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나를 지탱하던 방식이 나를 고립시켰다

byKarel Jo


현관문 손잡이에 한참 동안 머물러 있던 날 이후에, 나는 한동안 별다른 변화를 느끼지 못한 채로 생활하고 있었다. 그날 하루만 이상했다고 느껴질 만큼, 나의 일상은 위화감 없이 흘러가고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세수하고 양치하고, 옷을 갈아입고 출근길에 올라 회사 바카라상에 앉아 내가 해야 할 일을 충분히 끝낸 다음 자리에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의 반복. 잘 짜인 나의 루틴은, 그렇게 잘 지켜지는 것 같았다. 마치 그날의 일은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이. 겉으로 보기에 나의 삶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고, 내가 해야 할 일을 여전히 잘 해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가 괜찮다고 생각했다. 지금에 와서는 괜찮다는 말로 애써 덮으려 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그날 하루가 그냥 유난히 힘든 그런 날이었다고 치부하고, 일시적인 일로 가볍게 넘기려 했다. 그런 날들이 있었으니까, 처가의 어딘가가 또 폭격을 받았다든지, 또는 알게 모르게 나의 말들이 뒤에서 들려오는 때라든지, 거기에 일은 언제나 줄지 않았으니 피곤할 만한 건 사실이었다. 그러니 일상을 되찾은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그때의 나는, 시간이 지나면 꼭 좋아질 거라는 그런 믿음을 갖고 싶었다.


그러니 나 스스로를 정의하자고 하면, 나는 꽤 단단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힘든 일이 생겨도 결국은 그 일에 대해 힘들다고 받아들이지 않고, 결국 이겨내고 원래의 루틴을 찾아가는 사람. 어려운 상황임에 틀림없지만 크게 흔들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일상을 가져갈 수 있는 사람. 그리고 나는 실제로 내가 그런 사람이라는 것에 대한 한 치의 의심도 없었다. 온라인 게임 생활을 하면서 여러 번 회사를 옮겼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했으며, 익숙하지 않은 업무도 배워 나갔다. 팀장이 된 뒤에도 처음에는 서툴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내 방식대로 팀을 이끌어 갈 수 있었다.


그런 경험들은,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나의 생각을 굳건히 하는 하나의 증거로 남아 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주는, 달리 말해 나를 고립시키는 생각으로 변해갔을지도 모르겠다. 조금만 더 버티면,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것이다라는, 과거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그 믿음은, 나를 한 단계 더 앞으로 성장해 왔던 원동력임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만큼에서는, 그 원동력이 나를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보다는, 내가 힘들다는 사실을, 지쳐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게 되는 하나의 족쇄가 되어 버렸다.


앞서 나는, 팀장으로서의 나의 역할에 대해, 그렇게 정의하곤 했다. 팀원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그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는 존재. 혼자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함께 고민하자고 할 수 있는 존재. 누군가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면 업무를 조정하거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실제로 어떻게 해결해 나갈지를 함께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갈 수 있는 존재. 쉽게 말해, 나는 의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나를 정의했다.


그러나 정작, 나 자신에 대해서는 그런 의지에 대한 생각을 심어주지 못했다.


내가 힘들다고 말하면 무엇이 달라질까. 누군가에게 이야기한다고 해서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겪고 있는 일을 설명하려면 먼저 나부터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할 것 같았다. 나조차 이유를 모르는데 다른 사람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한편으로는, 팀장이라는 자리에 앉은 사람이 이런 일로 힘들어해도 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나에게 어려움이 생겼을 때조차 내가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 자신을 몰아세우며 하루하루를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나는 점점 말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말이 없어지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말의 높낮이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공연히 짜증을 낸다거나 화를 내는 것의 문제라기보다는, 나는 나를 수면 밑으로 가라앉히고 올라올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딘가에 깊이 잠식되어 가는 기분, 그 순간의 나는 굉장히 뾰족했고, 남들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힘들게 하고 있었다.


그걸 알아차리기 시작한 건, 어느 순간 팀원들이 나의 눈치를 살피고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부터였다. 그렇게 가라앉아 있을 때의 나는, 안 그래도 높지 않은 목소리 톤이 더 낮아지고, 말에 한숨이 많이 섞이기 시작하는 그런 상태였다. 한 번은, 평범하게 나에게 업무에 대한 방향을 논의하는 그런 자리였는데도, 나는 평소와 다르게 반응해 버렸다.


"팀장님, 어제 말씀하신 부분을 좀 더 보완해 왔는데 제가 더 여기서 검토해 볼 만한 내용이 있을까요? 이 부분은 마케팅 팀의 의견도 같이 검토해서 수정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 좀 많이 생각이 다르네요. 다시 합시다. 잘못된 것 같아."

"아... 어떤 부분에서 제가 수정을 봐야 할까요?"

"메일로 보내 주세요, 전반적으로 다시 잡아야 될 거 같아요."


그때의 나는 냉정했지만, 차분하지 못했다. 팀원의 이야기를 깊게 듣고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하기보다는 나의 생각을 단정적으로 내지르는 것만 생각했다. 왜 이렇게밖에 생각하지 못하는지, 이 이상을 왜 생각하지 못하는지에 대한 자기중심적인 나의 가시가 가감 없이 드러났고, 해결 방법을 함께 모색하고 적절한 방향을 제시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닌, 나의 말만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물론 그런 순간이 지나고 나면, 나는 내가 했던 말들을 되짚어 보곤 했다. 조금 더 차분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었을까. 팀원의 생각을 조금 더 들어볼 수는 없었을까. 평소라면 하지 않았을 행동을 했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렸고, 그럴수록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후회하는 것과 달라지는 것은 다른 일이었다. 나는 내가 잘못한 부분을 알고 있었지만, 왜 그런 상태가 되었는지는 여전히 알지 못했다. 그러니 다음에는 조금 더 신경 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 자신을 돌아보는 순간에도, 결국 내가 해야 할 일은 더 잘하는 것이라고 결론 내리고 있었던 셈이다.


그렇다고 계속 혼자서 해결할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하는 일 자체가 버겁게 느껴졌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생각을 시작했지만, 이제는 생각을 거듭해도 뚜렷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고 생각을 멈추면 무언가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 같았다. 일을 하는 동안에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잠자리에 누워서도 마음 한구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무거움이 남아 있었다.


나는 여전히 답을 찾으려 했다. 다만 그때부터는 내가 혼자서 답을 찾아내는 것만이 유일한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조금씩 들기 시작했다.


그러다 어느 날, 결정적인 계기는 아내의 말 한마디에서 왔다. 모처럼 휴가를 내고 한겨울의 제주도를 거닐고 있던 순간, 운전대를 잡은 나의 무표정 사이로 들어온 아내의 그 말 한마디에,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언제서부터인가, 당신 웃고 있지 않아. 더 힘들기 전에, 한 번 얘기라도 들어 봤으면 해."


평소 나에게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던 아내에게도, 그 말은 쉽게 꺼낼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내는 더 늦기 전에 내게 그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말이 새삼 내가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만들었다. 어느 순간부터,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겨야 할 사람들에게까지 나의 어두움이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게 된 그날, 오랜 시간이 걸려 깨달았지만 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나는 오랫동안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군가 어려움을 겪을 때 기대어도 되는 사람, 문제가 생겼을 때 함께 방법을 찾아 줄 수 있는 사람, 적어도 팀원들에게만큼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도움을 받는 사람의 자리에 내가 앉는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팀장이라는 자리도 결국 한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였다. 그 사람 역시 모든 것을 알 수 없고,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없으며, 때로는 자신이 무엇 때문에 힘든지조차 설명하지 못할 수 있었다.


결국 나도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것은 내가 팀장으로서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그동안 잘해 왔다는 증거도 아니었다. 그저 나에게도 혼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겼다는 뜻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다시 나를 돌보기 위해 가장 먼저 해야 했던 일은 그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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