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원금이 소멸하기 전에 다초점 렌즈를 교체했다. 매번 먹거리로만 소모됐던 것을 이번엔 달리 쓸 수 없나 미뤄 뒀다가 한 몫에 해결한 셈이다. 임박해서야 한꺼번에 해치우는 버릇을 이번에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평생을 두고도 쉽지 않네 실소했다. 남편은 내 얼굴에 작은 점까지도 너무 잘 보인다고 했다. 적당히 눈감아 주는 부분도 있어야 되는데 콩이야 팥이야 너무 솔직하면 곤란하겠다. 늘그막에 헤어질 결심이 아니라면 보이는 대로 다 말했다간 위태로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어지러웠다. 안과에서 도수는 더 높일 필요 없겠다고 해서 쓰던 데로 했는데 선명도에 치중된 건지 전에 쓰던 것 같지 않았다.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고 했다. 처음 쓰는 것도 아닌데 교체할 때마다 적응 기간이라니 수긍이 쉽지 않았다. 안경을 교체하기 전에 굳이 안과를 거치는 이유도 도수뿐만이 아니라 내 시력 상태를 알기 위해서다. 무리하게 올릴 필요 없이 그대로 유지하는 게 낫다고 하면 그 편을 따라왔다.
선명도를 측정하는 과정에서 미세한 차이는 있을 수 있다. 눈동자만 움직이지 말고 얼굴 전체를 좌. 우로 움직이는 것은 필수다. 너무 급격하게 위아래를 훑어보지도 않는다. 근거리와 원거리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두 기능을 하나에 담으려니 무리는 있을 것이다. 각각 따로 쓰면 좋은데 바꿔 쓰는 번거로움을 한 번에 해결하려니 위아래 비율이나 각도가 조금만 달라도 어지러운 것이다.
전자제품도 다기능이 편리한 만큼 숙지하는 데에 다소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비슷한 이치일 것 같다. 편리함 뒤에 숨은 일시적인 불편함이라 감수해야 할 부분이긴 하다. 처음의 불평했던 마음도 슬며시 누그러지고 그야말로 적응해 갔다. 먼 데 사물은 비 온 뒤의 풍경처럼 말끔한데 근거리의 조율이 필요할 것 같았다. 조금은 굴절돼 보이는 부분이 분명 있었다. 한 번 더 방문을 해야 했다.
어디가 어떻게 불편한지 구체적으로 설명한 뒤에 수정을 거쳐서 편안한 상태를 이끌어 내는 일이었다. 적응기간이란 자신을 잘 대변하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의 의견을 잘 듣고 그대로 이행하는 시간이기도 했다. 나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치료받아야 할 것은 엄연히 달랐다. 내 행동만으로 개선될 수 있는 것은 적극 노력하는 게 맞다. 적응한다는 것은 내 안에 긍정을 찾아내는 일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접점을 찾아 받아들이는 과정이었다.
적응 기간이 짧을수록 갈등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애달복달 감정을 실어 속상해하다 보면 해결점은 없고 불평만 늘어놓게 된다. 좀 더 적극적으로 나를 살피는 것이 상대방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이기적인 것 같지만 그 편이 서로의 시간과 마음을 동시에 챙기는 길이었다. 항상 귀찮고 번거롭게만 생각하는 마음이 문제였다. 모든 관계 또한 그랬다. 스스로를 대변하는 성실한 안내자가 됐을 때 가감 없이 편안해지곤 했다. 예습보다 복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