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난히 추운 날이었다.
아침 공기가 아니라, 공기 자체가 얼어붙어 있는 느낌이었다. 체감온도는 분명 영하 10도 아래였을 것이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김이 길게 퍼졌고, 손끝은 금세 감각을 잃어갔다.
나는 중등 임용시험 2차 면접시험 감독관으로 차출되어 있었다.
아침 7시까지 시험장에 도착해야 했고, 그날의 나는 솔직히 불만이 가득했다. 이렇게 추운 날에, 이렇게 이른 시간에, 게다가 실내 시험 진행요원도 아닌 ‘복도 감독관’이라니. 하루 종일 추운 복도에 서서 수험생을 안내해야 한다는 생각에 몸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 있었다.
내가 맡은 일은 단순했다.
대기실에 있는 수험생을 차례에 맞게 복도로 불러 준비시키고, 면접 고사장으로 입실시키는 것. 그리고 면접이 끝난 수험생을 지정된 경로로 안내해 귀가시키는 일. 누구에게나 보이는 자리였지만, 누구에게도 기억되지 않는 역할이었다.
그날의 나는 그저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첫 번째 수험생이 들어가기 전, 나는 굳은 목을 풀며 복도 끝 창가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그때, 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학교 담장 바깥, 겨울 바람을 정면으로 맞고 서 있는 한 할머니가 있었다.
두 손을 모은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기도하고 있었다.
나는 한눈에 알 수 있었다.
그분이 왜 거기에 서 있는지.
이른 아침, 이 추운 날씨에, 장갑도 끼지 않은 손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그 모습.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 그 안에는 ‘합격’이라는 두 글자가 아니라, 누군가를 향한 절박한 마음이 담겨 있었다.
나는 한동안 창가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 부끄러워졌다.
나는 추워서 불평하고 있었고,
체감 온도 영하 10도를 밑도는 날씨에 그분은 추운 줄도 모른 채 기다리고 있었다.
면접시험은 순번을 당일에 뽑는다.
그래서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 수험생은 휴대폰을 제출하고 들어오기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는 사람은 그저 ‘막연한 시간’을 견뎌야 한다.
그날 시험은 생각보다 길어졌다.
수험생이 많았고, 진행은 조금씩 밀렸다. 시계가 오후 다섯 시를 넘어갈 무렵, 겨울의 해는 이미 저물 준비를 하고 있었다. 창밖은 어느새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고, 건물 안의 형광등 불빛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나도 슬슬 정리를 하고 밖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
긴 하루였다. 발은 얼얼했고, 몸은 무거웠다.
그런데 문득, 아침에 봤던 그 장면이 떠올랐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다시 창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나는,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그분을 다시 보게 되었다.
아침과 똑같은 자리였다.
아마 중간에 식사는 하셨을지도 모른다. 잠깐 자리를 비우셨을 수도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긴 시간 동안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건 단순한 기다림이 아니었다. 그건 믿음에 가까운 시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였다.
시험장 출입문 쪽에서 한 명의 수험생이 나왔다.
도시락 가방을 어깨에 멘 채, 조심스럽게 걸어나오던 한 여성 수험생.
그리고 그 수험생은 곧장 시선을 밖으로 돌렸다.
다음 순간, 그녀는 뛰기 시작했다.
그리고 담장 앞에 서 있던 그 할머니에게로 달려갔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끌어안았다.
아주 세게, 오래도록.
나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몇몇 단어는 분명하게 귀에 들어왔다.
“엄마, 많이 추웠지?”
“우리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내가 사줄게.”
그 말은 이상하게도, 내 마음 깊은 곳까지 내려왔다.
그날 이후로 나는 이 일을 조금 다르게 바라보게 되었다.
나는 시험의 결과를 결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평가를 하는 사람도 아니다. 그저 진행을 돕는 감독관일 뿐이다.
하지만 그 하루를 겪고 나서,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 시험은 누군가에게 단순한 ‘기회’가 아니라,
한 사람의 시간과, 한 가족의 기다림이 함께 걸려 있는 자리라는 것.
그래서 이 일은 반드시 공정해야 한다.
누구에게나 같은 기준으로, 같은 온도로, 같은 무게로 다루어져야 한다.
그 겨울날, 모든 것이 얼어붙어 있던 그 아침에
장갑도 끼지 못한 채 기도하던 한 어머니를 떠올리면, 나는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날의 나는 단지 감독관이었지만,
그 장면을 본 이후로는 조금 다른 마음으로 그 자리에 서게 되었다.
누군가의 간절함이 머무는 곳에서는,
작은 역할조차 가볍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끔, 그날의 풍경이 떠오른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따뜻하게 이어지던 두 사람의 포옹.
그 겨울의 끝에서, 가장 따뜻했던 순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