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나, 남이 아는 나 ⑴
내가 쓴 나의 이야기
며칠 전, 한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뜻밖의 말을 들었다.
“그분이 그러던데요. 교수님은 원래 사람들과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으신다고.”
나는 잠시 웃었다.
맞는 말이기도 하고, 틀린 말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한다.
여럿이 모인 자리에서 많은 사람과 두루 이야기를 나누기보다는, 몇 사람과 마주 앉아 한 사람의 생각을 오래 듣고 내 생각도 깊이 나누는 쪽을 더 좋아한다.
‘어울린다’는 말이 여럿 속에 두루 섞이는 것을 뜻한다면, 그 말은 틀리지 않다.
하지만 ‘어울린다’는 말에는 다른 뜻도 있다.
사람들을 모으고, 함께 무언가를 기획하고, 그것을 만들어 가는 일.
그런 뜻이라면 나는 오히려 꽤 적극적인 편이다.
직접 제자들과 지인들을 모아 로드바이크, 독서모임, 사진 동아리를 만들었다.
함께 달리고, 함께 읽고, 함께 찍는 자리를 내가 먼저 마련한 셈이다.
사람들과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 가는 일이 좋아서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좋아하는 방식이 조금 다를 뿐이다.
그런데 이거 사람 좋아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 아닌가.
사실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오가는 말과 마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생각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연구하며 살아왔다.
그런데도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으로 남아 있었다. 조금은 당황스러우면서도 재미있는 일이었다.
나는 나 자신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그 기억 속의 나는 내가 아는 나와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정말 한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돌이켜보면 나는 적어도 세 사람이다.
내가 아는 나, 나를 직접 만난 적은 없지만 누군가의 이야기를 통해 나를 아는 사람 속의 나, 그리고 나를 직접 겪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나.
신기하지 않은가.
한 사람이 세 사람의 모습을 가지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나를 조금 변호하자면, 이것은 나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모두가 그렇다.
누군가에게 나는 다정한 사람일 수 있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무뚝뚝한 사람일 수 있다. 어떤 사람에게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기억되지만, 또 다른 사람에게는 조용하고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어느 쪽이 진짜 나일까.
아마도 그 모두가 나일 것이다.
이어지는 글에서 그 세 사람을 차례로 불러보려 한다.
먼저 가장 익숙해 보이는 사람, 내가 아는 나부터.
내가 알고 있는 나
내가 아는 나는 어떤 사람일까.
나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누구보다 잘 안다. 어떤 일에 기분이 상하고 어떤 말에 상처받는지, 어떤 순간에 마음이 편안해지는지, 무엇을 후회하며 살아왔는지도 잘 알고 있다.
혼자 있을 때 떠오르는 생각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기억들, 사람들에게 보여주지 않은 모습들. 그것들이 모여 내가 아는 나를 이룬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자기 인식의 틀을 ‘자기 개념(Self-Concept)’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어떤 사람이라고 믿는지, 자신의 성격과 가치관을 어떻게 이해하는지에 관한 내면의 지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 지도는 그리 객관적이지 않다.
나는 나에게 유리한 기억을 더 오래 간직하고, 불편한 장면에는 다른 이유를 붙여 설명하곤 한다.
내가 누군가에게 무심하게 말했을 때는 ‘그때는 상황이 그랬으니까’라고 이해하면서, 누군가가 나에게 무심하게 말했을 때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라고 받아들이기도 한다.
나 자신을 이해하는 일에도 이처럼 해석이 개입한다.
그러니 내가 알고 있는 나는 내가 살아온 모든 사실의 총합이라기보다, 그 사실들을 내가 이해하고 정리해 만든 하나의 이야기에 가까운 것이 아닐까.
나는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경험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나를 가장 정확하게 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나를 직접 만난 적 없는 사람은 나를 어떻게 알게 될까.
그 사람의 머릿속에 있는 ‘나’는 도대체 어디에서 온 것일까.
[내일 글] 그래도, 인간은 창작한다 [에필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