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말을 누군가는 기억하고 있다
좋은 팀장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했던 그날의 저녁이 지나가고, 다음 날 나는 평소보다 조금 일찍 사무실에 출근했다. 자리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 커피 한 잔을 내리며 업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어제 바쁘게 자료를 수정하던 그 팀원이 출근했고, 그 팀원은, 곧 내가 전날에 이야기했던 부분을 보완한 자료를 들고 와 이렇게 말했다.
"팀장님, 어제 말씀하신 부분에 대해 방금 수정을 완료하였고, 메일로도 보내 드렸습니다. 제가 평소와 달리 충분히 먼저 생각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앞으로는 조금 더 신경 써서 집중해 보겠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니, 좋은 팀장이라는 게 무엇인가에 대한 답을 찾는 것보다도 어쩐지 먼저 미안함이라는 감정이 밀려들어왔다. 내가 했던, 피드백이라는 말보다도 그 말에 대해 그 사람이 받아들이는 방식과, 그 받아들임이 어떤 결과물로 다시 돌아왔던 그 순간이 오히려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느낌이었다. 왜냐 하면 그렇게까지 나의 말이 무거운 결과물과 태도로 돌아올 거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 일 이후부터, 그래서 나는 팀장으로서의 말이 갖는 무게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솔직한 말로 나의 말이 그렇게까지 무게감을 갖고 가지 못한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처음부터 그들의 팀장이 아니었으니까, 선이 없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허물은 없다고 생각해 왔었기 때문이었다. 무심코 던진 한 마디는 과거에도, 지금도 달라지지 않고 달라진 것은 오직 내 이름 앞에 붙은 직바카라 하나일 뿐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나는 내가 하는 말에 대해 지나치게 가벼웠다. 순간적으로 나온 말은, 순간적으로 지나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팀장의 말이라는 것은 나의 가벼운 생각보다는 훨씬 더 무거운 것이었다. 그 일이 있고 난 후에 내 말이 갖는 무게감을 스스로 조금씩 자각하다가, 한 번은 그런 일도 있었다. 점심시간에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도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도 별생각 없이 평소처럼, 밥을 먹다가 어쩌다 업무 이야기가 나왔고, 업무 이야기를 하는 도중에 농담 삼아서 "아, 처음에 왔을 때는 그런 말도 할 줄 모르더니, 많이 적응했다~"라고 무심결에 한 마디를 툭 던진 모양이었다.
그때의 나는 그 팀원이 순간적으로 어쩔 줄 모르는 표정을 짓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고, 나중에 개인적으로 메신저에 '팀장님, 제가 아까 너무 불손한 태도였다면 죄송합니다'라고 핑이 오는 것을 보고 몹시 당황했었다. 손사래 치며 나도 '전혀 그럴 의도 아니었고, 그렇게 받아들였다니 오히려 내가 나쁜 농담을 했다'라고 회신하고 따로 간식도 꺼내어 주며 달래 보았지만,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었다. 팀장의 말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무거운 말이고, 생각보다 팀원들에게 오래 남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렇게 되고 나니, 나는 생각이 많은 사람인지라 과거의 나의 말들을 하나씩 떠올려보기 시작했다.
혹시, 나도 모르게 의도치 않았지만 이미 그 사람의 마음에 무거운 부담을 얹어주지 않았을까?
별생각 없이 이야기했다고는 하지만, 그 사람의 하루를 이미 망쳐버린 순간이었지 않았을까?
팀장이라는 직바카라에 앉아 있을 뿐인데, 나의 기분이 그들의 기분에 영향을 준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그때부터, 팀원들과 이야기할 때에 나는 한 가지 습관이 새로 생겼다. 내가 말하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그 내용을 듣는 사람이 받아들이는 과정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습관이었다. 예를 들어, 단순히 숫자를 보면서 예전에 같은 동료였을 때 "이거 한번 다시 확인해 보자"가, 평가자의 입장에서는 "많이 부족하니 보완을 해 보자"라는 말로 들릴 수도 있었고, 어떤 업무 결과에 대해서 "조금 아쉬웠지만 그 정도면 잘했다"는 위로가 아닌, 향후 보완을 요구하는 평가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들이었다.
물론, 그 차이를 알았다고 해서 내가 하는 말을 모두 조심스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회사와, 조직이기 때문에 팀장으로서 해야 할 이야기는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이고, 그 말에는 감정이 실리지 않지만 사실은 정확하게 실려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위로와 격려, 그리고 칭찬은 사람의 동기부여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겠지만, 그 필요가 거짓을 기반으로 나올 수는 없는 일이다.
결국 문제는 좋은 말을 해준다는 아니었다. 그보다는 '어떠한 마음으로 말을 전달할 것인가'를 생각해야 하는 일이었다. 사람은, 모두가 다르기에 상대방이 한 말을 곧이곧대로 듣지만은 않는다. 누가 한 말인지, 어떤 표정과 톤으로 한 말인지, 그 말을 하는 상황이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해 자기의 주관으로 그 말을 이해한다. 과거 같은 동료였던 나는, 팀장으로 올라온 순간에 그들을 평가하는 입장이고, 그렇기 때문에 나의 말은 때로는 동료로서의 조언과 위로가 아닌, 팀원의 능력과 성과를 평가하고,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 그들의 생각을 복잡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니, 좋은 팀장이 단순히 좋은 말을 해주고 용기와 의욕을 북돋아주는 팀장이라는 말은 아니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난 후에, 나는 말하기 전 한 번씩 멈추는 습관도 가지게 되었다.
이 말을 지금 꼭 해야 하는 말일까?
지금 내가 하려고 하는 말이, 너무 감정적으로 들릴 여지는 없을까?
말을 하면서도, 나의 의도와 달리 무게감을 너무 싣지 않기 위해 어떻게 잘 마무리해야 할까?
특히 감정이 올라온 상태에서는 더 기다리려고 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나온 말은 업무에 대한 피드백인지, 내 감정을 상대에게 쏟아내는 것인지 구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물론 지금도 잘하지 못한다. 지나고 나서 ‘그 말을 굳이 그렇게 했어야 했을까’ 하고 후회하는 날도 있다. 반대로 너무 조심하다가 해야 할 말을 놓친 날도 있다.
어쩌면, 팀장이 된다는 것은 말을 잘하는 사람이 되는 일이 아니라, 내 말이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로 남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사람이 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내가 팀장이 되고 나서 배운 가장 어려운 말하기의 기술은 말을 잘하는 방법이 아니었을 것이다.
말한 뒤에 그 말이 상대방에게 어떻게 남을지를 생각하는 것.
그리고 언젠가 내가 그 말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그 사람은 기억하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것. 그것이 내가 배운 가장 어려운 기술이었다.
팀장의 말은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말을 하기 전에 잠깐 멈춘다.
내가 이 말을 왜 하려는지 생각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주 가끔은, 내가 하지 않아도 될 말까지 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기 위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