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도둑년의 고백]

다이어리를 훔쳤다.

by태고


당시에 처음으로 " 다이어리 "라는 게 등장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쯤 ..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 집은 가난했고

야속한 엄마는 다이어리를 사주지 않았다.


학교에서 친구들이 하나, 둘씩 다이어리를 들고 나타났다.

예쁜 스티커를 붙이고 꾸몄다

갖고 싶었다



문방구에서 새 다이어리를 만지작거렸다

비닐에 쌓여있는 예쁜 다이어리

엄마는 사주지 않는 다이어리


나는 품 안에 몰래 그것을 넣어 들고나왔다.


밖으로 나오는데 뒤에서 문방구 아주머니가 와락 - 나를 안았다


내 품에 든 다이어리를 뺏어든 아주머니가 나를 조용히 내려다보았다


" 아줌마가 너를 믿는데 그러면 안 되지... "




세월이 32년이 지났지만

그때 아주머니의 눈빛,

모습,

표정.

그림으로 그릴 수 있을 정도로 선명하다


정말로 속상한 눈빛이었다



이후 나는 서른 살 즈음이 되었다.


어렸을 적 살던 동네에 갈 일이 있어 찾아갔다


세상에나.
아직도 그 문방구가 있다

간판 색은 바래 있었고
유리문엔 오래된 테이프 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는 한참을 밖에서 서성거렸다.

들어갈까.
말까.

문득 초등학교 2학년의 내가
비닐에 싸인 다이어리를 품에 넣고
이 문을 밀고 나오던 장면이 떠올랐다


결국 문을 열었다.


딸랑~


20년 전과 똑같은 종소리가 났다




안으로 들어간다


쪼그려 앉아 불량식품 박스를 정리하던 아주머니가


허리를 천천히 폈다


백발이 서늘하다


많이 늙었다



어렸을 적 사 먹었던 불량식품들을 만져본다

내가 이런 걸 먹으며 자랐지. 그땐 왜 이렇게 이게 맛있었을까


아주머니가 나를 기억할 리가 없다


세월이 20년이 흘렀고. 그 많은 아이들 중 하나였을 테니

그래도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데..

방법이 없을까..


구석진 곳에 있는 사진 앨범,

먼지가 뽀얗게 앉은


이 문방구 안에선 나름 비싼 축이고

적어도 5년은 안 팔린 채 있어 보이는 앨범 ..

앞으로도 안 팔릴 것 같은 앨범..

2권을 집어 들었다




.. 살려고?



얼마예요.



눈도 마주치지 않고 무뚝뚝하게 내가 물었다


2만 5천 원..


만 원짜리 5장을 내가 내민다


저 혹시....... 모르시겠죠?..


아주머니가 내 얼굴을 가만히 올려다봤다.

잠깐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왜 몰라


참 예쁘게 컸네









글쓴이 후기>


사건의 현장은 부산 주례동에 있는

'성호 문방구'였습니다.

아직도 있는지 모르겠네요

찾아보니 그때 사 온 앨범이 집에 있어요.




참 예쁘게 컸네. 하시는데

눈물이 맺혀 황급히

챙겨주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나와버렸지요

죄송해서요

어렸어도 잘못한 건 잘못한 것이니까요

제 도둑질은 이렇게 우리 집에 박제되어 있습니다


이번 편은 이다빈 작가님의 온라인카지노에 답방을 갔다가

저는 도둑 잡는 미술 선생님입니다 편을 보고

생각이 나 쓰게 되었어요.


덕분에 오랜만에 앨범도 꺼내어 보고

그날의 저를 떠올려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