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10.03.
살짝 빗방울이 내렸지만 5분 정도 되는 멀지 않은 거리라 금방 호텔에 도착했다. 가족끼리 여행을 다닐 때는 에어비앤비 위주로 숙소를 잡았는데, 이번에는 동선을 고려해 시내 중심에 있는 호텔을 잡았다. 적당히 가성비 있고 깨끗한 호텔을 고른 것이라 숙소에 대한 큰 기대는 없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우리의 여행이 즐거울 것이란 기분 좋은 예감이 들었다. 작은 창 밖으로 삿포로 타워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에펠탑을 발견한 사람들처럼 즐거워했다. 잠깐 휴식을 가지는 한 시간 동안 창가에 기대서서 삿포로타워의 시간이 바뀌는 모습을 계속해서 바라보았다. 삿포로 타워를 내 시계로 쓰는 여행이라니, 시작이 좋다.
호텔에서 나와 오후 7시에 예약해 놓은 징기즈칸(양고기)을 먹으러 가기 전에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삿포로는 오타루와 비에이가 대표적인 관광명소지만 시내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골목골목마다 다르게 세워져 있는 가로등과, 크리스마스와 할로윈 등 시기마다 다른 모습으로 꾸며져 있는 장식은 올 때마다 색다른 매력을 더한다. 그리고 5월, 11월 중순, 11월 말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진 10월 초의 시내가 보였다. 10월 초의 삿포로는 가로등의 장식대신 등불을 환히 밝힌 가로수들이 우리를 반겨 주었다. 가로등의 불빛에 힘을 입어 더 노랗게 빛나는 가로수들, 그리고 조금 떨어진 낙엽이 밟혀 나는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10월의 삿포로 시내를 장식했다.
골목마다 서서 수시로 바뀌는 니카상의 색감을 바라보기도 하고, 횡단보도를 빠르게 뛰어가보기도 하고, 맛있는 과자를 찾겠다며 눈에 띄는 편의점마다 들어가 보기도 했다. 무엇을 하러 가는 여행도 좋지만 특별한 것을 하지 않아도 옆에 있는 사람과의 시간에 집중하는 여행도 매력 있다.
시간에 맞춰 칭기즈칸집에 도착했다. 사장님께 예약을 했다고 말씀드렸는데 퉁명스럽게 저 뒤에 가서 앉아있으라고 하셨다. 한참이 지난 뒤에 자리를 안내받으니 우설, 호르몬 등 다양한 메뉴를 기대했던 우리의 바람과는 달리 양고기 한 접시가 전부인 메뉴판이 보였다. 정말 질 좋은 양고기를 먹을 수 있는 곳인 듯했다. 양고기 두 접시와 맥주를 시키곤 조용히 고기를 구워 먹었다. 도도한 사장님의 모습이 이해가 가는 신선하고 질 좋은 양고기였다. 하지만 뭔가 부족했다. 쫓기듯이 우리 둘은 허겁지겁 고기를 해치웠다. 이곳에서 빨리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다. 각자 1인분씩을 먹고 30여 분 만에 첫 번째 식당에서 바로 나왔다. 배가 어느 정도 찬 상태였지만 우리의 여행과는 맞지 않는 곳에서의 저녁으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는 없었다. 인근의 이자카야를 찾아 헤맸다.
메뉴가 다양하고 신선해 보이는 이자카야들은 흡연이 가능한 곳이 많았고, 비흡연인 식당은 너무 고급진 이자카야였다. 남편에게 부탁해 찾은 한 곳은 비흡연구역이긴 했지만 사람이 너무 많고 시끄러웠다. 4-5곳의 이자카야를 돌다가 갑자기 일본 전역에 항상 있는 프랜차이즈 이자카야가 생각났다. 일본까지 온 만큼 프랜차이즈는 피하고 싶었지만 별수가 없었기에 그곳을 향했다.
다행히 그리 시끄럽지도 않았고, 메뉴는 다양했고, 자리는 편안했다. 참치를 먹지 못하는 우리라 도미회와 연어회 4점, 굴튀김 1개, 가라아게를 주문했고 기본 메뉴로 구워 먹는 어묵이 나왔다. 먼저 나온 맥주를 한입 마시고 어묵을 먼저 구워 먹었다. 프랜차이즈 점은 마땅히 갈 곳 없는 이들에게 적당한 자리를 선사한다는 장점이 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이런저런 대화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내가 제일 걱정했던 부분이 이런 부분이었다. 어떤 대화를 나눠야 할지 고민하고, 또 애써 꺼낸 주제가 빠르게 소진되어 우리 사이에 언어가 흐르지 못할 때 그 적막을 어찌하지 못해 고민하고 진땀 뺐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끔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고 있는 우리 모습을 보면서 시누이와 내가 비로소 가족이 되었구나 생각했다. 마음이 통하고 나면 그 둘의 관계는 어떠한 노력 없이도 한결 자연스러워지는 것임을 깨달았다. 항상 여럿이는 대화를 잘 하지만 단 둘은 어려웠던 내가 처음으로 관계를 어떻게 일궈나가야 함을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그저 내 벽을 좀 허물고 진심을 다해 다가가면 됐다.
그 이후부터는 마음을 터 놓은 채 편안히 시간을 즐겼다. 맥주를 한 모금 한 모금 마시며 병에 그려진 그러데이션에 웃었고, 굴을 먹지 못하는 우리지만 한 입씩 먹은 녹진한 굴튀김에 서로 하이파이브를 쳤고, 나중에 나온 가라아게를 먹은 뒤에는 엉덩이를 들썩이며 얼싸안기까지 했다. 음식 맛으로는 징기즈칸이 훨씬 뛰어났을지 모르겠으나 편안한 장소, 분위기, 그리고 비로소 열린 우리의 마음이 그 순간을 너무나 행복하게 장식했다.
간단하게 2차를 즐기고 호텔로 향했다. 인파가 많을 때는 팔짱을 끼고, 인파가 적을 때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쉴 새 없이 서로의 감상을 나눴다. 사진을 찍기도 했다. 그때의 순간이 얼마나 즐거웠던지 사진들이 모두 흔들려있었지만 그 기억은 뭉근하게 온몸에 퍼져있다. 작은 간식거리를 사서 숙소에 돌아왔다. 드디어 우리가 제일 좋아하는 시간이다. 각자 씻고 잠옷으로 갈아입은 채 좋아하는 음악을 틀고 대화하며 음식을 먹는 시간을 우리는 제일 좋아한다.
돌이켜 생각하면 이렇게 편안한 상태를 좋아하는 우리였기에 처음 만났을 때부터 마음을 서로 놓기까지 친해질 수 없었던 것인지 알 것도 같다. 또 시누이는 작년이 되어서야 나와 남편 옆에서 편해질 수 있었다고 한다. 그 시기는 참 무섭게도 내가 남편을 진심을 다해 사랑하게 된 순간과 맞물린다. 연애의 감정에서 벗어나 진심으로 남편을 가족으로 받아들이고 사랑을 했기 때문에 시누이도 나를 그제야 가족으로 받아들인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진심은 이렇게나 무섭다.
삿포로 타워는 11시를 보여주고, 허공에는 차가운 공기와 우리가 좋아하는 힙합노래가 맴돌고, 의자에 앉아 라면과 아이스크림과 과자를 먹으며 도란도란 잔잔한 이야기들을 했다. 그리고 12시 30분경 시누이가 울기 시작했다. 작년에 시누이는 오래 사귄 남자친구와 헤어졌는데 아직도 마음이 갈무리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당황했지만 기뻤고 내 눈에는 슬픔인지 기쁨인지 모를 눈물이 흘러나왔다. 시누이가 아파하는 모습에 슬펐고, 부모님과 친구와 친오빠에게 털어놓지 못할 감정들이 흘러나오는 모습을 보면서 많이 기뻤다. 가족이면서 친구이고, 친구이면서 가족인 우리이기 때문에 가장 깊은 이야기까지 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 얼마나 감사하고 축복받은 관계란 말인가. 더더욱 친구가 없는 내게 친구이자 가족이라니. 부푼 마음으로 1시 반까지 대화를 나누다 우리는 하루를 마무리했다.
다음날 익숙한 원초의 모습을 마주하며 씻고 단장을 하고 전날 코를 골았니 하며 대화를 나누었다. 말할 수 없이 편안하고 평안했다. 준비를 마치고 커피를 한 잔 마시기로 했다. 이름은 러브에스프레소로 라테가 맛있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구글 맵에 의존해서 이리저리 길을 걸어가는데 시누이가 말했다. "어? 우리 한 바퀴 돌아온 것 같은데? 그냥 이 블록 사이로 직진하면 되는 거였잖아." 예전 같았으면 완벽하게 길을 인도해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바로 풀이 죽었을 나였지만, 이미 우리는 마음을 터놓은 상대가 아닌가. 타격도 없이 시누이와 나는 웃었다. 길 위에서는 삿포로 마라톤이 열리고 있었다. 도로를 통제해 놓은 상태라 횡단보도 앞에서 건너야 할지 말지 기다리고 있는데, 어떤 일본인 아저씨가 내쪽으로 크게 말했다. "지하로 가데스"(어떤 일본어였는지는 모르겠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 눈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언니와 나는 다시 웃으며 지하로 향했다. 여행은 이런 것이다.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말이 되는, 흘려들을 말들이 실상이 되는 그런 것.
카페에 도착해서 라테 한 잔씩을 시키고 등받이 소파에 편안히 몸을 기대 누웠다. 라뗴 한 입을 마시자마자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그렇게 커진 두 눈에 사람들이 써놓은 방명록이 보였다. 방명록을 읽다 보니 회사를 폭파시키자는 의견에 응원하는 댓글이 달려있었고, 다양한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왔다며 글을 남기기도 하고, 우연히 남편의 이름이 할아버지가 되어 적혀있기도 했다. 방명록을 한참 구경하다가 우리도 글을 남겼다. '시누이와 단 둘이 여행 왔습니다. 26.10.03.', '새언니와 단 둘이 첫 여행을 왔어요. 조카 낳아주세요. 26.10.03.' 우리 흔적 하나 남길 수 없는 이방의 땅에, 스쳐 지나가야 할 이방인의 위치에서 남기는 흔적이라니, 그리고 우리의 특별한 관계에서 오는 이야기를 남길 수 있다니 기분이 짜릿했다. 나중에 다시 삿포로에 오게 된다면 이 방명록 밑에 또다시 글을 한 절 남기기 위해 이 카페를 찾아오겠구나 생각했다. 우리만의 이야기와 장소를 쌓아가는 것 또한 여행의 기쁨이다.
그리고 우리는 지하철을 타고 한 역에서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