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극

나는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일까?

by박민제

나는 나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


오랫동안 자신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어떤 상황에서 상처받고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적어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설명하는 일만큼은 다른 누구보다 자신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가끔 나에 대한 타인의 평가를 들을 때면 낯선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분이 든다.

누군가는 나를 다정한 사람이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무심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에게는 말수가 적은 사람이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지나치게 말이 많은 사람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중 어느 쪽이 진짜 나인지 생각하곤 했다.


처음에는 나를 가장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나 자신이라고 믿었다. 타인은 내가 보여준 모습만 알지만, 나는 그 행동에 이르기까지의 마음을 알고 있으니까. 말하지 못한 이유와 끝내 꺼내지 않은 생각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나뿐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오히려 나를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내가 한 행동을 기억할 때 그 행동의 이유까지 함께 떠올린다. 누군가에게 차갑게 굴었던 날에는 그날의 피로를 기억하고, 연락을 미뤘던 순간에는 당시의 사정을 떠올린다. 상처를 주었던 말에도 나름의 의도가 있었다고 생각한다.


내 기억 속에서 나는 언제나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 설명을 듣지 못한 사람에게도 같은 일이 일어났을까.

내가 무심코 지나친 말이 누군가에게는 오래 남았을 수 있다. 나는 조심스럽게 침묵했다고 생각했지만, 상대는 그 침묵을 무관심으로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순간이 다른 사람에게는 나를 설명하는 가장 선명한 장면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아는 나와 타인이 아는 나 중 어느 쪽이 더 정확한 것일까.

쉽게 답할 수 없었다.

내 마음을 안다는 이유로 타인의 기억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누군가의 기억 속에 남은 모습만으로 나라는 사람을 설명할 수도 없다.

사람은 자신의 의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지만, 타인의 해석만으로 완성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비교적 쉽게 인정한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도 서로에게 말하지 않은 생각이 있고, 함께하지 못한 시간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 자신에게는 그 사실을 적용하지 않는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는 부분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보다, 다른 사람이 나를 오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어쩌면 우리는 타인의 오해보다 자신에 대한 설명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일을 더 견디기 어려워하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어진다. 내가 왜 그랬는지, 그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상대가 알지 못하는 사정이 무엇이었는지 설명하고 싶어진다.

물론 오해는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사실과 다른 기억이 언제나 존중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누군가가 나를 부당하게 규정한다면 그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어야 한다.


하지만 모든 평가가 오해인 것은 아닐 것이다.

내가 다정한 사람이고 싶었다고 해서 누군가에게 다정했던 것은 아니다. 상처 줄 생각이 없었다는 사실이 상대가 받은 상처를 없애주지는 않는다.

의도는 내 행동을 설명할 수 있지만, 그 결과까지 대신 결정하지는 못한다.

그렇다면 나는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남은 나를 어디까지 바카라임져야 할까.

그 질문 앞에서는 다시 망설이게 된다.


타인이 나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모두 통제할 수는 없다. 같은 말을 듣고도 누군가는 위로받고 누군가는 상처받을 수 있다. 상대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언제나 잘못한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내가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아무런 바카라임도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마음에 남은 나를 전부 바카라임질 수는 없지만, 내가 그 사람에게 실제로 한 말과 행동까지 없었던 일로 만들 수는 없다.

그 사이에는 분명한 경계가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그 경계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한때는 사람에게 진짜 모습이라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성격이나 타인의 평가와는 별개로, 마음 깊은 곳에 변하지 않는 본래의 내가 존재한다고 믿었다.

하지만 그 진짜 모습이라는 것은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

혼자 있을 때의 내가 진짜 나일까.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의 내가 진짜 나일까. 화가 났을 때 드러나는 모습은 평소의 나보다 덜 진실한 것일까.

어느 하나만을 선택하기는 어렵다.


나는 다정할 때도 있고 무심할 때도 있다. 누군가를 이해하려고 애쓰면서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쉽게 등을 돌린다. 스스로 옳다고 믿는 일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날도 있다.

그중 마음에 드는 모습만 골라 진짜 나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고 내가 저지른 가장 나쁜 행동 하나가 나의 전부라고 말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진짜 나를 찾으려는 마음에는 자신을 하나의 모습으로 정리하고 싶은 욕망이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가능하다면 다른 사람에게도 그렇게 기억되고 싶다. 다정한 사람이고 싶고, 믿을 만한 사람이고 싶으며, 적어도 누군가에게 함부로 상처를 주는 사람은 아니고 싶다.

하지만 되고 싶은 사람과 이미 그런 사람이라는 믿음 사이에는 거리가 있다.

그 거리를 인정하는 일은 생각보다 불편하다.

타인이 나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만큼, 내가 나를 잘못 이해했을 가능성도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의 평가를 모두 받아들이며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

누군가에게 좋은 사람으로 남기 위해 자신의 마음을 계속 바꾸는 삶도 결국 타인의 이름으로 살아가는 일일 테니까.

나는 나를 설명할 권리를 잃고 싶지 않다. 동시에 다른 사람이 나를 다르게 기억할 자유까지 빼앗고 싶지도 않다.


두 가지를 함께 지키는 일이 가능한지는 아직 모르겠다.

다만 이제는 누군가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다른 모습을 이야기하더라도, 곧바로 틀렸다고 말하지는 않으려 한다.

그 사람이 무엇을 보았는지, 나는 무엇을 보여주었는지 생각해 보고 싶다.

그 기억이 부당하다면 설명할 것이고, 내가 미처 보지 못한 모습이라면 오래 들여다볼 것이다. 어떤 기억은 끝내 서로 다르게 남을 수도 있다.

나는 앞으로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묻게 될 것이다.

다만 그 질문에 답하는 사람이 언제나 나 혼자일 수는 없다는 사실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내가 모르는 나는 어쩌면 다른 사람의 기억 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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