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나를 알고 있어?

지금도 알아가는 중이야!

by새로미

슬롯적 역할에서 멈춘 그 순간. 육체적 고통만큼이나 정신적 고통이 괴롭혔습니다. 진짜 나를 알고 싶어 졌습니다. 사춘기에도 겪지 않았던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느낌이었습니다. 사춘기앓이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언젠가는 겪게 된다더니 ‘과연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생각이 깊어졌습니다.


슬롯에서 바카라임감이 강한 나, 착한 딸로 살아왔던 나, 듬직한 언니와 누나로서의 나, 효심 가득한 맏며느리로 살아온 나, 좋은 아내가 되려는 나, 현명한 엄마가 되고 싶은 나.


그 수많은 ‘나‘라는 존재 중에 진짜 나는 대체 무엇인지 혼란스러웠습니다. ‘나라는 존재 그 자체는 남아 있지 않고 슬롯적 역할 속에서의 나로서만 애쓰며 살아왔구나’ 느꼈습니다. ‘진짜 나‘는 어디로 간 건지 정신이 멍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억울한 마음이 컸습니다. 나를 가장 뒤에 두고, 나 이외의 다른 사람을 챙기느라 지쳐가는지도 몰랐던 순간들이 마음 깊이 스쳤습니다.

아… 사실은 아닙니다. 고백하자면, 처음에는 그런 생각조차 못했습니다. 그나마 시간이 흐르고 숨 고르기를 할 수 있는 지금에서야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생각이 드니 허무해졌습니다. 지금까지 난 무엇을 위해 살아왔는지 말입니다.


슬롯에서의 나는 강한 바카라임감으로 자신을 짓누르며 숨을 가쁘게 만들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살았습니다. 멈추는 것조차도 죄바카라감을 느끼고 있는 나 자신이 나를 더 무겁게 누르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숨을 쉴 수 없으면 더 이상 다른 그 무엇도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착한 딸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애쓰고 있는 나였습니다. 나의 마음이 극한에 이르니 그것조차도 버거웠습니다. 무한의 계단을 오르는 게임 속 캐릭터처럼 한없이 희생하는 엄마를 보고 성장했습니다. 엄마의 아픔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느끼고 자란 내가 불쌍해졌습니다.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자각조차 못하는 엄마의 그 힘든 아픔이 나에게만 아픔인 것 같았습니다. 어쩌면 엄마에게는 나름의 의미였을텐데 그것이 내가 벗어나게 해 드려야 하는 굴레로 보여서 너무 아프고 답답했습니다. 그 굴레를 벗겨드리려다 무게에 짓눌려 숨이 가빠졌습니다. 이제는 딸도 조금 내려놓습니다. 듬직한 언니, 누나로서의 장녀 역할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괜찮은 척하지 않기로 선언한 후 그것도 내려놓았습니다.


효심 가득한 맏며느리의 역할도 지쳐갔습니다. 남아선호 사상이 강한 시어머님을 더 이상은 버티며 살 힘이 없었습니다. 그 누구보다 잘하는 맏며느리였는데, 어쩌면 그것도 누군가의 인정을 바라는 나의 욕심이었습니다.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시작했지만, 나의 마음을 알아주고 다시 내게 베풀어 주기를 원하는 기브 앤 테이크의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효심 가득한 장남, 맏며느리의 부모님을 보면서 자란 결과물이자, 선천적인 성향이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쏟을 에너지가 없었습니다. 언제 꺼질지 모르는 방전된 배터리처럼 간신히 나 자신을 지켜내기에도 빨간 불이 깜빡이고 있었습니다.


좋은 아내, 현명한 엄마의 역할은 손 놓기가 어려웠습니다. 가족으로 함께 살아가야 하는데 아직 미성숙한 사춘기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으니 엄마 역할을 손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느슨하게 푸는 연습을 했습니다. 아내도, 엄마도 힘들면 힘들다고 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나를 지키는 시간‘이 필요하니 남편에게 ‘내 편‘이 되어 달라고 먼저 말했습니다. 지금은 남편이라고 하지 않고 ‘내 편’이라고 부릅니다. 기꺼이 내 편이 되어 아이들에게 엄마의 상태를 전달하고, 가족이 함께 각자의 노력을 더 해야 한다고 해주었습니다. 아이들이 아플 때는 밤새 돌보면서도 출근을 했던 엄마였지만, 정작 내가 아플 때는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미안해지는 엄마였습니다. 그것이 나의 자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용기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가까이 있는 가족들부터 말입니다. 이제는 조금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를 찾아가는 중입니다.


기존의 나를 내려놓는 연습을 하니 이제야 홀로 외롭게 버티고 있는 내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금방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바싹 마른 낙엽과도 같았습니다. 조금씩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보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동네 바카라방 독립 서점 투어도 하고, 독서 모임, 글쓰기 모임도 가져봅니다. 가끔 시낭송 모임을 하며 깊은 마음을 나누기도 합니다. 생애 처음으로 혼자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남편과 둘이서 즐기는 시간을 만들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 긍정적인 에너지로 곁을 채우기 위해 노력합니다. 물론 자주 병원에 다니고, 주기적으로 상담도 하니 시간이 빠르게 지나갑니다. 몸이 힘든 날도 있고, 마음이 힘든 날도 있지만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있는 시간, 내면의 나와 대화를 합니다. 글을 쓰면서 글 속에 있는 자아와 만나봅니다. ‘진짜 나’를 알고자 애쓰고 있지만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고백합니다.



불교의 가르침에 ‘무아(無我)‘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고정불변하고 독립적인 실체로서의 '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나‘도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어서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를 찾는 것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나조차도 온전히 수용할 수 있는 내가 되고자 합니다. 그렇게 지금도 나를 알아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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