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도 없어요.
"아메리카노 주세요."
영어로 이야기한다.
이해하지 못한다.
이번에는 불어로 얘기한다.
이번에도 이해하지 못한다.
또박또박 아.메.리.카.노!!라고 이야기 해도 마찬가지다.
젊은 직원이든 나이 든 직원이든 당체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짓기는 마찬가지다.
파리에서조차 아메리카노라는 단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시기가 있었다. 이제는 메뉴판에 써놓은 곳도 있을 지경이지만 관광지역이 아닌 보통 카페에서는 여전히 들어볼 수 없는 단어이다. 진한 에스프레소보다 물의 양을 더 내린 커피인 ‘물을 탄 커피’라는 메뉴가 있다. 굳이 아메리카노를 먹고 싶다면 이 커피를 시킬 수밖에 없겠지만 엄연히 이 ‘물을 첨가한 커피’와 ‘아메리카노’ 사이에는 프랑스와 우리의 인식차이만큼이나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아메리카노란 '커피기계를 씻은 물' 정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물론 도저히 마실 수 없는 그 무엇일 뿐만 아니라 직접 그런 커피를 만들어 팔 수는 더더욱 없는 노릇이다. 당연히 그 누구도 감히 커피라고 이름 짓기도 민망한 물을 팔려고 하지 않는다. 물을 첨가한 커피는 에스프레소 잔보다 조금 더 큰 잔, 즉 우리에겐 보통 커피잔의 크기에 나온다. 물론 많지 않다. 보통 전통적인 영국찻잔 반 정도의 양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들에게 커피란 에스프레소이다. 작은 잔에 진한 원두를 짜내어 홀짝 한 모금 마시는 에스프레소가 커피다. 혹여나 그 커피가 식거나 하면 신선하진 않지만 급한 대로 다시 데워 마셔야 한다.
자고로 커피는 뜨거워야 한다.
어찌어찌 아메리카노는 '카페 아롱제' 물을 탄 커피라는 메뉴가 있어서 다행이지만 한국사람들이 추운 겨울에도 즐겨 마시는 아이스커피는 그들에겐 난해하기 그지없는 새로운 장르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커피란 모름지기 따끈하고 진해야 하는데 진하기는 양보가능해도 따끈하지 않은 식은 커피는 상상하기도 싫어한다. 당연히 쏟아부어 버려야 마땅한 커피일 뿐이다. 따끈한 커피에 물을 타는 것도 모자라 얼음을 부어 그 맹물이 커피에 녹아버릴 거라는 상상을 어찌할 수 있을까? 커피물에 얼음이 녹게 방치하는 것은 카페주인들이라면 심각하게 대안을 고려해야 할 일인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마치 고도의 칵테일을 만드는 기법으로 차가운 커피를 만든다. 잘게 부순 얼음을 한가득 칵테일 셰이커에 넣고 진한 에스프레소를 넣자마자 마구마구 흔들어준다. 최대한 얼음과 커피가 교차하는 시간을 최소한으로 그러나 격렬하게 셰이커를 흔들어 온도만 내리되 최소한의 맹물이 커피 안으로 녹아내리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칵테일 만드는 방식과 같다.
단 맛 조절을 위해서 가루설탕보다 시럽과 함께 내어준다.
칵테일 모히또를 만들 때 결코 커다란 얼음을 바카라임감 없이, 미적 감각 없이, 성의 없이 알코올과 주스를 섞어버린 액체에 풍덩풍덩 담그지 않는 이치와 비슷하다.
그래서 아이스커피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우리는 와그작와그작 얼음을 깨 먹으며 즐기는 시원함과 그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커피 향을 좋아한다. 프랑스사람은 한국인의 '아아'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국사람은 프랑스인의 에스프레소를 이해하지 못한다.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유럽사람들에게 커피이름으로 쓰기엔 그 저의를 알 수 없는 이름일 뿐이다. 그것은 마치 우리 전통 막걸리나 김치를 새로 생긴 지역에서 마음대로 변화하며 갖다 붙인 이름을 이해하는 것과 같은 난이도라고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까레예스키들이나 조선족들이 변형시킨 김치이름, 즉 모로코부차나 코레예스키 살라트를 우리가 모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될 것 같다.
프랑스는 꽤 오랫동안 아메리카노라는 이름을 거부했었다.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여전히 프랑스에서 시원한 '아아'나 커다란 머그잔에 한가득 흐리멍덩하게 나오는 아메리카노는 기대하기 힘들 것이다. 그런 기대보다는 그들의 시각으로 새롭게 태어난 "아아"를 경험해 보는 것에 의의를 둔다면 의외로 긍정적인 맛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은 일본이나 한국(일본) 카페풍의 커피숍이 많이 들어서면서 아아도 팔고 하루 종일 노트북 펼치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 분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