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마음에도 생활비가 필요하다

by슈펭 Super Peng


오래가는 기획은 ‘왜’에서 시작된다
기획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면 손부터 분주해졌다. 늘 ‘무엇을 만들까’부터 생각했다. 어떤 프로그램을 만들지, 어떤 작품을 보여줄지,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여줄지. 눈에 잡히는 결과물부터 그럴듯하게 스케치해 두어야 비로소 출발선에 섰다고 믿었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서 스쳐 지나갈 뻔한 한 문장이 마음에 묵직한 닻을 내렸다.
지속 가능한 기획에는 진정성과 경제성이 필요하다.
진정성은 내가 이 일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할 수 있는 이유(WHY)이고, 경제성은 그 자리에 내일도 다시 앉아 수익을 만들 수 있는 방법(HOW)이다. 좋아하는 마음만으로 시작한 사람에게 경제성이라는 단어는 조금 차갑게 들린다. 마음을 이야기하는 일에 숫자를 대입하면, 순수했던 무언가가 갑자기 계산적으로 변하는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좋아하는 마음에도 엄연히 생활비가 필요했다.
그림을 그리려면 종이와 물감이 필요하고, 공예품을 빚으려면 흙과 가마, 틀과 필라멘트가 필요하다. 전시를 열려면 공간 대관료와 운송비, 설치비가 들고, 프로그램을 열려면 시간을 쏟아부어야 한다. 내 마음은 낭만을 먹고 자라지만 현실은 카드 결제 알림을 먹고 자란다. 슬프지만 제법 성실하게,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찾아온다. 낭만에도 어김없이 견적서가 따라붙는 법이다.
그러니 경제성을 고민하는 일은 결코 좋아하는 일을 배신하거나 진정성을 훼손하는 게 아니었다. 오히려 좋아하는 일을 단 한 번의 축제로 끝내지 않고, 내일도 모레도 단단하게 이어가기 위한 현실적인 방패막이에 가까웠다.
그리고 그보다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이 있었다.
왜 하필 내가 이 일을 해야 할까?
“자기 이해를 돕는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문서 위에서는 참 단정하고 다정한 문장이다. 하지만 문장 뒤에 숨겨진 빈칸을 채우지 못하면 금세 힘을 잃는다. ‘왜 하필 내가 이 이야기를 꺼내야 하는가.’
돌아보면 취업을 준비하며 나 자신을 가장 많이 놓쳤던 시간들이 있었다. 회사 때문에 지치기도 했고, 사람 때문에 닳아 없어지는 것 같기도 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방 안에 가만히 누워 있었는데도 이미 하루를 다 써버린 것처럼 피곤한 날들이 이어졌다. 잘 해내고 싶다는 의욕과 달리 마음은 정교한 계획표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그럴 때 누군가 건네는 “힘내”라는 말은 이상하게 더 힘을 빠지게 만들었다. 나도 힘을 내고 싶었다. 그런데 어디에 힘을 줘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괜찮지 않은 날에도 입버릇처럼 괜찮다고 둘러댔고, 내가 왜 이토록 버거운지 스스로에게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다. 내 마음인데도 사용 설명서가 통째로 뜯겨 나간 낯선 기계처럼 느껴졌다. 어딘가 분명 고장이 난 것 같은데, 어디를 고쳐야 할지는 도무지 알 수 없는 상태.
그 웅크렸던 시간 끝에 남은 깨달음이 하나 있다. 사람에게 필요한 건 대단한 위로나 무조건적인 격려가 아니라, 그저 지금 내 마음에 어떤 바람이 불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틈이라는 것을.
그래서 감정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작은 캐릭터들의 표정을 만들고, 손으로 만져지는 흙과 공예품을 빚어냈다. 말로는 도저히 밖으로 튀어나오지 않던 마음들이 색과 선과 모양을 입자, 그제야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내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나는 거창하게 사람을 치유하는 사람이 되고 싶은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마음을 자꾸만 놓치고 사는 사람이 잠깐 멈추어 설 수 있는 작은 자리를 내어주고 싶다. 지금 내 마음에 어떤 파도가 치고 있는지, 무엇이 이토록 오래 머물다 가며 발자국을 남겼는지 스스로 발견할 수 있도록.
누군가는 그림 앞에서 묻어두었던 오래된 기억을 조용히 건져 올리고,
누군가는 흙과 공예품을 매만지며 어지러운 생각들을 잠시 바닥에 내려놓고,
누군가는 무심코 마주한 질문 카드 하나 앞에서 처음으로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도 있다.
나는 그런 순간들을 기획하고 싶다.
'별보러 달마다'도 그렇게 시작됐다. 매달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보듯 가끔은 조용히 자기 마음을 들여다보자는 다짐에서. 하지만 오늘은 브랜드라는 이름보다 그 앞에 서 있는 사람, 이혜정이라는 사람의 이유를 먼저 들여다봤다.
나는 내가 지나온 그 막막했던 시간을 쓸모없는 실패로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그 어둡고 축축한 골목을 온몸으로 통과해봤기 때문에 만들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알아챌 수 있는 타인의 표정이 있다고 믿는다. 내가 넘어졌던 그 울퉁불퉁한 자리에 작은 표지판 하나를 세워둘 수 있다면, 뒤따라 걸어오는 누군가는 그곳에서 조금 덜 외롭게 헤맬 수 있을 테니까.
누가 이 경험을 절실히 필요로 할까. 사람들은 어떤 지점에서 기꺼이 자신의 가치를 지불할까. 한 번의 반짝임으로 흩어지지 않고 다음 계절에도 이어지려면 어떤 단단한 바닥을 다져야 할까.
아직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에 대한 답은 완성되지 않았다. 솔직히 돈은 마음처럼 시적으로 벌리지 않는다. 꽤나 구체적인 숫자와 빈틈없는 실행 계획을 요구한다. 좋아하는 일에 숫자를 대입하는 과정이 낯설고 때로는 쓰라릴 때도 있다. 하지만 지속되지 못하고 사라지는 기획은 결국 혼자만의 기억 속에 갇히고 만다. 내가 만든 이야기들을 세상에 온전히 닿게 하려면, 마음의 깊이만큼이나 현실의 단단한 지반을 바라봐야 한다.
그래도 이제는 경제성을 따져 묻는 내 손길이 덜 미안하다.
내가 좋아하는 이 작은 세계를 오래오래 지켜내고 싶기 때문이다. 잠깐 화려하게 반짝였다가 흔적도 없이 꺼져버리는 사람이 아니라, 작고 은은한 빛이라도 골목 끝에서 계속 켜두는 사람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결국 오래가는 기획은 그럴듯한 껍데기보다 하나의 정직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하필 내가 이것을 해야 하는가.
오늘 나는 기획서의 차가운 칸들 사이에서 다시 한번 나를 만났다. 좋아하는 마음의 온도를 잃지 않으면서도, 현실이라는 바닥 위에 단단히 두 발을 딛고 살아남는 법. 아마 그것이 앞으로 내가 매일 부딪히며 찾아내야 할 ‘어떻게’의 여정일 것이다.
마음만으로는 부족하다.
하지만 그 마음마저 없다면, 오래 버텨낼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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