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치는 삶, 다시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나는 사범대학 출신이 아니다. 음악대학에서 악기를 전공하다 교직이수를 했고, 임용시험을 거쳐 교사가 되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 선택의 중심에는 ‘안정적인 직업’이라는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현실적인 판단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오래도록 마음 한편을 짓누르는 양심의 질문으로 남았다. 나는 처음부터 ‘가르치고 싶어서’ 교사가 된 것일까. 그 질문은 초임교사가 된 이후에도 쉽게 나를 놓아주지 않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나는 적어도 학생들과 친밀한 교사가 되고 싶다고 스스로 다짐했다. 잘 가르치는 교사, 성적을 올리는 교사 이전에, 아이들에게 말을 걸 수 있는 어른이 되고 싶었다. 첫 발령지는 남자고등학교였다. 동생 같은 아이들과 오케스트라를 꾸리며 악기를 들고 웃고 떠들던 시간들은 지금도 선명하다. 그 시절의 학교는 분주했지만 따뜻했고, 교사라는 직업은 내게 설렘에 가까운 감정이었다.


일요일이면 부설 방송통신고등학교 수업의 일환으로 소년교도소에 나가기도 했다. 운동장에서 수형자 아이들과 축구를 하고, 교도소 한켠에서 함께 노래를 불렀다. 그곳에서 나는 교사라는 직업이 지식을 전달하는 일을 넘어, 인간의 마음을 만지는 일일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어떤 아이는 노래를 부르다 울었고, 나는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날 나는 교사는 성직이란 말이 과장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처음으로 했다. 그 시절의 나는, 교사라는 직업을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이었다. 아이들과 함께 웃고, 음악을 만들며, 관계 속에서 하루를 채워갔다.

그러나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 학교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날카로운 민원은 일상이 되었고, 학생들은 교사에게 큰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나 역시 점점 방어적인 교사가 되어 가고 있다. 웃으며 먼저 다가가기보다, 오해받지 않기 위해 거리를 재는 내가 있다. 아이들에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혹은 나 자신이 상처받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법부터 배운 셈이다.

특히 지난 몇 년간 겪은 두 아이의 죽음은 내 교사 인생에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다. 바로 앞에서 수업을 듣던 아이, 내가 지도하던 동아리의 아이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그때 왜 말 한 번 더 걸어주지 못했을까. 조금만 더 따뜻하게 다가갔으면 달라졌을까. 이 질문들은 지금도 내 마음을 갉아먹는다. 상담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었지만,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장면들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 이후로 나는 아이들에게 큰 사랑을 표현하지 않는 교사가 되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어쩌면,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좋지 않았을 때의 상실을 다시 겪지 않기 위한 비겁한 회피일지도 모른다. 학기 초가 되면 아이들의 이름을 외워 불러주고 싶으면서도, 혹시 틀리게 불렀다가 상처를 주지 않을까 망설이게 된다. 아이들에게 말을 거는 일 자체가 부담스러워질 때도 있다. 그러다 문득, 나는 인생의 친구 같은 교사가 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질문 앞에 서게 된다. 그리고 그 질문을 가슴에 묻은 채, 한동안은 다가가지 않는 교사로 지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년 이맘때가 되면 나는 다시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 학생들의 사진 명렬을 출력해 바카라상 위에 올려두고 이름을 외운다. 하루에 한 번은 용기를 내어 먼저 말을 걸어보자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아주 사소한 인사 한마디, 이름을 불러주는 일에서 다시 시작해 보자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이것이 지금을 살아가는 나의 교사로서의 모습이다. 도망치지 않겠다는 결심도, 달라지겠다는 선언도 아닌, 다만 다시 아이들 쪽으로 한 발 내딛는 선택.


나는 아직도 아이들에게 따뜻한 교사가 되고 싶다. 대학 시절 교육학 수업에서 들었던 말이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다. ‘교육의 가능성을 믿고자 하기 때문에, 학교가 있고 교사가 있다.’ 만약 내가 변화를 믿지 않는다면,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부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다소 순진하게, 아직도 교육이 한 아이의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는다. 흔들리면서도, 두려워하면서도, 다시 아이들 쪽으로 한 발 내딛는 이유는 결국 그 믿음 때문이다.

가르치는 삶은 생각보다 무겁다. 하지만 그 무게를 돌아보며 다시 걷는 일 역시 교사의 몫이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그 가능성을 다시 한 번 믿어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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