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동아리, 아이들의 마음을 두드리다

처음 발령을 받았던 날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교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던 그 순간의 공기, 낯선 얼굴들, 그리고 막연한 기대와 두려움이 뒤섞여 있던 마음까지. 교사가 된다는 건 누군가의 삶에 작은 흔적이라도 남기는 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 시작은 생각보다 훨씬 조용하고 낯설었다.


그 설렘은 오래가지 않았다. 학생부장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불러 세우며 말했다. “하 선생, 교실에 잘 못 들어오는 애들이 있어요. 수업은 거의 포기 상태인데… 혹시 음악으로 한번 해보겠어요?” 부탁처럼 들렸지만 사실은 이미 정해진 역할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문제행동이 잦은 학생들을 중심으로 구성된 특별 동아리를 맡게 되었고, 아이들에게 조금이나마 다른 이름을 선물해주고 싶어 ‘드림동아리’라는 이름을 붙였다.


처음 만난 날의 장면은 지금도 선명하다. 나는 난타북과 스틱을 들고 있었고, 아이들은 담배 냄새가 밴 옷과 스마트폰, 그리고 아무 기대도 없는 눈빛을 들고 있었다. 한 아이가 비웃듯 말했다. “선생님, 이거 뭐예요? 유치원 놀이예요?” 다른 아이들은 욕설을 섞어가며 웃었고, 그 순간 나는 깨달았다. 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수업’이 아니라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나는 악기를 내려놓고 이렇게 말했다. “그래, 마음껏 두드려도 좋아. 대신, 네 마음도 같이 실어봐.” 그날 우리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았다. 대신 서로를 조금 바라보는 시간을 가졌다. 이후 두 달 동안 나는 가르치기보다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누가 먼저 오는지, 누가 끝까지 남는지, 어떤 소리에 반응하는지, 어떤 아이가 항상 벽을 보고 앉는지를 조용히 기록했다.


조금씩 변화를 시도하기 시작했다. 아침마다 아이들에게 난타북으로 그날의 기분을 표현해보게 했다. 말로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빠르고 거칠게 두드리는 아이도 있었고, 아예 손을 올리지 않는 아이도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늘 말이 없던 한 아이가 북을 빠르게 두드리다가 갑자기 멈추며 말했다. “이거… 내가 때리고 싶은 사람이 있어서 그런 건데요.” 나는 그 아이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답했다. “그럼 오늘은 안 쳐도 괜찮아. 대신 여기 있어도 돼.” 그날 이후 아이들은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이곳에서는 말하지 않아도 되고, 대신 소리로 표현해도 괜찮다는 것을.


생활지도는 예상과 다른 방식으로 풀어가야 했다. 늘 사라지고 부러지던 스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틱 입양제’를 만들었다. 각자 스틱에 이름을 붙이고 스스로 관리하도록 했다. 장난처럼 시작된 일이었지만, 한 아이는 자기 스틱을 잃어버리고 나서 하루 종일 찾다가 말했다. “이건 제 거라서요.” 그 말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바카라임으로 들렸다. 그 이후로 아이들은 스틱뿐 아니라 연습실 정리까지 스스로 챙기기 시작했다.


욕설 문제 역시 직접적인 통제로는 해결되지 않았다. 그래서 “욕 대신 리듬으로 표현하자”고 제안했다. 화가 날 때는 북을 두드리게 했다. 처음에는 웃음으로 시작했지만, 점점 아이들은 감정을 안전하게 풀어내는 방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아이가 말했다. “이제는 누굴 때리고 싶은 게 아니라, 그냥 여기 와서 치고 싶어요.” 그 말은 내가 가장 오래 기억하는 문장 중 하나가 되었다.


아이들과의 변화는 가정으로도 이어졌다. 한 달에 한 번, 아이들의 연습 모습을 짧은 영상으로 만들어 부모님께 보내드렸다. 아이들의 짧은 말도 함께 담았다. “엄마, 나 요즘 이거 하고 있어요.” 며칠 뒤 한 학부모가 전화를 걸어왔다. “선생님… 애가 저한테 뭔가를 보내준 건 처음이에요.” 그 말은 나에게도 큰 울림으로 남았다. 아이를 바꾼 건 특별한 교육법이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작은 통로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학기 말, 우리는 작은 발표회를 열었다. 완벽하지 않은 리듬과 어색한 동작이었지만, 그 무대는 그 어느 공연보다 진짜 같았다. 연주가 끝난 뒤 한 아이가 다가와 말했다. “선생님, 나… 이거 하면서 좀 괜찮은 사람 같았어요.” 그 말 한마디로 충분했다. 그 아이는 그날, 누군가에게 인정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인정하게 된 것이다.


지금도 나는 그 아이들을 떠올린다. 각자의 자리에서 살아가며 여전히 삶의 리듬을 맞춰가고 있을 아이들. 음악실 한켠에 걸려 있는 난타 북채 한 쌍을 바라볼 때마다 생각한다. 우리는 아이들을 바꾸는 사람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기 소리를 찾을 수 있도록 조용히 자리를 내어주는 사람인지도 모른다고. 그리고 그 소리는 생각보다 오래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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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끼 많은 모습을 보면 애들은 애들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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