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아침은 원래 조금 느리게 시작하는 날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랬다. 교회에 가고, 사람들을 만나고, 익숙한 찬송가의 흐름 속에서 한 주를 다시 정리하는 시간.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내 일요일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부설 방송통신고 수업 때문이었다.
방송통신고는 조금 특별한 학교다.
평일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2주에 한 번씩 일요일에 학교로 모여 직접 수업을 듣는다. 학생들도 특별하다. 교복을 입은 청소년도 있지만, 대부분은 교복 대신 삶의 시간을 입고 온 분들이다. 만학도, 혹은 학업을 중단했다가 다시 교실로 돌아온 사람들.
그리고 나는 그곳의 유일한 음악 교사였다.
선택권은 없었다. 무조건 가야 했다.
처음 몇 번은 솔직히 썩 내키지 않았다.
일요일이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더 큰 이유는 ‘어떻게 수업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막막함 때문이었다.
첫 수업 날, 나는 그 막막함이 현실이 되는 순간을 맞았다.
교실 문을 열자마자 익숙하지 않은 풍경이 펼쳐졌다.
바카라상 위에는 교과서 대신 비닐봉지가 놓여 있었고, 그 안에서는 옥수수, 자두, 감자 같은 것들이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선생님, 이거 우리 밭에서 난 건데 한 번 드셔보이소.”
그 말과 함께 교실은 금세 작은 장터처럼 변했다.
누군가는 자두를 씻어오고, 누군가는 막걸리를 꺼냈다. 수업 종이 울렸는데도 젓가락은 멈추지 않았다.
나는 잠시 칠판 앞에 서 있다가, 결국 웃음을 터뜨렸다.
‘아, 여긴 교과서보다 삶이 먼저구나.’
그날 이후로 나는 수업을 조금 바꿨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살릴 건 살리기로 했다.
음악 이론은 과감히 줄이고, 대신 ‘노래’를 중심으로 수업을 구성했다.
그리고 수행평가도 바꿨다.
그 이름하여, 트로트 발표하기.
단순히 부르는 것이 아니라, 왜 이 노래를 선택했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남는지를 함께 이야기하게 했다. 노래를 ‘잘’ 부르는 것보다, ‘왜’ 부르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기로 했다. 그날도 평소처럼 수업이 이어졌다.
학생 한 분 한 분 앞으로 나와 노래를 부르고, 짧게 이야기를 덧붙였다. 어떤 분은 젊은 시절 좋아하던 가수를 이야기했고, 어떤 분은 이 노래를 들으면 힘이 난다고 말했다.
그리고 마지막 순서쯤, 늘 술 냄새를 살짝 풍기며 들어오시던 한 할머님이 앞으로 나오셨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오늘은 또 어떤 노래를 부르실까.’
할머님이 고른 곡은 노사연의 ‘바램’이었다.
노래는… 솔직히 말하면, 썩 잘 부르신 편은 아니었다. 음정은 자꾸 흔들렸고, 박자도 조금씩 밀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교실이 조용해졌다. 그 이유를 나는 곧 알게 되었다.
노래가 끝나고, 내가 평소처럼 물었다.
“왜 이 노래를 선택하셨어요?”
할머님은 잠깐 웃으시더니, 천천히 말씀을 꺼내셨다.
“이거… 우리 영감이 제일 좋아하던 노래였어요.”
교실 안 공기가 조금 달라졌다.
“젊을 때는 돈은 잘 벌었는데, 사람이 좀… 많이 놀았어요. 내가 속을 많이 썩였지.”
할머님은 웃으면서 말씀하셨지만, 그 웃음은 어딘가 오래된 것이었다.
“근데 나이 들고 나서는… 맨날 나한테 미안하다고 했어요. 이 노래 들으면서.”
잠시 말을 멈추셨다가, 다시 이어가셨다.
“막걸리 한 잔 마시면, 나 앉혀놓고 이거 불러줬어요. 꼭.”
누군가의 의자가 살짝 삐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
“근데… 얼마 안 돼서 암 걸려가지고 갔어.”
그 말은 너무 담담해서, 오히려 더 크게 남았다.
할머님은 잠깐 고개를 숙였다가, 다시 웃으며 말했다.
“살아있을 땐 그렇게 미웠던 영감인데… 이 노래만 부르면, 꼭 다시 오는 것 같아.”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칠판 앞에 서 있다는 걸 잠시 잊었다.
여긴 수업이 아니라, 누군가의 삶 한 조각이 펼쳐지는 자리였다.
그날 이후로 나는 수업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지식을 전달하는 것만이 수업이라고 믿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날, 나는 알게 되었다. 수업은 설명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는 순간에 완성된다는 것을.
그날 우리는 음악을 배운 것이 아니었다.
우리는 한 사람의 시간을 들었고, 한 사람의 감정을 함께 나누었다.
수업이 끝나고 교실을 나서는데, 할머님이 나를 부르셨다.
“선생님.”
“네, 어르신.”
“오늘 노래… 괜찮았지요?”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오늘 수업 중에 제일 좋았습니다.”
그건 거짓말이 아니었다.
지금도 가끔 일요일이 오면 그 교실이 생각난다.
막걸리 냄새와 상추 향이 섞이던 교실, 그리고 누군가의 인생이 노래가 되어 흘러나오던 시간.
그날 나는 음악을 가르친 것이 아니라,
음악이 사람을 어떻게 이어주는지 배웠다.
그리고 그 수업은, 지금까지도 끝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