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존재의 가치조차 작아지는가?
‘무명’ 이라는 단어를 개인적으로는 좋아하지 않는다. 없을 무(無)에 이름 명(名) 자를 합친 이 단어는 뜻풀이 그대로 ‘이름이 없다’ 라는 의미이다. 보통은 가수나 배우, 코미디언 등 대중들에게 본인 이름 석 자를 알려야 하는, 하지만 아직은 열매가 익지 않은 연예인들에게 많이 쓰인다.
이 논리에 비유하면 나는 아직 무명이다. 연기를 배우기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이제 첫 발을 내딛는 사람이니까.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상하다. 이름이 없다는 말이 정말 맞는 말일까? 나에게는 이름이 있다. 태어나기도 전에 누군가가 고민해서 지어준 이름이다. 우리는 이름을 스스로 고르지 못한 채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그 이름으로 살아가는 삶은 다르다. 이름은 받는 것이고, 삶은 쓰는 것이다. 받은 것은 내 것이 아닐 수 있어도, 쓰는 것은 누구도 대신 쓸 수 없다. 그러니 이름이 있다는 것은 이미 내 삶이 시작됐다는 뜻이다.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은 있어도 같은 삶을 사는 사람은 없다. 각자의 이름이 다른 이유는 아마 각자의 삶이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무명'은 이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이름이 불리지 않는다는 뜻에 가깝다. 그리고 이름이 불리는 범위는 사람마다, 또 관계마다 다르다. 어머니에게 나는 무명이 아니다. 오랜 친구에게도 마찬가지다. 그들에게 나는 이름만 들어도 얼굴과 목소리와 지난 시간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사람이다. 같은 사람이 누구에게는 무명이고, 누구에게는 세상의 중심이다. 결국 유명과 무명은 존재의 등급이 아니라, 이름이 불리는 범위의 차이일 뿐 아닐까. 그 범위가 넓다고 해서 삶이 더 깊은 것도, 좁다고 해서 더 얕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무명'이라는 말 앞에서 작아질까. 무명 배우, 무명 작가, 무명 가수. 이 말에는 '아직'이라는 단어가 조용히 숨어 있다. 아직 인정받지 못한, 아직 알려지지 못한. 유명해지는 것이 도착점이고 무명은 거기로 가는 과정이라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아직 부족한 과정보다는 완벽한 결과를 보여주고자 하는 인식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싶다. 나 역시 이 말이 나를 '아직 아닌 사람'으로 만드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나는 연기를 배우는 지금도 이미 연기하는 사람이다. 대본을 읽고, 인물의 마음을 상상하고, 틀리고 다시 해 보는 이 시간은 누가 알아주기 전에도 분명히 존재한다. 불리지 않는다고 해서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이렇게 말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흔들릴 때가 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데 스스로 괜찮다고 믿는 것만으로 충분할까. 이름이 불린다는 건 어쩌면 사람의 아주 근본적인 바람인지도 모르며, 외로운 순간도 분명 있다. 그래도 나는 생각한다. 불리기를 바라는 마음과 지금의 삶이 온전하다는 믿음은 서로를 밀어내지 않는다고. 이름이 불리기를 기다리면서도, 불리지 않는 오늘을 충분히 살아 낼 수 있다고. 오히려 아무도 보지 않는 시간을 어떻게 채웠는지가 나중에 불리우게 될 이름의 무게를 정하는 것 같다.
그리고 한 가지를 더 생각하게 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내가 이름조차 모르는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하루를 살고 있다. 그들에게 나는 무명이고, 나에게 그들도 무명이다. 누군가에게는 이 사실이 쓸쓸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읽기를 바란다. 내가 모르는 이름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내가 아직 듣지 못한 이야기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무명은 이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 내가 그 이름을 부르지 못한 것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니 무명인 사람은 없다. 모든 사람에게는 이름이 있고, 그 이름 아래에는 저마다 다른 삶이 있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주인이다. 나는 이제 '무명'이라는 말을 조금은 다르게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아직 불리지 않았을 뿐, 이미 시작된 이야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