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해 앞에 서다
돌싱이란 타이틀이 내게 붙었을 때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건 의외로 주변 사람이었다
친구는 내 앞에 앉아서
일찍이 파토 난 내 결혼생활에 대해 주저리주저리 떠들고 있었다
네 감정은 이런 거였잖아.
그러니까 이렇단 거잖아.
나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이상하다. 대꾸할 힘도 의욕도 없었다.
자기가 더 심각했다
내 결혼생활에 대해 왜 자기가 다 얘길 하지?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
왜 그랬는지 내 얘기를 들을 생각은 없고
자기가 그냥 내 결혼에 대해 얘기하고 싶어 하는 친구 앞에서 무력감이 들었다
그냥 뭐라고 하는지 계속 듣고 있었다
나조차도 아직 정리가 안된 나의 결혼에 대해서
이 친구가 뭐라고 하는지를
끝날 때쯤 문득 보았더니
내가 이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설득시키고 있는 나를 보았다
현타가 왔다.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서로에 대한 존중과 감정적 배려가 없어진 관계는
10년이든 20년이든 의미가 없었다
내가 붙들고 있었던 건
현재가 아니라
그 친구와 함께했던 지난 20년간의 추억이었다
스스로가 의미와 가치를 부여해 가며 붙잡고 있었던
단물 빠진 껍데기
오래된 친구가 아닌 오래된 관계일 뿐이었다
추억은 아무런 힘이 없다
네가 이혼을 2번 하든 3번 하든 넌 그냥 너 일뿐이라는 파와
자기가 뭐라도 한 의견 거들고 싶어서
평가에 훈수를 더해 한마디 하고 싶어 엉덩이가 들썩대는 유형으로
홍해 갈라지듯 주변은 쭉 갈라졌다
그 홍해 앞에 나는 서있었다
번아웃이 같이 왔다.
아침이 되면 내가 출근을 하는 건지
껍데기를 지하철에 싣는 건지 모르겠다
영혼은 가출해 있었고 출근은 해야 하니 앉아있었고
돈은 벌어야 하니 가죽만 앉아서 버티기였다
출근하면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퇴근하면 온몸에 힘이 빠져 문을 닫고 들어가 누웠다
먹는 것도 귀찮았다
기절하듯 잠에 빠져들었다
나는 계속 잠만 잤다
설명할 힘도 인사치레할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나조차도 답을 모르니까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나는 그냥 빈 껍데기였다
열심히만 살았다. 왜 살아야 하는지. 목적이 무언지.
나는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고민 없이. 그저 주어진 삶을 살아내기 바빴다. 당연하다
몰랐으니까.
낼 모레 마흔이 되니 친구들은 하나, 둘씩 팀장이란 타이틀을 달았고
결혼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고 가정을 꾸렸다
나는 팀장도 되지 못했고
철새처럼 온라인 게임도 여러 번 옮기며 안정감이 없었으며
결혼에도 한 번 실패해서 가정도 이루지 못했다
빚도 많았다
콜센터란 온라인 게임도 부끄러웠다
이룬 게 없었다
내 인생은 실패 덩어리였다
내게 남은 것은 뭐지..?
나 뭐 한 거지?
뭔가 열심히 산 거는 같은데,
나 분명히 계속 일하고 힘들었고 성실했고 열심히였는데
나 왜 이렇지?
내 나이 또래의 동료들과 나도 모르게 끊임없이 비교했고
동굴로 파고들고 파고들어
답을 모르니 더 파고들었다
설명할 힘조차 없었다.
아니 설명하다 지쳤었다
왜 설명해야 하는지 현타가 왔었다
왜.
왜.
왜.
아무리 생각해도 월급쟁이 급여로 이 빚을 갚을 계산이 안 나왔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죽고 싶다가 아니라 죽을 수도 있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무서웠다. 내가 그런 생각을 했다는 게
죽을 용기로 살자
나는 지금 시간이 필요하다
나는 지쳐있었다. 몸과 마음 모든 것에서 번아웃 상태였다.
내 몸은 빈 깡통이었다
그래
시간을 갖자.
시간을 갖고
내 인생 마흔의 정산을 하자.
중간 정산
이게 뭔지,
무엇인지
들여다보자
대신 제대로 정산하자. 깊이 정산하자.
나 지금 뭐가 문젠지. 왜 이런지.
주변의 모든 연락을 끊었다
내 열등감을 자극하지 않는 가장 친했던 언니 1명만 남겨 두었다
1명이면 충분하다
더 이상 모든 에너지조차 없어졌을 때
나는 모든 주변 인연. 그동안 있던. 오래된 세월이 외에는 더 이상 의미가 없어진.
나를 힘들게만 하던 모든 인연을 잠시 끊어내고 동굴 속으로 들어갔다
지독한
마흔의 사춘기였다
-> 3편 계속
3편에 극복합니다ㅋㅋㅋㅋ 심려치 마이소~~~~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