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
일탈
(저스트 2)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오는 길에 만화바카라이나 비디오를 하나씩 빌렸다.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토탈이클립스 등의 영화를 보면서 현실의 괴로움을 잠시나마 잊고 새로운 꿈을 꿨다. 디카프리오와 브래드 피트, 톰 크루즈 등의 할리웃 스타들이 나오는 영화들에 매료되었다.
아래층에 사는 친구가 만화와 영화를 정말 좋아했는데, 그 친구의 영향으로 나는 다양한 문화를 경험할 수 있었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야기도 그때 알 수 있었고, 내게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방학 동안 그 친구네 언니가 내 머리카락을 탈색시켜 주었는데, 그 모습을 본 아빠의 호통을 듣고 다시 하루 만에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다.
질풍노도의 시기, 내 안의 풍파는 거칠었지만, 사실 큰 사고를 친 적은 없었다. 아침에 지각해서 학생주임 선생님께 몽둥이로 맞은 것, 야자시간에 몰래 학교담장을 넘어서 친구들과 근처 노래방에 갔던 것, 친구들과 한껏 꾸미고 신촌에 옷 사러 갔던 것..... 그 정도가 내 일탈의 범위였다.
아이들은 저마다 나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을 했다. 내 앞에서는 차마 대놓고 그러지 못하고, 나의 등 뒤에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아이들로부터 소외된 어떤 친구와 함께 어울렸는데, 아이들은 그것을 가지고도 내게 물었다.
"넌 왜 저런 애랑 다녀?"
나는 은따라는 단어를 그때 알게 되었다. 은근히 따돌리는 것. 나는 그게 남일 같지 않았고,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래서 그 친구에게 좀 더 신경이 쓰였다. 그 친구는 우리나라 역사에 큰 관심이 있었고, 쉬는 시간마다 도서관에서 바카라을 빌려서 열심히 읽곤 했다. 오히려 나는 그런 친구가 멋있어 보였다. 그런데 뒤에서 가끔씩 아이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렸다.
"여어, 카메라 돌아간다."
"피카추, 삐까 삐까 삐까."
"저봐, 완전 사이코 아니냐?"
나는 적극적인 면도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내성적인 편이었다. 되도록 그 아이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하면서도, 속으로 짜증도 났고 화도 났다. 마음속으로 18 새끼들 욕도 했지만, 늘 평정심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다. 괜히 문제를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즐겁고 기쁜 일들도 있었다. 친구 하나가 이야기 좀 하자고 불러냈고, 그 애를 따라 교정을 빙글빙글 돌다가 교실에 들어오니 불은 꺼져있고 조용했다. 그러다 갑자기 누군가 딸깍 불을 켰고, 교탁엔 초코파이 탑이 쌓였고, 그 위엔 촛불이 일렁거렸고, 아이들이 생일축하 노래를 불러줬다. 집에 오는 길에 스티커 사진도 많이 찍었고, 주말 이른 아침에 버스터미널에서 가끔 조조할인으로 영화도 봤다. 그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