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자수업
등나무그늘
(야자수업)
하아.
어디서부터 이야기해야 할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난 눈이 반짝이는 보석 같은 아이였다. 담임선생님이 날 그렇게 불러주셨고, 친구들과도 즐겁게 잘 지냈다. 비록 엄한 부모님 밑에서 힘들기도 했지만, 그때는 나름 잘 지냈다.
그런데 고등학교 들어가면서 나는 많이 힘들어졌다. 극심한 사춘기가 시작되었다. 몸도 마음도 커다란 변화가 찾아왔다. 생리가 시작되고, 전보다 예민해지고, 이런저런 생각이 많아졌다.
그런 시기에 나는 마치 전학을 가듯 고등학교에 들어가게 되었다. 다른 중학교 친구들은 바로 옆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했지만, 나만 시내로 이사를 갔고 그곳에 있는 고등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아침마다 졸린 눈을 비비고 콩나무시루처럼 학생들로 바글바글한 버스를 탔다. 전교 1등을 했던 나는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에서 또래들에게 지나친 관심을 받았는데, 그게 너무 부담스러웠다. 자리에 앉아있으면 뒤통수가 따갑고 어깨가 경직될 정도였다.
중학교 때와는 다르게 고등학교 수업과정도 어려웠다. 수업의 난이도가 달랐고 공부량도 많아졌지만, 어떻게든 독학을 해야 했다. 꾸준히 학원을 다닐 형편이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 수 있었다.
그 와중에 나를 좋아한다는 아이가 있었는데, 솔직히 그 아이와 사귀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그래서 나름 정중하게 거절했는데, 친구들은 그런 나의 처사가 얄미웠는지 말이 많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입장을 친구들에게 적극적으로 해명하고 대처하지 못했다. 그럴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게다가 갑자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자율학습을 해야만 했는데, 오랜 시간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서 어깨가 뻣뻣하고 허리에 통증이 심해졌다. 정신적인 고통이 신체적으로 나타나고 있었고, 병원에 갔더니 의사 선생님은 그럴 수 있다고 적절히 쉬면 좋겠다고 하셨다.
야자시간마다 허리통증에 시달리다 화장실에 다녀온다고 하고는 어두운 교정에 있는 등나무그늘에 혼자 앉아서 운동장을 바라봤다. 아무도 없는 텅 빈 운동장을 바라보며 나는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흥얼흥얼 노래도 불렀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했던 시기, 나는 몇 친구들과 교환일기장을 주고받았고 쉬는 시간에 CD플레이어를 빌려서 이어폰을 끼고 노래를 들었다. 아이들은 그 시절 자우림, 유재하, 스매싱 펌킨스, 넥스트, 마이클잭슨 등의 노래를 많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틈나는 대로 고단한 심경을 글로 끄적였다.
결국 담임선생님께 양해를 구했고, 나는 더 이상 야자수업을 하지 않게 되었다. 만약 성적이 더 떨어지면, 그때는 다시 야자수업을 하기로 약속하고 집에서 혼자 공부하게 됐다. 부모님도 허락해 주셨지만, 솔직히 집에서 혼자 공부가 잘 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