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서리가 내리려는지 바쁘다

by김규남


어떤 날

다들
바쁘다.


하나라도 더
여물게 하려는 햇살도


지는 꽃 아쉬운
꿀벌도


치장 못 끝낸

이파리도


하나라도 더 거두려는
손길도


쫓아오는
찬바람도


때를 놓치는
나도……


하늘

저 높기만 한데




곧 서리가 내리려는지

일찍 심은 들깨가 들기름으로 변신했다.


나와 서로 돕고 사는 최 회장님은 계절을 조금 앞서 일한다. 보름 전, 벌써 들깨를 털어 기름을 짜서는 한 병을 들고 왔다.


동네에서는 이제 들깨 베기가 한창이다. 밭 한쪽에서는 할머니가 아직 깻잎을 따고 있다. 겨울에 먹을 깻잎김치며 장아찌를 담그려는 것이다. 논에는 벼를 베고 난 밑동만 남았고, 얼마 전에는 갓 수확한 고구마 한 상자가 들어왔다. 겨울에 손님이 오면 벽난로에 구워 나눌 생각이다.


고추밭도 막바지다. 빨갛게 익은 고추는 거의 끝났고 요즘은 풋고추를 거두느라 바쁘다. 서리를 맞으면 먹기 어려우니 그전에 따야 한다.


가을걷이가 어느 정도 끝나 나도 올해 처음 약용버섯 산행에 나섰다.


산 아래에는 아직 서리가 보이지 않았는데 깊은 골짜기로 들어가니 벌써 한 차례 다녀간 흔적이 보였다. 계절은 마을보다 산속으로 먼저 들어가고 있었다.


풀숲 사이로 옅은 보라색 투구꽃이 보인다. 농장에도 피어 있지만 산 중턱에서 만난 꽃은 또 달라 보였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사진에 담았다.


조금 더 오르니 해마다 지나가는 옥광 밤나무가 있다. 알이 굵고 맛도 좋아 혹시 떨어져 남은 밤이 있을까 싶어 이삭 줍듯 나무 아래를 살폈다.

내가 늦었다.

멧돼지가 먼저 식사를 마치고 간 흔적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몇 알 주워보려던 생각을 접고 다시 산을 올랐다.


한참을 오르다 나무에 핀 상황버섯을 발견했다.

황칠상황이라 더 반가웠다.


봄부터 여름을 지나 가을까지 농장에서 일했으니 이 정도는 받아도 되지 않을까. 겨울에 몸이나 잘 챙기라며 산이 건네는 선물이라고 생각했다.


내려오는 길에는 소나무상황도 조금 얻었다. 운동도 했고 얻은 것도 있으니 이제 쉬어도 되겠다 싶었다.

그런데 농장에 돌아오니 또 할 일이 보인다.


왕고들빼기와 큰엉겅퀴 씨앗을 거두었다. 봄에 다시 뿌릴 것이다. 내일은 엉겅퀴 잎도 따야 한다. 괜찮은 잎을 골라 그늘에 말려두면 겨울에 달여 먹을 수 있고, 넉넉하면 지인들에게도 나눠준다.


서리 전에 거두지 못한 해에도 꼭 찾는 사람이 있다.


올해는 내가 게으른 농부라는 것을 들켜서는 안 된다.


산에서 내려왔는데도 마음은 자꾸 밭으로 간다.


깻잎도, 풋고추도, 씨앗도, 엉겅퀴 잎도 아직 할 일이 남았다.


산 깊은 곳에는 벌써 서리가 다녀갔으니,

이제 우리 차례다.


(정상부에서 만난 황칠상황)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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