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침문(弔針文)을 패러디하다 -
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필부(匹婦) 이 씨(李氏)는
수 백 자 글로써 폰자(Phone子)에게 고(告)하노니,
인간 남녀노소(男女老少)의 손안에 필요불가결한 것이 휴대폰(携帶phone)이로되,
세상 사람이 좋아라 여기는 것은 이미 제 몸처럼 지니기 오래되었기 때문이로다.
이 휴대폰은 한낱 기계이나 이렇듯이 조문을 남김은
4년 가까이 동거(同居) 동락(同樂)했던 터, 끝내는 그 수(壽)를 다함으로
그에 대한 나의 품은 회포가 남과 다름이라.
오호통재(嗚呼痛哉)라, 아깝고 분하다.
스마트 폰 제조사의 횡포로 너의 수명이 그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니
어이 인정(人情)이 슬프지 아니하리오.
이제 너의 자리를 또 다른 스마트 폰이 차지하리니
슬픔을 잠깐 거두고 심신(心神)을 겨우 진정하여
너의 행장(行狀)과 나의 회포를 총총히 적어 영결(永訣)하노라.
4년 전 대리점에서 무수한 폰 가운데 내 너를 낙점하였느니
그 사이 찍은 사진이 천 점이 넘고,
너로 말미암아 주고받은 톡은 헤아릴 수 없으며,
너를 가교(架橋)로 오고 간 가족과 친구 간 사랑의 대화는 말할 것도 없으니
이 애달픔을 어찌 말로 다 하리오?
혹 나의 건망증으로 너를 잠시 잃으면 한 순간 혼비백산하고,
혹 내 칠칠치 못함으로 콘크리트 바닥에 곤두박질이라도 칠라치면
그때마다 가슴이 요동치기를 몇 번,
그럼에도 요행히 살아남아 위로가 되더니
비록 무심한 물건이나 어찌 사랑스럽고 미혹(迷惑)지 아니하리오.
아깝고 안타까우며, 또한 섭섭하도다.
아무리 돌려보고 만져보고 열어보아도 속절없고 하릴없다.
주머니를 뒤져도 있었던 자리 없네.
오호통재라, 편작의 신술로도, AI 최첨단 신기술로도 장생불사(長生不死) 못 하였네.
네 무심치 아니하면, 후세에 휴대폰과 휴대폰 케이스로라도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그때는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이 글은 조선 순조 때 유 씨 부인이 지은 국문체 고전수필 '조침문'을 '조폰문'으로 패러디한 글이다.
어느 날 문득 구매한 지 3년 조금 넘은 휴대폰이 먹통이 되었고, 더는 수리가 되지 않는다는 AS 센터의 통보를 받고 기함하여 쓴 글이라는 표현이 더 옳을지도 모르겠다.
사실 벌써 수년 전에 스마트폰 생산과 판매를 종료한 OO전자의 휴대폰이었다.
패러디의 기법을 빌렸지만, 그때의 심정은 조침문에 버금가는 상태였기에 그 상실감에 어쩔 줄 모르다 그날의 허전함, 그날의 느낌을 담은 거짓 없는 마음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더욱이 깨어 있을 때는 물론이고 심지어 잠을 청하는 그 시간에도 거의 머리맡에 두고 지내는 걸 생각하면 어쩌면 휴대폰은 옛날 규방에서 쓰던 바늘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요즘이야 수시로 더 나은 기종의 휴대폰으로 교체되기 일쑤지만 나는 구식이라 그런지 여전히 옛날 휴대폰들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묻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남아 있는 나의 손때를 그저 쉽사리 처분하고 싶지 않은 마음 때문인 듯하다.
휴대폰이 그러할진대 하물며 사람에 관한 기억이나 친분, 사연이나 추억은 오죽할까.
옷깃을 스치듯 지나온 그런 인연을 제외하면 웬만해선 쉽게 떨쳐내지 못하는 성격이라 나 같은 사람이면 좀 피곤한 부류라고 할 만도 하다.
그래도 어쩌랴, 기억을 못 하면 모를까. 기억할 수 있다면 나의 지나온 시간 속에 남아 있는 사람들에 관한 작은 에피소드도 가끔은 바다를 치솟는 돌고래의 유영처럼 내 삶을 윤택하게 하는 밑거름이 된다.
그러니까 좋은 사람, 좋은 시간에 관한 추억이라는 것은 한없이 인생에 무해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