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 학교에 들어섰을 때, 나는 솔직히 도망치고 싶었다.
면접을 보러 간 사람이 무슨 배짱으로 그런 생각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다. 그때의 나는 절박했다. 중국 생활을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임용시험 기회도 다시 한 번 놓친 상태였다. 당장 1년 동안 일할 학교를 찾아야 했다. 원서를 쓰고, 연락을 기다리고, 떨어지고, 다시 쓰는 일이 겨울의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도 막상 학교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내 마음은 아주 비겁한 방향으로 먼저 움직였다.
‘그냥 못 본 척하고 나갈까.’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거창하지 않았다.
냄새 때문이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나는 다시 갈 곳을 찾는 사람이 되었다. 기간제 교사 자리는 생각보다 쉽게 나지 않았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많고, 할 수 있는 사람도 많았다. 반면 자리는 늘 부족했다. 중국 국제학교에서 1년 동안 일했다는 이력은 분명 특별했지만, 특별하다는 말이 항상 유리하다는 뜻은 아니었다. 어떤 학교에서는 흥미롭게 볼 수도 있었지만, 어떤 학교에서는 다소 낯선 경력으로 보일 수도 있었다.
그러던 중 부모님과 인연이 있는 분을 통해 두 학교를 소개받게 되었다. 한 곳은 사립고등학교였고, 다른 한 곳은 시골에 있는 사립 특수학교였다. 중등 음악교사인 나는 당연히 고등학교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야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특수학교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아마 칭다오에서의 1년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곳에서 초등학교 5학년 담임도 했고, 유치원 아이들과 장구도 쳤으며, 중학생들에게 음악을 가르쳤다. 내가 가진 자격증과 실제로 마주한 아이들 사이에는 생각보다 큰 간격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간격이 무서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안에서 내가 자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정해진 길에서만 교사가 되는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더 많이 배웠다.
그 특수학교에는 대학 선배가 기간제 교사로 일하고 있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이것저것 물었다.
“선배, 학교 어때요?”
전화기 너머 선배는 잠시 웃더니 말했다.
“처음엔 좀 낯설 거야. 그런데 애들이 참 순해. 착하고. 지내다 보면 마음이 가는 학교야.”
그 말이 오래 남았다. 낯설지만 마음이 가는 학교. 처음 듣는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때의 내게는 조금 다르게 들렸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해보지 못할 경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고등학교가 아닌 특수학교에 지원서를 냈다.
일주일쯤 지났을까.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대구에서 학교까지는 차로 40분 정도 걸렸다. 면접 당일, 나는 정장을 입고 차에 올랐다. 고속도로를 지나고, 자동차전용도로를 지나고, 다시 꼬불꼬불한 국도로 들어섰다. 창밖에는 겨울 논이 펼쳐져 있었다. 볏짚은 낮게 누워 있었고, 마른 들판 위로 찬바람이 지나갔다.
그 길 끝에 노란 건물이 보였다.
학교였다.
도시의 학교처럼 크고 반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겨울 들판 한가운데 조용히 앉아 있는 건물 같았다. 멀리서 보면 조금은 외로워 보였고, 가까이 다가가면 이상하게 따뜻해 보였다. 나는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중앙현관을 찾았다. 학교는 고요했다. 아이들의 고함소리도, 복도의 발소리도 크게 들리지 않았다. 그 고요함 때문에 오히려 내 구두 소리가 크게 울렸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학교 구조는 독특했다. 교무실이 건물 한가운데 있었다. 사방이 통유리로 되어 있어 선생님들이 일하는 모습이 밖에서도 훤히 보였다. 교실들은 그 교무실을 둘러싸듯 배치되어 있었다. 마치 학교의 심장이 중앙에 있고, 그 주변으로 아이들의 하루가 둥글게 이어지는 구조였다.
‘특이하네.’
그렇게 생각하며 한 걸음 더 안으로 들어갔을 때였다.
냄새가 났다.
처음에는 바깥에서 들어온 냄새인 줄 알았다. 시골 학교였으니 근처 밭에서 나는 거름 냄새겠거니 했다. 그런데 몇 걸음을 더 걸으니 알 수 있었다. 그것은 밖에서 스쳐 들어온 냄새가 아니었다. 학교 안에 오래 머물러 있는 공기였다. 벽과 복도와 교실 사이에 스며든 냄새였다.
솔직히 말하면 고약했다.
나는 순간 멈칫했다. 아직 면접도 보기 전이었다. 합격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벌써 걱정이 앞섰다.
‘내가 여기에서 1년을 지낼 수 있을까?’
곧바로 또 다른 생각이 따라왔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여기에서 일할 자격이 있을까?’
그 두 생각이 복도 한가운데서 서로 부딪혔다. 돌아가고 싶은 마음과 그래도 들어가야 한다는 마음. 소개받아 온 자리였고, 선배에게 이미 이것저것 물어본 뒤였다. 여기서 말없이 돌아가버리면 아무래도 너무 부끄러운 일이었다.
나는 숨을 조금 얕게 쉬며 면접장으로 들어갔다.
면접장에는 교장선생님으로 보이는 분과 몇몇 선생님들이 앉아 계셨다. 이상하게도 면접은 딱딱하지 않았다. 나를 날카롭게 평가한다기보다, 이 학교와 내가 서로 맞을 수 있는지를 함께 살펴보는 자리 같았다.
“중국 국제학교에서 근무하셨다고요?”
“네. 1년 동안 있었습니다.”
“거기서는 어떤 수업을 하셨어요?”
“유치원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음악수업을 했고, 초등학교 5학년 담임도 맡았습니다.”
한 선생님이 눈을 조금 크게 뜨셨다.
“중등 음악교사인데 초등 담임도 하셨어요?”
“네. 저도 처음엔 많이 당황했습니다.”
그 말에 면접장에 작은 웃음이 돌았다. 나도 따라 웃었다. 중국에서 겪은 일들은 한국에 돌아오니 이상한 무용담처럼 들렸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는데, 지나고 나니 내가 가진 몇 안 되는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특수학교는 처음이시죠?”
“네. 솔직히 잘 모릅니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덧붙였다.
“그래서 배워야 할 게 많을 것 같습니다. 그래도 음악으로 아이들을 만나는 일은 자신 있습니다.”
면접용으로 꾸며낸 말은 아니었다. 특수교육에 대해 나는 정말 아는 것이 많지 않았다. 장애학생을 어떻게 만나야 하는지도, 수업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야 하는지도 막막했다. 다만 하나는 알고 있었다. 낯선 자리에서도 사람을 만나고, 소리를 만들고, 조금씩 가까워지는 일은 음악이 잘하는 일이라는 것.
면접은 생각보다 편안하게 끝났다. 선생님들의 말에는 아이들을 아끼는 마음이 배어 있었다. 오래 끓인 국물처럼 요란하지 않지만 깊은 온도가 있었다. 면접장에 들어오기 전 나를 움찔하게 했던 냄새는 여전히 학교 안에 남아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처음만큼 나를 밀어내지는 않았다.
며칠 뒤 합격 연락이 왔다.
기뻤다. 다시 갈 곳이 생겼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놓였다. 사람은 참 단순해서, 합격이라는 말 한마디를 듣고 나니 면접 날의 냄새 같은 것은 잠시 잊혔다. 나는 이제 또 다른 학교로 가게 되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겨울의 끝자락에, 노란 학교 하나가 내 앞에 놓였다.
첫 출근 날, 그 냄새는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현관문을 여는 순간 다시 느껴졌다. 이번에는 면접 때처럼 잠깐 들렀다 나가는 사람이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서 일해야 했다. 이 공기 안에서 수업하고, 웃고, 밥을 먹고, 회의를 해야 했다.
며칠이 지나 동료 선생님에게 그 냄새의 이유를 듣게 되었다.
“처음엔 좀 힘들죠?”
그 선생님은 내 표정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네. 솔직히 조금 낯설긴 합니다.”
“몇몇 학생들이 침을 많이 흘려요. 치아 상태가 좋지 않은 학생들도 있고, 양치가 꼼꼼하게 어려운 학생들도 있거든요. 입안에 음식물이 남아 있기도 하고요. 그래서 학교에 그런 냄새가 배어 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냄새는 그대로였는데, 그 냄새의 의미가 바뀌었다. 내가 불편하다고 느낀 것은 누군가의 몸이 겪는 어려움이었고, 누군가가 매일 돌보고 닦고 기다려야 하는 삶의 흔적이었다. 그제야 복도의 공기가 다르게 느껴졌다. 학교 특유의 냄새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이 학교가 품고 있는 아이들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다고 갑자기 냄새가 향기로워진 것은 아니다. 그런 식으로 말하면 거짓말이다. 여전히 낯설었고, 어떤 날은 힘들었다. 하지만 더 이상 그것을 함부로 싫어할 수는 없었다. 냄새 뒤에 얼굴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름이 생겼고, 사정이 생겼고, 내가 만나야 할 학생들이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학생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당연히 아이들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교실에 들어서는 순간 또 한 번 놀랐다. 학생들 중에는 일반적인 학령기를 훌쩍 넘긴 분들이 꽤 있었다. 제때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 과정을 밟지 못한 어르신들도 계셨고, 외모만 보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아 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이십대 중반의 젊은 음악교사였던 나는 그분들 앞에서 잠시 어색하게 서 있었다.
그때 한 학생이 내게 인사했다.
“선생님, 안녕하세요.”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이는 분이었다.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너무나 공손하게 나를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나는 당황해서 허리를 더 깊이 숙였다.
“네, 안녕하세요.”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이가 많고 적다는 기준이 이 학교에서는 조금 달라지는 것 같았다. 교실 안에는 각자의 자리가 있었다. 나는 교사였고, 그분들은 학생이었다. 하지만 그 관계가 위아래로 세워진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서로를 조심스럽게 인정하는 관계에 가까웠다.
그날 이후 학교는 조금씩 내게 자기 모습을 보여주었다.
복도에서는 천천히 걷는 학생들이 있었고, 교실에서는 한 글자를 읽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하는 순간들이 있었다. 어떤 학생은 내 손을 꼭 잡고 놓지 않았고, 어떤 학생은 수업 내내 말없이 나를 바라보다가 마지막에 아주 작은 목소리로 “또 해요?”라고 물었다. 음악수업에서는 박자를 맞추는 일보다 박자를 기다리는 일이 더 중요할 때가 많았다.
나는 자주 당황했다. 많이 서툴렀고, 속으로 쩔쩔맸다. 하지만 도망가고 싶다는 생각은 처음보다 줄어들었다. 학교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던 냄새도 어느 순간부터는 그저 그 학교의 공기가 되었다. 아침마다 마주치는 얼굴들이 그 냄새 위에 하나씩 포개졌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냄새가 먼저 들어왔지만, 시간이 지나자 사람이 먼저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이 그 학교가 나에게 건넨 첫 수업이었다.
노란 건물, 통유리 교무실, 조용한 복도, 그리고 나보다 나이가 많은 학생이 내게 건넨 첫 인사.
나는 그곳에서 다시 교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중국에서 돌아온 뒤 잠시 길을 잃은 줄 알았던 나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학교에서 또 다른 길을 만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이어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