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덕산이 그렇다

내 이야기

by박성욱

시골에서 장사한다는 건 어떤 것일까.

그동안 많은 손님이 왔다. 고마운 일이다.
그들 눈에 나는 아직 어린 사장이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는 나이 많은 아저씨였는데.

나는 도심에서 일했다. 어린 친구들이 모여 노는 곳이었다.
이십 년 넘게, 매번 새로운 스무 살을 만났다.

나는 해마다 한 살씩 나이를 먹었지만 그곳에는 늘 스무 살이 왔다.
그들에게 오빠, 형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인가 그 소리가 조금 소름 돋게 들렸다.
싫어진 때가 있었다.
마흔하나쯤이었나.
그때부터 스무 살을 갓 넘긴 친구들에게는 삼촌이나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했다.

그게 그때의 나에게는 맞는 말 같았다.

그런데 이곳 덕산에서는 다시 총각이 됐다. 청년이 됐다.
나를 아저씨나 삼촌이라고 부르는 사람이 거의 없다.

누구의 아들.
가게 사장.
덕산식당 사장님.

홍대에서는 덩치라고 불렸다.

나이가 들고 바카라임이 늘어날수록 이름은 조금씩 사라지는 느낌이다.
나를 부르는 말은 많아지는데, 정작 내 이름은 덜 들린다.

서울에서 지금의 매출로 장사했다면 벌써 문을 닫았을지도 모르겠다.
빚더미에 앉아 있었을지도.

하지만 여기는 다르다.
내가 감당하는 인건비부터 생활비, 월세까지 서울에 있을 때의 절반쯤이다.
그래서 지금도 버틸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리고 그 버팀 속에, 내가 원했던 생활이 있다.

더 성공해야 한다는 말.
남들보다 좋은 집에 살아야 한다는 말.
지금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말.

서울에서는 그런 말을 직접 듣지 않아도 자꾸 듣는 기분이었다.
여기서는 그 소리가 조금 멀다.

나는 느리고 무겁게 깔리는 냄새 같은 시간들이 좋다.
마음이 편하다.
마음이 느리다.
생각은 무겁지만 천천히 흐른다.

모든 것이 나와 잘 맞는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도 살면서 배우는 일인 것 같다.
무슨 옷을 입고, 무엇을 먹고, 어떤 집에 사는가.
그런 것만으로 생활이 정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가 매일 오가는 거리.
그곳의 사람들.
하루가 지나가는 속도.

그런 것들이 나와 맞아떨어지는 때가 있다.

스무 살의 나에게는 홍대가 그랬다.
지금은 덕산이 그렇다.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성공과 야망 같은 것에서 조금 멀어지고 싶었다.
내가 붙잡고 싶은 것은 따로 있었다.

가족과 보내는 시간.
가장 가까운 친구인 엄마와 누나.
셋이 함께 지내는 하루.

그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이곳에 왔다.

그런데 조금 가까워지면 우리를 안쓰럽게 여기는 사람도 있다.

“더 성공해야지.”
“돈 많이 벌어서 여기를 벗어나야지.”

그럴 때면 속에서 울화가 치민다.
그래도 웃으며 말한다.

“알아서 할게요. 저는 지금이 좋아요.”

그 사람들은 잘되라는 뜻으로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런데 그 말을 듣고 나면 내가 좋아하는 지금이, 빨리 벗어나야 할 처지처럼 느껴진다.

나는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이곳에 온 게 아닌데.

그들과 나는 바라는 것이 다르다.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무엇을 얻으면 충분한지.
그런 생각 사이에 작지만 쉽게 메워지지 않는 틈이 있다.

생각이 다르다고 관계를 깨고 싶은 것은 아니다.
다만 가까워졌다는 이유로 내 삶의 방향까지 정해주지는 않았으면 한다.
내가 좋다고 말하는 생활을, 한 번쯤은 그대로 믿어줬으면 한다.

처음에는 그 사람들이 밉다가, 나중에는 조금 안쓰러워지기도 했다.
행복해지려면 반드시 더 많이 벌고, 더 좋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서.

물론 나는 그들의 삶을 다 모른다.
그들이 우리의 삶을 다 모르듯이.

그래서 말로 이기고 싶지는 않다.
그저 이렇게도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살아가는 동안 보여주고 싶다.

즐거울 수 있다고.
여기에 머무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원하는 삶일 수 있다고.

엄마와 누나와 나.
셋이 살아가면 된다.

그러려면 돈도 필요하고 힘도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게 아니다.
함께 살아갈 만큼의 돈과 힘.
그리고 함께 쓸 수 있는 시간.

내가 바라는 것은 그 정도다.

지금 우리는 조금씩 그렇게 살고 있다.
가족끼리 행복한 시간을 만들고 있다.

스무 살에는 홍대가 좋았다.
지금은 이곳이 좋다.

나는 지금이 좋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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