치되어 있었다. 탁자며 의자 사이즈가 앙증맞아 백설공주에 나오는 난쟁이들 집에 방문한 기분이었다.
어른 무릎 정도 높이의 작은 바카라상들을 붙여 만든 테이블 위에 제법 공들인 다과상이 차려져 있다. 홈메이드인 듯 다소 투박하고 담백해 보이는 빵과 M&M 초코볼을 넣어 만든 초콜릿쿠키, 살짝 찌그러진 별 모양 버터쿠키, 삐뚤빼뚤하게 꽂혀 있는 색색의 과일 꼬치, 그리고 따뜻한 차를 준비해 주셨다. 보통 한국에서의 유아기관 행사라고 하면 공연이나 놀이가 끝난 뒤 기념사진을 찍고 서둘러 귀가하곤 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런데 이런 차림을 보니 오늘 행사가 더 의미 있게 다가왔다. 와서 보니 전날 사진 속에서 보았던 쿠키 만들기는 바로 오늘의 다과상을 위한 준비였다.
모양이 균일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이들이 솜씨를 부린 모양이었다. 초대한 엄마를 대접하겠다고 서툰 손으로 열심히 반죽을 밀고 과일을 꽂았을 아이들이 떠올라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소중한 사람들을 위해
마음을 쓰고 정성을 들여
무언가를 준비해 보는 경험,
이 또한 얼마나 좋은 교육인가.
아이의 옆자리에 나란히 앉아 간식을 먹는 시간 또한 무척 특별했다. 자기가 만든 쿠키가 얼마나 맛있는지 엄마가 알아주길 바라는 듯, 아이는 바쁘게 이것저것 먹어보라 권하며 내 표정을 살폈다. 그 뿌듯한 눈망울이 어찌나 귀엽던지 자꾸만 웃음이 났다.
어느덧 아이는 배가 부른 지 친구들과 교실 한쪽 구석으로 자리를 잡고 장난감을 가져와 놀기 시작했다. 나는 남은 다과를 들며 눈으로 교실을 둘러보다가 탁자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쾌활한 인상의 여성과 눈이 마주쳤다. 어색하게 미소를 지으며 눈인사를 건네자 그녀가 먼저 영어로 말을 걸어왔다. 나도 먹던 쿠키를 얼른 삼키고 차로 목을 축인 뒤 반갑게 말을 받았다. 하원 시간마다 계단에서 종종 마주쳐 얼굴은 익숙했지만 제대로 이야기를 나눠본 건 처음이었다.
누구의 엄마인지 몰라 아이의 이름을 먼저 물었다. 그녀는 "미쉘"이라고 답하며, 테이블 밑 카펫 위에서 우리 아이와 로봇을 가지고 놀고 있는 한 아이를 가리킨다. 앗! 가끔 선생님이 보내주신 사진 속에서 함께 찍혀 있던, 윤기 나는 갈색단발머리가 인상적이던 친구였다. 나는 사진들을 볼 때마다 뽀얀 얼굴의 동그란 눈을 가진 미쉘이 아기천사를 닮았다고 생각했었다. 미쉘의 엄마는 집에서 이미 새 친구에 대해 종종 들었다며 싱긋 웃어 보였다.
"좋은 친구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아들이 본래 친구에게 유독 관심이 적은 아이라 여겼다. 엄마의 복직을 위해 한국에서도 이른 나이부터 어린이집 생활을 시작했지만 친구들에게 관심을 보이기보다 혼자만의 놀이에 몰두하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래서 모스크바에 처음 왔을 때도 바랐던 것은 거창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말도 통하지 않는 유치원에 군말 없이 다녀주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다행이라 여겼다.
단순한 인사치레였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친구들과 잘 지낸다는 말 한마디에 안도감이 밀려와 괜스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갑자기 해피엔딩인가 싶지만.....
아쉽게도 이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훈훈한 엄마들의 대화가 오기는 와중에 갑자기 두 아이는 테이블 밑에서 소리를 지르며 공룡 장난감 하나를 두고 실랑이를 벌이기 시작했다.
아.... 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눈물도 쑥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방금 전까지는 사이좋게 로봇과 교구를 쌓아놓고 역할놀이를 하더니, 어느새 두 손에 야무지게 힘을 주고 양쪽으로 장난감을 당기며 씨름을 벌이고 있었다.
얼굴은 천사처럼 귀여운데 둘 다 성격은 막상막하인가 보았다. 그래서 친한가?
"No way!!!(안돼)"
"Stop it(멈춰)!!!"
아이들을 제지하려고 거의 동시에 외친 나와 미쉘 엄마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실소를 터뜨렸다. 엄마들끼리 통하는 미안함과 난감함, 그리고 동병상련의 동지애가 뒤섞인 웃음이었다.
이후 한 번씩 하원시간에 마주칠 때마다 미쉘 엄마는 반갑게 인사를 건네주었다. 우리 정서로 보면 러시아 사람들은 낯선 이에게 쉽게 미소 짓지 않는 편이라, 그녀의 밝은 인사가 유독 고맙게 느껴졌다. 귀국 날짜가 정해져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고 말했을 때도 그녀는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올해도 같이 다닐 수 있어서 좋았는데 아쉽네요."
그러더니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런데.... 얘가 이제 막 러시아어를 하기 시작했는데, 벌써 돌아가는 거예요?"
예상치 않던 말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나도 모르게 한 옥타브 높아진 목소리로 되물었다.
"네? 우리 애가 러시아어를 해요?"
그녀는 몰랐냐는 듯 빙긋 웃었다.
역시 엄마도 자기 아이를 다 아는 게 아니다.
정작 러시아어를 조금도 모르는 엄마 아빠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러시아어를 하는지 어쨌는지 전혀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녀는 나중에 모스크바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연락해 달라는 말과 함께 따뜻한 작별의 포옹을 건넸다.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우리는 가끔 그때 이야기를 꺼내곤 한다.
"오호, 왕년에 러시아어 좀 했다며?"
놀리는 듯한 엄마의 말에 아들은 금시초문이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괜찮다. 사람은 원래 망각의 동물이니까.
비록 아이의 기억 속에서 그때 배운 말들이 희미해졌을지 몰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그날의 풍경이 여전히 선명하다.
따뜻한 차의 온기
살짝 삐뚤어진 과일 꼬치들
모양이 개성 있던 쿠키의 달콤한 맛
그리고 다정했던 미쉘 엄마의 배려.
무엇보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조금씩 자라고 있던 너의 모습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