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상대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사랑하는가?
A를 처음 사랑했을 때, 나는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좋았다.
내가 알지 못하는 생각을 하고, 내가 지나쳐 온 것들에 마음을 두는 사람. 같은 풍경 앞에서도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일이 신기했다. 나는 A가 살아온 시간을 알지 못했고, 그 시간이 만들어 놓은 마음의 모양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더 알고 싶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가 한 사람의 모습으로 내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사랑이란 어쩌면 그런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와 다른 한 사람을 발견하고, 그 사람의 세계에 조금씩 발을 들여놓는 일. 내가 알던 세상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누군가를 통해 배우는 일.
그때의 나는 A를 이해하고 싶었다. A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순간에 마음이 움직이는지, 어떤 생각 끝에 지금의 사람이 되었는지 오래 궁금해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랑이 깊어질수록 그 궁금증은 조금씩 사라져 갔다.
처음에는 이해하고 싶었던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이해받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A가 나와 다른 생각을 할 때면 그 생각에 이르기까지의 시간을 헤아리기보다 왜 나와 같지 않은지를 먼저 물었다. 나와 다른 방식으로 마음을 표현하면 그 마음을 알아보려 하기보다 내가 기다리던 표현이 아니라는 사실에 서운해했다.
나는 A를 알아가는 일보다 A가 나를 알아주기를 바라는 일에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사랑하는 동안 나는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조금 더 다정했으면 했고, 조금 더 내 마음을 헤아려주었으면 했으며, 때로는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들을 A도 같은 무게로 받아들여주기를 바랐다. 하나씩 꺼내놓으면 그리 어려운 부탁처럼 보이지 않았다. 사랑하는 사이에 그 정도는 기대할 수 있다고 믿었고, 나 역시 A를 위해 많은 것을 양보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내 바람에는 좀처럼 끝이 없었다. 하나를 이해받으면 다른 하나가 아쉬웠고, 어떤 기대가 채워지면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기대가 생겨났다. 나는 그 모든 것을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놓아두었다. 우리가 조금 더 행복해지기 위해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했으므로, 내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 깊이 의심하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나는 A에게 내가 원하는 사람의 모습을 조금씩 덧씌우고 있었다.
그 모습은 처음부터 완성되어 있지 않았다. 함께하는 시간이 쌓일수록 내가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이 분명해졌고, 그에 따라 A가 어떤 사람이었으면 좋겠는지도 선명해졌다. 내가 좋아하는 모습은 오래 남겨두고 싶었으며, 마음에 들지 않는 모습은 언젠가 달라질 수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면서도 나는 A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사랑하는 사람을 바꾸려 한다는 것은 나와는 거리가 먼 이야기라고 여겼다. 나는 A에게 전혀 다른 삶을 살라고 요구한 적이 없었고, A가 소중하게 여기는 모든 것을 버리라고 한 적도 없었다. 다만 우리가 조금 더 잘 맞기를 바랐을 뿐이다.
하지만 그 말에는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방향이 있었다.
우리가 잘 맞는다는 것은 어떤 모습일까. 서로의 차이를 조금씩 이해하는 것일까, 아니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기대에 가까워지는 것일까. 당시의 나는 그 둘을 구분하지 못했다. 내가 편안해지는 순간을 관계가 좋아지는 순간이라고 생각했고, A가 내 바람과 다른 모습을 보일 때면 우리가 아직 충분히 서로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 이해의 끝에 어떤 사람이 서 있어야 하는지는 이미 내가 정해놓은 뒤였다.
나는 A에게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해주기를 바랐다. 나의 서투른 마음과 쉽게 설명되지 않는 감정까지 헤아려주기를 원했고, 때로는 나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A만큼은 이해해주었으면 했다. 그런데 정작 A가 내 기대에서 벗어날 때면 그 다름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내게는 이해받아야 할 이유가 많았지만, A에게는 달라져야 할 이유가 많았다.
그 사실을 깨닫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사랑하는 동안에는 나의 서운함이 언제나 가장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느낀 감정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그 감정이 생겨난 이유도 얼마든지 설명할 수 있었다. 반면 A의 마음은 A가 말해주는 만큼만 알 수 있었다. 알지 못하는 부분은 내 경험과 기대를 바탕으로 채워 넣었고, 그렇게 완성한 A의 모습이 실제 A와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은 자주 잊었다.
나는 A를 잘 안다고 믿었다.
함께 보낸 시간이 있었고, 서로에게만 보여준 얼굴들이 있었으며,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아들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군가를 오래 알고 지냈다는 사실이 그 사람을 온전히 이해한다는 뜻은 아니었다. 익숙함은 때때로 더 이상 묻지 않아도 된다는 착각을 만들었다.
나는 A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새로운 것을 알려고 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다고 믿는 모습에서 A가 벗어날 때마다 그 변화를 궁금해하기보다 낯설어했고, 낯선 마음을 마주하면 이해하기보다 서운해했다.
A는 계속해서 A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나는 내가 기억하는 A가 그대로 머물러 있기를 바랐다.
어쩌면 나는 A를 사랑하면서 A에 대한 하나의 완성된 이야기를 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 속에서 A는 내가 기대하는 순간에 나를 이해했고, 내가 바라는 방식으로 마음을 건넸으며, 우리의 미래를 내가 상상한 풍경과 비슷한 모습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A는 내가 쓴 이야기 속 인물이 아니었다.
A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생각이 있었고, 나를 만나기 전부터 이어져 온 삶의 방식이 있었다. 나와 함께하는 동안에도 A의 마음은 움직이고 달라졌을 것이다. 내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모든 시간이 내게 익숙한 모양으로 바뀌어야 할 이유는 없었다.
그 당연한 사실을 나는 너무 늦게 이해했다.
우리는 결국 헤어졌다.
이별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서로 다른 마음이 있었고, 끝내 좁혀지지 않은 거리도 있었으며,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일들도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을 이제 와서 나의 잘못 하나로 설명하고 싶지는 않다. 우리가 서로에게 맞지 않는 사람이었을 가능성도, 함께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끝내 찾지 못했을 가능성도 그대로 남겨두고 싶다.
다만 이별한 뒤에도 오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나는 A를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얼마나 자주 A가 아닌 사람을 기다렸을까.
내가 기대했던 모습과 다른 A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실망했다. 그 실망은 사랑이 부족해서 생긴 것이라고 믿었지만, 어쩌면 사랑에 대한 내 기대가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A가 건네는 마음을 있는 그대로 받아보기 전에, 그것이 내가 기다리던 모양과 같은지부터 살폈다.
그렇게 놓쳐버린 마음들이 있었을 것이다.
물론 사랑한다는 이유로 모든 차이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다름은 서로를 아프게 하고, 어떤 기대는 관계를 지키기 위해 반드시 이야기해야 한다. 함께할 수 없는 이유를 발견하는 일도 때로는 사랑의 한 부분일 것이다.
하지만 함께할 수 없다는 사실과 상대가 잘못된 사람이라는 결론은 같은 말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사랑을 줄 수 없었다는 이유로, A가 가진 사랑의 방식까지 부족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나는 그 둘을 자주 혼동했다.
A가 내게 맞지 않는 순간마다 A의 모양을 고치려 했고, 그렇게 고쳐진 모습이 우리가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모습이라고 믿었다. 그 과정에서 A가 무엇을 잃어야 하는지는 충분히 생각하지 못했다.
내가 바라는 사람이 되어달라는 말은 때때로 지금의 너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말과 닮아 있었다.
그 사실이 뒤늦게 마음에 남았다.
헤어진 뒤의 A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시간이 흐르며 무엇이 달라졌는지, 어떤 마음을 새롭게 품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한때는 A에 대해 누구보다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믿었는데, 이제는 모르는 것이 더 많아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사실이 예전처럼 불편하지 않다.
A에게는 내가 알지 못하는 삶이 있고, 그 삶은 나와 함께하지 않는 시간에도 계속된다는 것.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선택을 하더라도 그 선택에는 A만의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이유를 내가 모두 알아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
사랑하는 동안에는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했던 사실들이, 더는 사랑하는 사람의 자리에 설 수 없게 된 뒤에야 조금씩 이해되었다.
가끔은 우리가 처음 만났을 때를 생각한다.
그때 나는 A가 나와 다르다는 사실을 좋아했다. 알지 못하는 것이 많아서 궁금했고,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이 있어서 더 가까이 가고 싶었다. 사랑이 시작되던 순간의 나는 A를 나와 같은 사람으로 만들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저 A라는 사람이 좋았다.
그 마음이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다. 다만 가까워진다는 이유로 서로의 경계를 지워도 된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이 있었고, 사랑한다는 이유로 내 바람을 상대의 몫으로 돌려놓았던 날들이 있었다.
나는 A를 사랑했다. 그 마음까지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것과 한 사람을 잘 사랑하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나는 A를 사랑하면서도 A가 A로 남아 있는 일을 어려워했다.
한때 나는 A의 이름을 하루에도 몇 번씩 불렀다. 반가워서, 보고 싶어서, 때로는 서운한 마음을 전하고 싶어서 그 이름을 불렀다. 그 이름을 부르면 A가 나를 돌아보았고, 나는 그 익숙함 속에서 우리가 서로의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군가의 이름을 오래 불렀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나의 것이 되는 것은 아니었다.
A에게는 나를 만나기 전부터 자신의 이름으로 살아온 시간이 있었고, 나와 함께하는 동안에도 내가 알지 못한 마음들이 있었다. 나는 그 모든 시간을 가진 사람을 사랑하기 시작했으면서, 사랑이 깊어질수록 내가 원하는 모습만 남겨두려 했다.
이제는 A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다만 가끔 그 이름을 떠올리면, 내가 A에게 바라던 수많은 모습이 함께 생각난다. 조금 더 다정한 사람, 조금 더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 내가 사랑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
그것들은 내가 사랑하고 싶었던 사람의 모습이었다. A의 이름은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