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가을, 감나무가 있는 풍경만큼 정겨운 것이 또 있을까. 감 익는 마을은 어디나 고향 같다. 석양에 물든 노을빛 감을 주렁주렁 매달고 선 감나무는 아련한 고향의 추억을 불러온다. 속달동 내 뜰에도 오래된 대봉 감나무 한 그루가 있다. 마치 고향 한 자락을 품에 안고 사는 느낌이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나무는 제 몸으로 시를 쓴다. 봄이면 연둣빛 새잎으로 수줍게 기지개를 켜고, 유백색 작은 감꽃을 피워낸다. 여름날엔 진청록 넓은 잎사귀로 그늘을 만들어 쉼터를 내어준다.
잎새 사이로 조그맣게 맺혔던 감은 여름 내내 몸집을 불리며 계절을 건너간다. 마침내 서늘해지는 바람결에 감들이 익어가며 가을도 깊어진다. 가지마다 매달린 탐스러운 감들은 마당 한구석을 따스하게 밝혀주는 오렌지빛 등불 같다고 할까.
밤새 갈바람이 다녀간 아침, 바스락거리는 낙엽 위로 잘 익은 아람들이 툭툭 떨어져 있다. 가을이 한 움큼씩 내려앉은 듯하다. 나무에 매달려 햇살과 바람을 견디며 천천히 익어온 시간들. 가지를 떠나 땅 위에 누웠지만, 그 빛깔은 여전히 곱고 깊다. 오래 견디고 충분히 익은 것들이 내는 빛은 이토록 따습고 아름답다.
올해도 감나무는 최선을 다해 가을을 내주었다.
맑고 하늘이 예쁜 날, 한 길 높아진 푸른 하늘을 이고 곱게 물든 대봉감을 땄다. 감나무 가지 위 까치 한 마리, 잘 차려진 밥상을 빼앗길까 요란하게 울어댔다. 걱정 마라. 너 먹을 몫은 남겨주마.
수확이라고 하기에는 단출한 양이지만 까치밥 챙겨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많이 열렸다고 기뻐하고, 적다고 서운해할 일이 아니다. 봄부터 제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열매를 키워낸 고목의 수고가 대견하고 고맙다. 그저 함께 또 한번의 가을을 맞았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생각해 보면 고향이란 꼭 태어나고 자란 장소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 싶다. 해마다 같은 자리에서 잎을 틔우고 열매를 맺는 나무 한 그루, 계절이 바뀔 때마다 변함없이 찾아오는 풍경 하나, 아무 말 없이 곁을 지켜주는 존재가 있는 곳. 그런 곳이라면 어디든 고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속달동 내 뜰의 감나무는 이제 내게 그런 나무다.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에도 제자리에서 계절을 지나며 해마다 과실을 내어준다. 서두르지 않고, 남과 견주지 않고, 제게 주어진 시간을 묵묵히 살아내는 모습이 우리네 삶과 닮아서 어쩐지 허물없는 친구 같기도 하다.
나무는 해마다 늙어가겠고, 그 아래를 오가는 나의 시간도 그만큼 지나갈 것이다. 언젠가 지금보다 더 고목이 되어 가지가 성글어지는 날이 오더라도, 나는 이 나무가 건네준 가을을 기억할 것이다. 주황빛 감이 햇살에 반짝이던 날들, 낙엽을 밟으며 감나무 아래를 서성이던 아침, 바구니에 감을 따담으며 흐붓했던 마음까지.
감을 딴다는 건 가을이 깊었다는 것이고 가을을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기도 하다.
할 일을 다하고 한결 가벼워진 감나무는 감잎마저 하나씩 떨구고 동안거에 들것이다. 수고한 감나무 덕에 나의 겨울은 발갛게 익은 홍시를 기다리는 시간이다.
올해도 감나무 한 그루가 안겨주는 기쁨을 흠뻑 누렸다. 아기 주먹처럼 앙증맞게 오므린 새순이 돋아나던 봄부터, 노란 감꽃이 살포시 피어나던 초여름을 지나, 초록 감들이 알알이 여물고 마침내 주황빛으로 물들기까지. 감나무가 펼쳐 보이는 계절의 변화를 지켜보며 수확의 기쁨은 물론, 가을의 낭만까지 만끽했다.
감나무 한 그루가 있어 내 뜰은 해마다 고향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