둥글게 보는 세상

by슈펭 Super Peng


날카롭게 재단된 직선의 세상에서 둥근 형태를 바라보는 일은 마음의 날 선 긴장을 부드럽게 무너뜨립니다. 캔버스 위에서 당당하게 부풀어 오른 발레리나와 풍성한 볼륨으로 공간을 가득 채우는 인물들은 우리에게 규격화된 비율 대신 생의 풍요로운 온기를 건넵니다. 페르난도 보테로가 화폭에 담아낸 둥근 양감은 단순한 과장이 아니라, 존재를 있는 그대로 긍정하고 사랑하는 가장 너그러운 시선의 표현입니다.
사실 저는 순수한 관람객으로 그곳에 간 것이 아니었습니다. 요즘 저는 감정을 전시하는 공간을 하나 만들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자기 마음을 꺼내 유리병에 담아두고 가는 자리, 머물다 간 감정들이 서로를 알아보는 자리를 짓는 중입니다. 문제는 늘 같았습니다. 감정처럼 형체 없는 것을 어떻게 걸어둘 것인가. 슬픔에 액자를 씌우면 그것은 표본이 되고, 기쁨에 설명을 붙이면 그것은 안내문이 됩니다. 어떻게 해야 감정이 박제되지 않고도 전시될 수 있을까. 그 답을 찾으러 간 것이 솔직한 사정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감상하러 간 것이 아니라 배우러 간 사람이었습니다.



전시장에 들어서기 전, 파란 포스터 앞에서 표를 든 채 잠시 서 있었습니다. 손끝에 남은 감각 때문이었습니다. 흙을 만져본 사람은 압니다. 물레 위에서 형태가 살아나는 순간은 언제나 곡선에서 시작된다는 것을요. 아무리 각을 세우고 싶어도 회전하는 흙은 기어이 둥글어집니다. 손바닥의 압력과 흙의 저항이 만나는 자리에서 부피가 태어나고, 그 부피는 안쪽에 공기를 품습니다. 노자는 흙을 빚어 그릇을 만들되 그 빈 곳이 있어야 그릇의 쓸모가 생긴다고 했습니다. 그릇이 그릇인 이유는 채워진 흙이 아니라 비워진 안쪽에 있다는 말이지요. 보테로의 인물들을 마주하며 제일 먼저 떠오른 것도 그 감각이었습니다. 저 몸들은 그려진 것이 아니라 빚어진 것 같다는 느낌, 그리고 저렇게 부풀어 있다는 것은 그 안에 무언가를 담을 자리가 생겼다는 뜻일지 모른다는 짐작 말입니다.
그가 처음부터 둥글었던 것은 아닙니다. 1932년 콜롬비아 안데스 깊숙한 산속 도시 메데인에서 태어난 소년은 네 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삼촌의 손에 이끌려 투우사 양성 학교에 등록되었지만, 정작 그의 관심은 소를 이기는 기술이 아니라 소를 그리는 일이었습니다. 투우사의 자수 놓인 옷과 경기장에 걸린 깃발의 색이 더 좋았다고 하지요. 열여섯에 신문사 삽화가가 되었고, 유럽으로 건너가 프라도에서 벨라스케스를 베껴 그렸으며, 피렌체에서 프레스코 기법과 르네상스의 견고한 질서를 익혔습니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엄격하면서도 만져질 듯한 화면 앞에서 오래 서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배운 것을 안고 1952년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린 것은 혹평이었습니다.
이야기가 바뀌는 지점은 1956년 멕시코에서 찾아옵니다. 만돌린을 그리던 중이었습니다. 악기 몸통에 물감이 한 방울 잘못 떨어졌는데, 그 자국이 원래의 울림구멍보다 훨씬 작게 보였습니다. 구멍이 작아지자 몸통은 갑자기 거대해졌습니다. 아무것도 크게 그리지 않았는데 화면 전체가 부풀어 오른 것입니다. 그는 그 순간 알아차렸습니다. 크기는 절대적인 양이 아니라 관계의 문제라는 것을요. 무엇을 키울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작게 둘 것인가가 세계의 부피를 결정한다는 것을요. 평생의 양식이 실수 한 방울에서 시작되었다는 이 일화를 저는 좋아합니다. 물레 앞에서도 형태는 늘 의도보다 사고에서 나왔으니까요. 손이 미끄러진 자리가 그날의 곡선이 되는 일을, 흙을 만져본 사람이라면 여러 번 겪습니다.
이번 전시는 여섯 개의 방으로 나뉘어 있었습니다. 변주와 라틴 아메리카, 종교와 투우, 정물과 서커스. 첫 방인 변주에서 그는 미술사의 거장들을 자신의 언어로 다시 그립니다.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는 푸른 드레스 속에서 한층 묵직해진 채로 우리를 마주 봅니다. 원작의 왕녀가 궁정의 격식과 어린 나이 사이에서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었다면, 보테로의 왕녀는 그 긴장을 벗고 자신의 부피 안에 편안히 앉아 있습니다.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도 그의 붓 아래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이것은 모방이 아니라 대화입니다. 수백 년 전의 화가에게 당신의 인물을 제 방식으로 한 번 안아봐도 되겠느냐고 묻는, 아주 정중하고도 대담한 말 걸기입니다.
라틴 아메리카의 방에서는 그가 나고 자란 메데인의 공기가 흘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익힌 고전적 질서를 그는 유럽에 두고 오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고향의 색채와 정서 속으로 가져와 섞어버렸습니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서는 르네상스의 견고함과 라틴 아메리카의 뜨거운 원색이 다투지 않고 한 몸이 됩니다. 고전성과 지역성이 대립하지 않고 하나의 조형 질서로 작동하는 것, 이것이 그를 그 누구와도 닮지 않은 화가로 만들었습니다. 유럽에 지배받지 않은 미술이 가능하다는 것을 그는 멕시코 벽화가들에게서 배웠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배운 것을 버리지 않으면서도 그것에 먹히지 않는 방법을, 그는 평생에 걸쳐 증명한 셈입니다.
그리고 네 번째, 정물의 방. 이곳에서 저는 가장 오래 머물렀습니다. 인물이 없는 그 방에서 오히려 그의 세계관이 가장 선명하게 보였기 때문입니다. 탁자 위의 오렌지 한 알, 바나나 한 송이, 주방 한구석의 그릇과 병까지 모두 부풀어 있었습니다. 세잔의 사과가 화면의 구조를 위해 존재하고 피카소의 사물이 해체와 재조립의 대상이 된다면, 보테로의 과일은 그저 자기 자신으로 충만합니다. 껍질 안쪽까지 꽉 차 있어서 손으로 들면 묵직할 것 같은 무게가 색면 위에 얹혀 있습니다. 양식은 가장 단순한 형상에서조차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말했다지요. 사과 한 알에도 자신의 신념을 통째로 밀어 넣는 사람의 고집이란 어떤 것일까 생각했습니다. 흙을 다룰 때에도 그렇습니다. 작은 종지 하나에 손버릇이 다 드러납니다. 큰 그릇에서는 숨길 수 있는 것이 작은 것에서는 숨겨지지 않습니다.
바슐라르는 둥근 것에 대해 이상한 말을 남겼습니다. 존재가 둥글 때 세계도 그를 둘러싸고 둥글어진다고요. 그것은 관찰의 결과가 아니라 존재의 방식에 관한 말입니다. 둥글다는 것은 중심을 갖되 어느 쪽으로도 뾰족하게 나아가지 않는 상태, 자기 안에 머물면서도 사방을 향해 고르게 열려 있는 상태입니다. 정물의 방에서 그 문장이 떠올랐습니다. 저 오렌지는 무엇을 향해 있지 않습니다. 그냥 거기 있습니다. 아무것도 주장하지 않으면서 자리를 다 차지하고 있습니다. 존재가 자기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를 그림으로 옮기면 저런 모양이 되는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투우의 방은 색이 달랐습니다. 붉은 천과 모래빛 원형 경기장, 그리고 그 안에서 벌어지는 죽음의 의식. 둥근 형태로 세상을 감싸던 화가가 유일하게 잔혹함을 피하지 않은 자리였습니다. 그러나 그마저도 뾰족하게 그려지지는 않았습니다. 소도 투우사도 여전히 부풀어 있었고, 그래서 비극은 날카롭게 찌르는 대신 무겁게 가라앉았습니다. 어린 시절 투우사 학교에 보내졌던 소년이 결국 소를 죽이는 대신 소를 그리는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을, 그 방에서 다시 떠올렸습니다.
서커스의 방에서는 반대로 공기가 가벼워집니다. 바닥에 붉은 카펫이 깔린 그 방에서 코끼리와 낙타가 천막 아래를 어슬렁거리고, 광대와 곡예사들의 둥근 몸이 원색의 조명 속에 떠 있었습니다. 이 연작은 2006년 멕시코의 작은 어촌 마을에서 우연히 만난 유랑 서커스단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일흔이 넘은 화가가 낯선 바닷가 마을에서 천막 하나를 보고 마음이 움직여 새 연작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어떤 그림보다 오래 남았습니다. 서커스란 무엇이든 가능한 세계이자 놀라운 일상이 펼쳐지는 무대라고 그는 말했다지요. 화려한 옷차림 뒤에 숨은 고단함을 모르지 않으면서도, 그는 그 고단함을 뾰족하게 그리지 않았습니다. 유머와 아이러니가 함께 있는 화면이라는 말은 아마 이런 뜻일 것입니다. 웃기면서 동시에 조금 쓸쓸한, 그 두 가지가 한 몸에 담기는 상태 말입니다.
푸른 벽으로 칠해진 방에서는 조명이 낮게 깔려 있었습니다. 초록 터번을 두른 여인이 부채를 들고 앉아 있고, 맞은편에는 꽃무늬 숄을 걸친 여인이 거울 속 자신을 무심하게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거울을 보는 그 표정에는 자기 검열이 없었습니다. 우리가 거울 앞에서 흔히 짓는 표정, 어딘가를 재고 깎아내는 그 눈빛이 거기엔 없었습니다. 몸을 대상으로 소유하는 대신 몸으로서 세계에 놓여 있는 상태라는 말이 있지요. 저 여인은 자기 몸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저 자기 몸으로 거기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앞에서 조금 부끄러워졌습니다. 얼마나 오랫동안 스스로를 자로 재며 살아왔는지 새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방에서 제가 찾던 답도 나왔습니다. 감정을 전시하는 방법 말입니다. 보테로는 슬픔에 설명을 붙이지 않았습니다. 대신 부피를 주었습니다. 담을 자리를 만들어준 것입니다. 감정도 마찬가지여서,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것은 납작해지고 표본이 되지만 머무를 부피를 주면 스스로 형태를 찾아갑니다. 유리병이 감정을 설명하지 않고 그저 담아두기만 하는 것처럼요. 결국 제가 배워 온 것은 기법이 아니라 태도였습니다. 전시란 무언가를 해설하는 일이 아니라 머물 자리를 내어주는 일이라는, 아주 단순하고 오래 걸려 도착한 문장 하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날카로운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고, 스스로의 모서리를 깎아내며 뾰족해지곤 합니다. 팽팽한 긴장감과 마른 완벽주의 속에서 여유는 쉽게 사라집니다. 하지만 세상을 둥글게 바라본다는 것은 결핍 대신 존재 자체의 무게와 풍성함을 발견하는 일입니다. 가냘프지 않아도 경쾌하게 도약하는 몸짓처럼, 둥근 시선 안에서는 어떤 형태든 고유한 유쾌함과 당당한 생명력을 얻습니다.
모서리가 둥글어질 때 비로소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마찰은 상처 대신 부드러운 닿음이 되고, 서늘한 비판은 넉넉한 이해로 바뀝니다. 각진 생각과 날카로운 시선을 조금씩 덜어내고, 숨 쉴 수 있는 부피와 곡선을 허락하는 것. 그것이 바로 세상의 모든 불완전함을 다정하게 품어 안는 지혜입니다. 벨라스케스의 왕녀도, 사과 한 알도, 붉은 모래 위의 소도, 그 앞에서는 다르지 않았습니다.


이 전시는 로마와 바르셀로나와 바쿠를 거쳐 서울에서 여정을 마무리한다고 합니다.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처음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회고전이라고도 하지요. 평생 붙들었던 둥근 형태들이 마지막으로 도착한 자리에서, 저는 오래 서 있었습니다. 물레를 멈추면 흙은 그 자리에서 굳습니다. 손을 뗀 순간의 형태가 그대로 남습니다. 그가 손을 뗀 자리에 남은 것이 이토록 둥근 세계라는 사실이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세상을 한 뼘 더 넉넉하고 둥글게 바라볼 때, 굳어 있던 일상은 유쾌한 리듬을 되찾고 우리를 둘러싼 공기는 한결 포근해집니다. 세상의 찌르는 모서리 대신, 기분 좋은 굴곡과 따뜻한 온기가 삶의 공간을 가득 채우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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