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오래 알고 지냈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다 안다고 믿는가?

by박민제

사람에 대한 기대를 놓은 지가 어엿 된 것 같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사람에 대한 미련을 가지지 않기로 마음 먹었다 라고 표현하는 게 맞으려나. 그래, ‘가는 사람 굿바이, 오는 사람 웰컴’ 이라는 말이 가장 잘 맞겠다.


최근에 7년된 친구와의 관계가 멀어졌다. ‘우리 다시는 보지 말자’ 라고 확언을 하지는 않았다만, 솔직히 다들 마음속으로 느껴지지 않는가. 전과 같은 관계가 계속해서 유지되기 힘들다는 것을.


나는 친구 관계의 가장 중요한 가치를 '함께 시간을 보낼 때 행복한가'에 둔다. 사람은 혼자서는 채울 수 없는 감정이 있고, 그러한 절반의 감정을 채우기 위해 서로를 찾는다고 믿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관계가 멀어진다는 것은 서로가 서로의 빈 곳을 더는 채워 주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다. 한동안은 분명히 채워 주었다. 7년이라는 시간이 그 증거다.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했고, 별것 아닌 일에도 숨이 넘어가게 웃었던 날들이 있었다. 다만 사람이 변하고 필요한 것이 달라지면서, 예전의 방식으로는 더 이상 서로를 채울 수 없게 된 것이다. 그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계절이 바뀌었다고 해서 봄이 잘못한 것이 아닌 것처럼.


그래서 미련을 두지 않기로 했다. 정이 없어서가 아니다. 붙잡으려 할수록 서로에게 부담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억지로 이어 붙인 관계는 만날 때마다 예전의 우리와 지금의 우리를 비교하게 만든다. 예전에는 이 정도로 어색하지 않았는데, 예전에는 말이 끊기는 법이 없었는데. 그 비교는 결국 좋았던 기억마저 빛바래게 한다. 의무감으로 나온 약속에서 시계를 힐끔거리다 헤어지고 나면, 그날의 어색함이 7년의 추억 위에 얼룩처럼 남는다. 나는 그게 싫었다. 차라리 그때의 우리는 그때의 우리로 남겨 두는 편이 낫다고 생각한다. 가장 좋았던 모습으로 기억할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하면 너무 쉽게 포기하는 사람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놓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붙잡고 있는 편이 훨씬 쉽다.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아도 되고, 끝났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아도 되니까. 애매한 상태로 남겨 두면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희망이라도 쥐고 있을 수 있다. 반면 놓는다는 것은 그 희망까지 함께 내려놓는 일이다. 이제 그 사람과의 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을 내 입으로, 내 마음으로 인정하는 일이다. 그건 쓰라리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그래도 나는 그 쓰라림을 지나가기로 했다. 흐지부지 끌려가는 것보다는, 아프더라도 한 번 정리하고 나아가는 쪽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정직한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히 해 두고 싶다. 기대를 놓는다는 것이 사람 자체를 놓는다는 뜻은 아니다. 7년 동안 그 친구와 함께 웃고 떠들었던 시간은 지금의 나를 만든 일부분이다. 그 애 덕분에 알게 된 노래가 있고, 그 애와 함께 가 본 장소가 있고, 그 애에게 배운 말버릇이 아직도 내 입에 남아 있다. 관계가 끝났다고 해서 그 시간이 거짓이 되지는 않는다. 나는 다만 '영원'이라는 단어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았을 뿐이다. 모든 인연에는 각자의 계절이 있고, 어떤 인연은 그 계절이 남들보다 조금 일찍 끝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사실 사람에 대한 기대를 놓았다고 하면, 사람이 싫어졌거나 지쳤다는 뜻으로 오해받기 쉽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기대는 조금 다르다. 한 번 가까워진 사람은 계속 가까울 것이라는 기대, 내가 마음을 쓴 만큼 상대도 같은 크기로 돌려줄 것이라는 기대, 좋은 관계는 노력하면 반드시 지켜질 것이라는 기대. 그런 것들이다. 이 기대들은 얼핏 당연해 보이지만, 사실 상대의 마음과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 가깝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누구도 통제할 수 없다. 나조차 내 마음을 내 뜻대로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남의 마음에 약속을 받아 낼 수 있을까. 그걸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다. 실망할 일이 줄었고, 서운함이 오래가지 않았다.


신기한 건 기대를 내려놓고 나니 지금 곁에 있는 사람들이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언제든 달라질 수 있는 관계라는 걸 알기에, 함께 웃을 수 있는 오늘이 더 고맙게 느껴진다. 별일 없이 안부를 묻는 메시지 하나, 시간을 내어 만나 준다는 사실 자체가 당연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내 곁에 있어 주는 게 당연한 줄 알고 살았다. 이제는 그게 얼마나 많은 우연과 선의가 겹쳐서 이루어지는 일인지 안다.


또 하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이 덜 부담스러워졌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누군가와 가까워질 때마다 이 관계가 끝나면 어쩌지 하는 걱정이 은연중에 따라붙었다. 상처받을까 봐 마음을 반만 열기도 했다. 그런데 모든 관계가 끝날 수 있다는 걸 처음부터 받아들이고 나면, 오히려 지금 이 순간에 더 솔직해질 수 있다. 끝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시작을 망설일 이유가 없어진다. 언젠가 헤어지더라도, 함께 있는 동안 진심으로 즐거웠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니 가는 사람은 잘 가라고, 오는 사람은 반갑게 맞이하자. 이 말이 체념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내게는 오히려 가장 다정한 태도에 가깝다. 떠나는 사람을 원망하지 않고, 다가오는 사람에게 문을 닫지 않는 것. 떠나는 사람의 뒷모습에 고마웠다고 속으로 인사하고, 새로 오는 사람에게는 처음 사귄 친구처럼 설레는 마음으로 손을 내미는 것. 그렇게 마음의 문을 적당히 열어 둔 채로 살아가는 것이 지금의 내가 찾은 관계의 방식이다. 7년 된 친구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우리는 앞으로 다시 예전처럼 가까워지지 못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몇 년 뒤 우연히 마주쳐서 어색하게 웃으며 근황을 묻는 사이가 될 수도 있겠다. 그래도 괜찮다. 그때 나는 아마 이렇게 말할 것 같다. 잘 지냈지, 보기 좋다고. 그리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우리가 함께한 시간은 충분히 좋았고, 그 시간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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