택배 하나를 찾는 동안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by슬로하라


택배를 기다리는 날이면 하루 종일 휴대전화를 붙잡고 전화를 기다렸다. 낯선 번호가 뜨면 급히 숨을 한번 골랐다. 수화기 너머 들려올 슬로베니아어를 가늠해 보며 내뱉을 말을 되뇌었다.


지금도 집으로 오는 택배는 기사님의 전화를 받고 나가 받아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택배사가 대략 몇 시쯤 오는지, 어떤 번호로 전화가 오는지 어느 정도 알게 됐다. 전화를 받으면 짧게나마 슬로베니아어로 대답하는 것도 익숙해졌다.


"Dober dan."

"Tukaj __."

"Sem doma."

"OK, pridem takoj."


네 문장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전화를 기다리는 일 자체가 줄어들었다. 내가 몰랐던 건지, 지난 1년 사이에 생긴 건지, 어느새 동네에는 무인택배함(Paketomat)이 여럿 생겨 있었다. 온라인 주문 시에도 무인택배함이나 픽업포인트로 받을 수 있게 됐다.


그러던 얼마 전이었다.

온라인으로 주문한 물건을 찾으러 무인택배함 앞에 섰다. 안내받은 번호를 눌렀다. 분명 '철컥' 하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열린 문이 보이지 않았다. 혹시 내가 못 찾았나 싶어 하나씩 눌러 보고 두드려 봤다. 그대로였다. 화면에는 고객센터로 문의하라는 안내만 떴다. 번호를 다시 입력했더니 이미 사용된 번호라는 문구가 나타났다. 진땀이 바짝 나며 어찌할지 몰라 택배함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고 있는데 옆 가게에서 한 남자분이 나왔다.

"도와줄까요?"


그는 선뜻 내 대신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어 주었다. 통화를 마친 뒤 열릴 것 같으니 기다려 보란 말과 함께 가게로 돌아갔다. 무슨 연유인지 다시 번호를 눌러 봤지만 이번에도 열리지 않았다.


잠시 뒤에는 갓난아이를 안은 젊은 여성이 택배를 찾으러 왔다. 내 사정을 듣더니 이번에는 본인이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한참을 통화하더니 결국 해당 택배사 기사에게까지 연락을 해 주고는 아이를 안은 채 자리를 떠났다.


조금 뒤 기사님이 도착했다. 나는 번역기를 켰다. 휴대폰 화면을 번갈아 보며 상황을 설명했고, 기사님은 회사와 몇 차례 통화를 했다. 화면을 확인하고, 번호를 다시 눌러 보고, 또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20여 분이 지났다.


한 번 더 번호를 다시 눌러 보라는 기사님의 말에 번호를 입력했다.

딸깍.

문이 열렸다. 내가 어디인지 두리번거리는 사이, 기사님이 가장 윗칸에서 택배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다.


그날 땡볕 아래에서 택배 하나를 찾는 동안 세 사람이 내 앞에 다녀갔다.


마침내 택배를 받아 들었다.


"Hvala za pomoč."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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