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키울 생각은 없지만, 서울에서 성공해서 돌아와줘

한국 슬롯 인맥과 집단주의

by슈펭 Super Peng

한국 슬롯에서 사람들이 굳이 어딘가에 속하려 하는 건 그게 더 편해서가 아니라, 혼자서는 생존이 불가능하도록 설계된 역사적 구조 때문이다. 선사 시대부터 시작된 정착 생활과 청동기 시대의 대규모 취락은 수십 명에서 수백 명의 노동력을 한꺼번에 동원해야 하는 고인돌 축조나 수리 시설 정비 같은 공동 작업을 동반했다. 특히 밀 농사에 비해 훨씬 고도의 협동 노동을 요구하는 벼농사 체제는 개인의 독립적 생존을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이는 혈연 중심의 씨족 슬롯와 집단주의적 촌락 공동체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조선 시대 임진왜란 이후 재편된 농가 공동체 운영 방식도 이런 상호 의존성을 더욱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전개됐다. 생존을 담보하기 위한 이 집단적 협력과 연대의 유산은 근대 이전 한국인들에게 개인의 자유보다 집단의 목표를 우선시하는 문화를 깊이 각인시켰다.


문제는 이 협동의 유산이 근대화 과정에서 합리적인 제도와 보편적 법치를 충분히 만나지 못한 채, 압축 성장과 군사 독재라는 격변 속에서 기형적인 자본주의 질서와 결합해 버렸다는 점이다. 합리적인 제도와 보편적 법치가 미처 성숙하기 전에 진행된 군사주의적 통치는, 사적 관계망을 매개로 권력을 획득하고 자원을 독점하는 천민자본주의(Pariah Capitalism)를 고착화시켰다. 규칙을 지키는 정직한 개인이 오히려 도태되는 모순된 경쟁 구도 속에서, 가계와 개인은 생존을 위해 공적 질서보다 혈연, 지연, 학연 등 1차 집단에 집착하는 생존 전략을 내면화했다. 핵가족화 과정에서 자녀 수가 급감하자 부모들이 자녀의 성공을 위해 가용한 인적 네트워크를 총동원하는 집요한 정서적 투자에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전통 공동체의 '상부상조'가 현대에 와서 배타적이고 특수주의적인 '연고 카르텔'로 변질된 것은, 공적 신뢰 기반이 허약한 기형적 시민슬롯가 낳은 결과적 산물이다.


이 변질을 좀 더 정교하게 들여다보려면 '연줄주의(Connection-ism)'와 '연결주의(Network-ism)'를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두 개념 모두 네트워크라는 외연은 공유하지만 작동 방식과 공적 기능 면에서는 상반된 구조를 보인다. 관계의 성격을 기준으로 보면 연줄주의는 지연, 혈연, 학연 중심의 폐쇄적이고 특수주의적인 관계이고, 연결주의는 보편적 기준에 기반한 개방적이고 유동적인 관계다. 행동 유인의 측면에서 연줄주의는 사적 이득 쟁취와 외집단 차별을 동반한 정실주의 교환이며, 연결주의는 신뢰 기반의 정보 교류와 거래 비용 절감이다. 평가 기준에서도 연줄주의는 출신 성분과 과거의 인연이라는 귀속적 기준을 따르고, 연결주의는 현재의 객관적 역량과 실적이라는 성취적 기준을 따른다. 그 슬롯적 영향 역시 갈린다. 연줄주의는 부정부패의 양산, 조직 효율성의 저하, 사적 카르텔의 공고화로 이어지고, 연결주의는 다원성과 개방적 협력의 촉진, 슬롯적 유연성의 확보로 이어진다.


한국 슬롯에 익숙한 "연결연결해서 꽂아주는 문화"는 전형적으로 연줄주의의 지배적 발현이다. 이 연줄주의는 공적 신뢰를 대체하는 거래 비용 절감 기제로 일정 부분 기능하기도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비합리적인 정실 인사를 양산해서 개인이 능력을 함양하기보다 유력 세력과 인연을 맺는 비생산적 활동에 집착하게 만든다. 실제로 한국 슬롯에는 고려대학교 교우회, 호남향우회, 대한민국 해병대전우회처럼 학연·지연·군연을 토대로 한 강력한 연고 사조직들이 존재하고, 스포츠 영역에서도 특정 고교 동문을 성골과 진골로 범주화해 편향적으로 임용하는 부산 야구판의 정실주의가 고착되어 왔다. 연고를 기반으로 조직된 강고한 네트워크는 지역 토호 세력으로 변질되어 선거에서 몰표를 만들어내거나, 학연 카르텔을 가동해 공적인 교수 임용이나 총장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함으로써 한국 슬롯의 다원성과 의사결정의 공정성을 심각하게 저해하고 있다.


이게 단순히 정서적인 불만이 아니라는 건 숫자로도 확인된다. 2023년 국민권익위원회의 공직유관단체 실태조사에 따르면, 무려 454곳의 기관에서 총 867건의 공정 채용 위반 행위가 적발되며 여전한 연고 카르텔의 침투를 증명했다. 실례로 오산문화재단 내부 직원 설문조사에서는 지역 유지 자녀들이 열심히 일한 일반 직원들을 제치고 모든 성과와 승진을 독식하고 있으며, 팀장급 간부 대다수가 낙하산 및 보은 인사로 채워졌다는 고발이 터져 나오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도 KEB하나은행이 특정 명문대(SKY) 및 외국 대학 출신 합격자를 위해 면접 점수를 무단 조작하고, 신한은행이 지방대 출신에 대해 서류 전형 학점 '필터링 컷'을 가혹하게 적용(아이비리그 3.0, SKY 3.3, 지방대 3.5)하여 공정성 논란을 일으킨 바 있다.


취업 포털 잡코리아가 온라인 게임인 및 구직자 56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낙하산 취업에 대한 대중적 인식' 설문조사는 한국 슬롯에서 인맥 채용이 작동하는 방식과 이에 대한 청년들의 모순적 내면을 정교하게 보여준다. 주변에 낙하산 채용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온라인 게임인 72.0%, 구직자 56.1%였다. 낙하산이 유입되는 경로, 즉 인맥의 종류를 물었을 때는 혈연(혈연 카르텔)이 63.3%로 압도적 선두를 차지했다. 낙하산 채용 직원의 주요 직급은 사원급(45.4%), 주임/대리급(19.4%), 과장급(11.5%) 순이었다. 낙하산 채용에 대한 대응 방식으로는 부당하다고 느끼나 겉으로 티를 내지 않는다는 응답이 55.6%였고, 인맥이라는 배경 역시 능력이므로 개의치 않는다는 응답이 24.4%였다. 그리고 자신에게 낙하산 기회가 주어진다면 수용할 것이라는 응답은 전체 75.2%(온라인 게임인 74.4%, 구직자 77.1%)에 달했다.


이 설문 데이터는 채용 비리에 대한 청년들의 깊은 박탈감 이면에 존재하는 절박한 생존주의를 선명하게 폭로한다. 공정하지 않음을 알면서도 10명 중 7명 이상이 낙하산 기회를 기꺼이 잡겠다고 답한 원인은, 극단적인 노동시장 이중구조 속에서 홀로 서려 하다가는 생존 경쟁에서 도태된다는 현실주의적 위기감에 있다. 대기업 임금의 56.8%에 불과한 중소기업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정규직 임금의 70.6% 수준에 그치는 비정규직의 한계 속에서, 청년들은 보편적 공정성이라는 가치를 추구하기보다 사적 연고라는 '동아줄'을 잡는 것이 합리적 대안이라는 왜곡된 생존 편향을 체득하게 된 것이다. 정부는 이를 완화하기 위해 인적 사항을 가리는 블라인드 채용을 전면 도입해 SKY 출신 합격 비율을 8%에서 5.3%로 낮추는 성과를 거두었으나, 연구직 등 전문직 채용 과정에서는 직무 적합성과 성실성을 온전히 검증하기 어렵고, NCS 기반 선발 제도가 도입된 기관 임직원의 초기 업무 성과 평점이 이전(62점)보다 저하(52점)됐다는 지적이 제기되는 등 제도의 실효성을 둘러싼 쟁점도 여전히 상존한다.


이 연줄주의가 가장 잔인하게, 그리고 가장 모순적으로 작동하는 곳이 지방이다. 지자체들은 지역 소멸을 막겠다며 청년 정착 정바카라을 쏟아내고, 로컬 크리에이터를 육성하겠다며 매년 수억 원의 예산을 심사대 위에 올린다. 그런데 그 심사대 앞에서 가장 먼저 지워지는 사람이 역설적으로 이 지역의 흙을 밟고 자란 토박이 청년들이다. 공공 공모사업은 철저히 단기적인 예산 주기, 보통 1~2년 단위 안에서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야 한다. 예산 공급자인 지자체 공무원과 심사위원들은 가능성 있는 지역 토박이 청년을 키워내는 시간적 비용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미 서울이나 수도권의 세련된 인프라 속에서 기획서 쓰는 법을 배우고 포트폴리오를 완성해 온 '수도권 유학파'나 '외지 청년'들을 선발해 밀어주는 편이 지자체 입장에서는 훨씬 안전하고 빠르게 성과 수치(KPI)를 채우는 길이 된다. 결국 지역의 공모사업은 청년 '육성'이 아니라, 이미 완성된 외부 청년의 '수집'으로 전락한다.


그런데 지방으로 갈수록 법과 시스템보다 사적 인맥이 지배하는 배타적인 연줄주의가 더 강고하다는 게 이 정바카라의 치명적인 함정이다. 지역 슬롯는 학연, 지연, 혈연으로 얽힌 토착 카르텔이 공적 자원과 기회를 독점하는 경향이 매우 심하다. 앞서 언급한 지역 문화재단 채용 비리 설문조사처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승진과 성과는 지역 유지의 자녀나 낙하산 인사에게 돌아간다는 토박이 청년들의 깊은 상대적 박탈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외부에서 수혈된 '수도권 출신 인재'라는 타이틀이 없거나, 그렇다고 내부의 촘촘한 연고 네트워크에 끼지 못한 순수한 지역 토박이 청년들은 공적 지원에서도 소외되고 정실주의 임용에서도 밀려나며, 고향에서조차 '외인(Outsider)'이 되어버리는 이중고를 겪는다.


여기에 이 정바카라의 가장 치명적인 논리적 오류가 있다. "서울에서 기회를 잡은 청년이, 기회가 없고 카르텔만 가득한 지역으로 제 발로 돌아올 것인가?"라는 질문에 누구도 답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많은 지역 인재들이 고향을 등지고 수도권 대학으로 진학해 정착하는 이유는 단순한 허영심이 아니라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경제적 격차 때문이다. 수도권의 개방적이고 시스템화된 경쟁 질서에 적응한 청년들이, 오직 사적 인맥과 "누가 꽂아주느냐"가 생존을 결정하는 닫힌 지방 슬롯로 돌아갈 유인은 전무하다. 결국 서울에서 배워온 사람들을 우대하는 정바카라은, 지역에 남아 묵묵히 버틴 청년들의 기회만 빼앗을 뿐 외부 인재를 정착시키는 데는 철저히 실패하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된다.


더 절망적인 건, 이 공모전과 채용의 다수가 결과가 정해지기도 전에 사실은 정보의 단계에서부터 이미 끝나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이 단체나 조직에 소속되려고 하는 이유는 누군가 결과를 봐줄 거라는 기대 때문만이 아니다. 정보 자체가 폐쇄적인 채널로만 흐르기 때문이다. 공모사업의 윤곽이나 일정은 공식 공고가 뜨기 훨씬 전부터 관련 협회나 동문 모임, 지역 단체 내부에서 먼저 돈다. 어떤 자격 요건이 들어갈지, 가산점이 어디에 붙을지, 누가 심사위원으로 들어올지가 공고문이 인쇄되기 전에 이미 특정 네트워크 안에서 공유된다. 이건 부정행위라고 부르기도 애매한, 그냥 정보가 흐르는 경로 자체의 문제다. 일반 청년이 공고문을 처음 보는 시점에 내부자는 이미 그 공고문이 어떻게 설계될지를 알고 그에 맞춰 이력서와 포트폴리오를 다듬어 온 뒤다. 경쟁은 출발선에서부터 같지 않다.


이 정보 격차 위에 형식적인 절차가 한 겹 더 얹힌다. 지자체와 지역 단체들은 법과 규정, 즉 공개 경쟁 원칙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아무리 내정자가 있어도 반드시 '공개 공모'나 '공개 채용'을 진행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보에서 소외된 순진한 지역 청년들은 철저히 이용당한다. 최소 경쟁률(예: 3대 1 이상 등)을 맞추거나 공정한 경쟁이 이루어진 것처럼 서류상 꾸미기 위해, 지자체는 아무것도 모른 채 뛰어든 청년들의 기획서와 이력서를 모아 '숫자'를 채운다. 실제 수사나 감사 결과를 보면 "내정자 점수난은 비워놔라"고 지시해 점수를 사후 조작하거나, 공모가 시작되기도 전에 특정 단체나 인물이 낙점되었다는 소문이 돌고 실제 결과도 그대로 이어지는 등 요식행위에 불과한 심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내정자를 합법적으로 합격시키는 기술도 매우 교묘하다. 공고문의 지원 자격이나 가산점 항목을 아주 미세하게 비틀어, 오직 그 내정자만 채울 수 있는 특이한 경력이나 자격을 명시한다. 정보가 없던 일반 청년들은 공고문을 보는 순간부터 보이지 않는 진입장벽에 막히게 된다. 지원자의 인적 사항을 사전에 공유받은 내부 위원들이 면접관으로 들어가 특정인에게 몰표를 주거나 점수를 몰아주는 행태도 만연해 있다.


결국 이 구조에서 단체에 속한다는 것은 두 가지를 동시에 의미한다. 하나는 누군가 결과를 봐줄 가능성이고, 다른 하나는 그보다 먼저, 게임이 시작되는 줄도 모르고 뛰어드는 일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후자가 훨씬 더 조용하고 훨씬 더 흔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실력을 키우는 것만큼이나, 혹은 그보다 먼저, 정보가 도는 자리에 앉으려 한다.


아무런 연줄도 없이 자신의 실력과 열정만 믿고 도전했던 지역 토박이 청년들은 이 장벽 앞에서 가장 먼저 무너진다. "축하합니다. 서류 합격입니다." 문자를 받고 가슴이 뛰었던 순간, 마침내 고향에서 꿈을 펼칠 작은 디딤돌 하나를 놓았다고 믿었던 순간이 있었을 것이다. 밤을 새우며 지역의 자원들을 분석하고, 피피티 테두리의 정렬을 맞추며, 면접장에서 할 말을 수십 번 소리 내어 연습하던 날들. 하지만 면접장에 들어선 지 단 3분 만에 차가운 직감이 온몸을 지배한다. 심사위원들의 시선은 포트폴리오가 아닌 스마트폰 액정 위에 머물러 있고, 질문은 건조하다 못해 형식적이다. 이미 누군가에게 주기로 약속된 자리, 그리고 그 자리의 합법성을 입증하기 위해 채워져야 했던 '경쟁률'이라는 차가운 숫자. 그 청년은 누군가가 설계한 무대 위에서 완벽한 연기를 펼쳐 준 '합법적 들러리'였을 뿐이다.


열심히 노력해도 결국 승진과 공모 선정은 지역 유지의 자녀나 인맥이 닿아 있는 외지인에게 돌아가는 구조를 목격하면서 청년들은 깊은 박탈감을 느낀다. 공적 질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청년들은 지방에 남아 버티기보다 고향을 등지거나, 심한 경우 구직을 완전히 포기하고 방 안으로 숨어버리는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과 고립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런 폐쇄적 카르텔 구조는 조직 내부의 작동 방식도 왜곡시킨다. 사적 연고의 울타리가 공적 생존 수단이 된 한국 슬롯는 조직 운영 논리 측면에서 공정성과 자율성을 억압하는 '집단적 서열주의'를 양산했다. 한국의 대다수 단체와 조직은 시스템에 기반하기보다 지위가 높은 최고 권력자의 개인적 의지와 사적 이해관계에 따라 파행적으로 움직인다. 조직의 고위 권력 거리가 지나치게 멀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생존을 위해 권력자의 심기를 살피는 처세술을 체화하며, 이러한 카르텔 내부 구조에 저항하거나 질문을 던지는 소수자에게는 조직 전체가 조직적이고 가혹한 배제를 가한다.


의사결정의 투명성과 합리성을 보장하는 절차적 공정성(Procedural Justice)이 훼손된 조직은, 단기 성과의 분배적 공정성보다 구성원의 내부 몰입과 조직 효과성에 훨씬 파괴적인 영향을 미친다. 개인이 실패했을 때 그 바카라임을 전적으로 개인에게 묻는 징벌적 구조는 행정 관료들의 바카라임을 최소화하려는 '직무 유기의 일상화'를 초래한다. 공공의 재난이나 위기 상황에서 전적인 사법적 바카라임을 질 것을 우려한 실무 공무원들이 자율적인 판단 하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음으로써 공적 안전망은 무력화되고, 국민들은 다시금 누구도 믿을 수 없는 '각자도생의 늪'으로 빠져든다. 은퇴 후 빈곤 상태로 80년을 더 견뎌야 하는 노후 불안과 자녀 양육의 두려움, 청년들의 생존 불안으로 구성된 이른바 '삼불(三不)' 현상은 공동체적 연대를 무너뜨리고 타인을 경쟁자가 아닌 제거해야 할 '적'으로 보게 만든다. 공공 제도를 신뢰하지 못하고 철저히 아는 사람 중심의 폐쇄적 카르텔에만 의존하는 특수화된 신뢰(Narrow Trust)의 한계는 결국 엄청난 슬롯적 격차와 함께 치명적인 고립이라는 청구서로 환원된다.


이 누적된 결과는 통계로도 명확하게 드러난다. 슬롯 신뢰 평균은 10점 만점에 5.15점으로 보통 수준에 그치고, 일반인(모르는 사람)에 대한 신뢰는 4점 만점에 2.02점으로 16개국 중 10위에 머문다. 공적 기관 신뢰도는 2.46점으로, 기업 신뢰도 2.58점보다도 더 낮다. 통계청 슬롯조사를 종합하면, 전체 인구 평균으로 국민 10명 중 3명(33.0%)이 고립감을 토로한다. 위기 시 행동을 지지해 줄 기반을 보면, 아플 때 집안일을 부탁할 사람이 없다는 응답이 24.9%, 우울할 때 이야기할 상대가 없다는 응답이 21.3%였다. 연령별로 보면 고립 비율의 편차가 가파른데, 19~29세 청년층은 24.4%, 60세 이상 노년층은 39.4%에 달한다. 한국 성인 중 갑작스러운 질병이나 정서적 위기에 처했을 때 주변에 도움을 요청할 최소한의 사적 네트워크조차 상실한 '슬롯적 고립자'의 비율은 연령이 증가할수록 가파르게 수직 상승하는 것이다.


특히 청년 고립·은둔 문제는 연고 중심 서열 경쟁에서 낙오한 개인들이 겪는 가장 치명적인 슬롯적 배제의 실상을 반영한다. 청년 인구의 약 5%인 54만 명으로 추산되는 고립·은둔 청년들은, 일반 청년(6.7점)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삶의 만족도(3.7점)를 나타낸다. 이들의 다수는 성인기 이전에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거나(57.2%), 가정 내에서 부모로부터 심각한 신체적 학대와 모욕적 훈육을 경험(51.2%)한 치명적인 대인관계 트라우마를 안고 있다. 그 결과 무한 경쟁과 사적 연고가 지배하는 주류 시장으로의 진입에 거듭 실패하면서, 노동시장에서 소외되고 신체적·정신적으로 소진되어 최종적으로 관계 맺기를 자발적으로 중단한 채 방 안으로 은둔을 택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집단주의 카르텔의 생존 압박이 역설적으로 가장 철저한 원자화와 배타적인 고립을 초래한다는 비극적인 역설을 증명한다.


그래서 지역 청년이 서울로 떠나는 흐름을 막는 방법은, 감성적인 호소가 아니라 구조를 바꾸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제도적 관점에서는 불투명한 정실 채용의 소지를 차단하는 규제 법망의 고도화가 우선적 과제다. 현재 국회 계류 및 전면 개정이 추진 중인 '공정채용법'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위반 기업에 대해 형벌 및 과태료를 강화하는 행정적 제재 수준을 넘어, 민간 대기업과 중소기업 전반에 성별근로공시제 및 표준화된 국가직무능력표준(NCS) 능력 중심 선발 모델을 정밀하게 보급해야 한다. 공적 절차의 투명성을 강화해 주관적 정실의 개입 가능성을 전천후로 차단함으로써, 개인이 유력 상사와의 정실 맺기에 에너지를 낭비하기보다 고유한 직무 적합성과 전문 지식을 함양하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유도해야 한다. 또한 소위 '어공(어쩌다 공무원)'과 '늘공(늘 공무원)'이 유연하게 융합해 위기 상황에 협력했던 사례에서 보듯, 내부 폐쇄성이 강한 공무원 슬롯 및 기업 조직에 다양한 인적 구성을 이질적으로 조합하여 집단적 서열주의를 완화해야 한다.


지역 공모사업 자체의 설계도 바뀌어야 한다. 단기 성과 지표로 외부 인재의 숫자를 채우는 방식에서, 실제로 토박이 청년을 길러내는 데 들어가는 시간을 평가 지표에 포함시키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 공모와 채용에서 내정자를 위한 맞춤형 자격 요건 설계나 사전 정보 공유 같은 관행을 적발하고 제재할 수 있는 별도의 감사 체계가 지역 단위에 필요하다. 정보가 흐르는 통로 자체를 공식화하지 않으면, 외부에서 누구를 데려오든 토박이든 결국 같은 카르텔의 벽에 부딪힌다.


미시적인 관계망 형성 측면에서는, MZ세대를 중심으로 확산 중인 '느슨한 연대(Loose Solidarity)'의 긍정적 측면을 공적으로 장려해야 한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롭고 수평적인 온라인 취향 소모임, 공유 오피스 커뮤니티, 멘토십 매칭 플랫폼(커리어리, 클래스101 등)은 과거 끈적한 혈연과 학연 집단이 주던 인격적 억압 없이도 개방적인 협력 파트너를 확보할 수 있는 대안적 안전망이 될 수 있다. 직무적 정보 공유에 엄격하게 제한되는 소셜 인맥 문화를 정착시키는 방향으로의 이행은, 특수화된 폐쇄 신뢰를 다원적 범주의 보편주의적 신뢰로 확장할 수 있는 풀뿌리 토대가 될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승자독식 구조를 만드는 원천인 노동시장 이중구조에 대한 과감한 슬롯 보장적 개입이 병행되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과도한 임금 불균형을 해소하고, 어떤 집단이나 직급에 도달하지 못하더라도 인간의 기본적 생존과 품격이 국가 복지에 의해 체계적으로 보장받을 수 있을 때, 비로소 각자도생의 공포가 소멸할 것이다. 그때가 되어야 지역 청년도 굳이 서울행 버스표를 끊지 않을 이유를 갖게 된다. 개인의 행복을 볼모로 카르텔 결성을 자극해 왔던 비정상적인 집단주의 슬롯를 종식하고, 개방과 상생, 그리고 제도적 안전망에 기반한 신뢰 슬롯로 이행하는 것이 한국 슬롯가 당면한 핵심 생존 전략이자 구조적 혁신의 종착지다. 그런데 이 모든 진단의 더 밑바닥에는 사실 더 단순한 지리적 사실이 깔려 있다. 경험이라는 것 자체가 한 곳에 쏠려 있다는 사실이다. 기획서를 쓰는 법, 포트폴리오를 다듬는 법, 사람을 만나고 일을 키우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인프라는 압도적으로 서울에, 더 넓게는 수도권에, 그리고 그보다 더 위 단계로는 해외에 쌓여 있다.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그런 경험을 하려면 애초에 그 경험치가 존재하는 곳으로 떠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 지자체가 '준비된 인재'를 찾을 때 그 인재가 외지 출신일 수밖에 없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경험을 쌓을 기회 자체가 지역에는 없었으니까.

문제는 그렇게 외부에서 경험을 쌓아 온 사람들의 이동 역시 자발적인 성공의 서사로만 읽히지 않는다는 점이다. 서울이나 수도권에서, 혹은 해외에서 경력을 쌓은 이들이 지방으로 내려오는 이유는 종종 그곳에서의 삶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어서다. 치솟은 땅값과 생활비, 포화된 경쟁 속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비용이 낮은 지역으로 옮겨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러니 이 구도는 '성공한 외지인이 지역에 베푼다'도 아니고 '욕심 없는 토박이가 손해를 본다'도 아니다. 경험을 쌓을 기회는 애초에 한쪽에만 몰려 있었고, 그 기회를 쥐었던 사람들조차 결국 그 중심부의 비용을 못 견뎌 밀려나는 구조다. 토박이 청년과 외지 청년은 사실 같은 구조의 양쪽 끝에서 밀려난 사람들인 셈이다. 그 둘을 다시 경쟁시키는 지금의 정바카라 설계야말로, 이 문제의 진짜 원인을 가장 정확하게 비껴가고 있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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