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는지 묻기 시작했다
아침에 명상을 시작했다. 1시간씩
어떤 인생을 살고 싶니?
네가 진짜 원하는 게 뭐니?
그때 그랬던 원인이 뭐니?
이 감정은 어디서 어떻게 왜 생겨났니?
나는 왜 그 말이 그렇게까지 불편했을까?
내 안의 어떤 감정적인 원인과 결핍이 있었는가?
누구의 영향이었나?
마치고 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치열하게 바닥까지 내려가서 물었다. 내게 묻고 또 물었다.
막연하게 무언가 비어있는 듯한. 채워지지 않는 의미, 물음.
근데 도대체 뭐가 궁금한 건지도 구체적으로 말로 딱 표현하지 못하겠던 그때.
심연의 모래에 파묻혀 있던 왠지 모를 물음표를 파내어. 이 물음표를 끄집어내서. 내 앞에 앉혀. 어떻게 생겼는지 들여다보고. 끄집어 내서 내 눈으로 보고.
그래, 같이 한번 가보자. 멱살 잡고 함께 끌고 나와 고통스럽게 내 앞에 앉혔다
2년 동안 치열하게 물었다. 내게
회사, 집, 회사, 집
이렇게 2년을 보냈다
그렇게 됐어.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너의 몫이야
라는 태도를 취할 수 있게 되기까진 3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다 정리되고 보니 알았다
내 스스로가 정의가 안됐기 때문에 남의 말이 상처였던 것이다
오해하면 그냥 오해하게 둔다
설명하지 않는다. 변명하지 않는다.
좋은 사람 아니,
나와 잘 맞는 사람만 만나기에도 인생은 짧다
그때그때 다가오는 시절인연에 온 마음을 다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다
어차피 나를 좋아하는 사람은 나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어떻게든 꼬아서 본다
그것은 애정도와 비례한다
나에게 애정이 있는 사람에게 진심을 다하고
내가 받은 애정을 돌려주면 그만이다
3년 동안 옷 한 벌도 사지 않았다
빚도 다 갚았다
이제부터 버는 돈은 다 내 거다
사람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
회식 땐 동료를 놀리기도 하고 장난도 쳤다.
본래의 장난기 많고
내성적이지만 유쾌하고 유머 있는 나로 돌아왔다
오랜 겨울잠에서 깨어난 개구리처럼
나는 세상을 향해 폴짝~ 뛰어나왔다
온라인카지노를 시작했다.
내 주변엔 이상하리 만치 독서인이 없었는데
여느 사람보다 섬세하고 풍부한 감수성을 이해받지 못했던 갈증이 많이 해소되었다.
나보다 바카라을 좋아하고, 나보다 글을 잘 쓰고
나보다 감수성이 풍부한 사람들이 온라인카지노에는 널리고 널려있었다.
나는 사람의 표정, 말투에 민감하고 상대의 기분을 잘 느끼는 걸 타고났는데
환경적인 탓에 내 살길은 내가 찾아야 했기에
눈치를 많이 보며 자랐다
지금도 엄마가 설거지하며 그릇을 놓는 소리의 음량,
눈동자의 움직임
표정, 음성의 떨림
기분이 안 좋은 것 같으면 방에 있다 나가서 괜히 말을 걸고 기분을 올려주려 티 안 나게 애를 쓴다
화난 엄마는 나를 불안하게 한다
이런 예민함은 일을 하면서 더 발달하고 개발되었다
이 점은 나를 힘들게도 했다
거짓말하는 건 기가 막히게 잡아내었고
어떤 때는 너무 잘 보여서 모른체할 때도 있었다
온라인카지노에는 감정을 남들보다 조금 더 진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다.
나보다 힘든 사람도 훨씬 많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홀로 앉아 있던 내 옆에 누군가 조용히 와
손을 잡아주는 듯했다.
모 연예인은 5억을 사기당하고 가장 위로가 되었던 게
친구도 가족도 아니었고
자긴 10억 잃었다고 얘기한 동료였다고 한다
인간이란 게 그런 존재였다
나보다 힘든 사람을 보며 괜찮다 느끼고
그러니 나도 살아야지 하고 일어설 수 있고..
그렇게
비겁하고 나약하며.. 연약한 존재가 본래 인간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나니 이상하게 조금 편해졌다
마음은 생각보다 여러 겹으로 쌓여 있다.
겉으로 드러나는 감정 뒤에는 스스로도 아직 이름 붙이지 못한 심리의 층들이 조용히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처음에는 분노라고 느꼈던 것이 사실은 오래된 슬픔이었음을 알게 되는 순간이 온다
그 밑바닥에 있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에 닿을 때까지,
그것을 천천히 되짚고, 해석하고, 스스로를 따라 내려갔다
“그랬구나, 이런 감정들이 내 안에 있었구나.”
제대로 느껴야 배출되었다
제대로 정산해야 정리되었다
용기를 내기 위해서는 두려움을 먼저 마주해야 했다.
불안을 통과해야만 다음으로 갈 수 있었다.
상처 입고 부족한 지금의 나를 인정하지 않고서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그리고
운명 같은 문장을 만났다
하늘을 나는 새 한 마리에게는 쓸모를 묻지 않으면서
왜 나는 이토록 오랫동안
내 자신에게만 쓸모를 따졌을까.
열등하다는 이유로
시작도 하기 전에 스스로를 심판하고
부족하다는 이유로
살아 있는 오늘을 유예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앞으로도 실패할 것이고 오늘도 하고 내일도 할 것이다
계속 실패할 거다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실패하고
하다 보면
조금 늦더라도
남들보다 못하더라도 열등하더라도
그렇게 느리고 조금 못났더라도
그냥 그렇게 살아가련다
모 작가님 말대로 공짜 햇빛을
공짜 바람을
공짜 공기를
온몸으로 맞으며 아, 좋다 내뱉으면서
남들이 비교로 스스로를 옭아맬 때
나는 온몸으로 생의 기쁨을 느끼면서
그렇게
그리고 신기하게도,
내가 동굴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동굴 속에 있는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이제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을 보면 나는 알아본다.
혼자 도시락을 먹는 사람 옆에 앉아
나도 말없이 혼자 도시락을 먹듯이
비를 맞고 있는 사람에게
가진 우산을 버리고 함께 걸어가 주듯이
백 마디 말보다 그저
말없이 옆에 앉아있어 주고 싶다.
입이 아닌 마음으로 말해주고 싶다
괜찮다고
힘들면 잠시 놓아도 된다고
모든 걸 내려놓고 잠시 동굴로 들어가도 된다고
그 동굴은 살기 위한 시간일 수도 있다고
어둠의 시간이 계속되면 그 속에 한줄기 빛이 찾아올 시간이 온다고
없으면 못 살 거 같지만 사실 그것은 내가 잡고 있었던 것일 수도 있다고
없으면 못 사는 것은 사실은 없다고
괜찮다고
괜찮다고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얼굴을 스쳤다
살아있다
끝나지 않을 것 같던 지독한 마흔의 사춘기도
이렇게 지나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