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숨구멍, 마음의 틈

류시화의 문장에서 길어 올린 내면의 성찰

by장지연 작가

내 안에는 수없이 많은 빈틈이 있습니다.

거울 속에 보이는 내 모공의 숫자에 신경 쓸 때,

아마 그때 내 영혼에도 수없이 많은 숨구멍이 생겨났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모공을 파우더로 덮고 가리는데 급급하면 그 모공에는 피지가 더 쌓이고

결국 더 커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까요?


깨끗이 세안하고, 온수와 냉수로 달래고,

먹기에도 아까운 갖가지 귀한 재료들을 사용해서 팩을 만들어 붙이거나

좋다는 제품을 사서 관리를 했겠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피부 미인이 되고 싶고,

젊어 보이고 싶은 욕구는 잔주름 한 줄이 생기거나

흰 머리 한 올 보일 때마다 나를 안절부절못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내면에도 모공이 생겨나고,

주름이 지고, 지쳐서 새치가 자라고 있었음을 그동안 간과했던 것 같아요.


겉모습은 나이를 먹음에 따라 성숙해지고 노화합니다.

타인들에게 잘 보이려고 끊임없이 가꾸고 관리를 합니다.

그러나 이 내면의 얼굴은 도무지 잘 보이지가 않네요.


나이를 먹었으니 좀 성숙해졌거니 싶었으나,

여전히 어리석은 얼굴을 마주하게 됩니다.

피지가 잔뜩 낀 구멍들이 잘 관리되지 않은 채

비립종들을 키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짜다 만 여드름 자국처럼 군데군데 아집이 자리 잡고 있고,

오래된 관습에 스스로 갇혀 기미가 끼어 있음을 이제야 인정하게 됩니다.


도대체 내 안의 얼굴은 언제 철이 들고 성숙해지는 걸까요?

좋은 재료가 듬뿍 들어간 팩을 붙이듯,

마음을 채워줄 바카라 한 권을 꺼내어 읽어 봅니다.

어떤 문장에서는 허술한 내공이 투명하게 비쳐 보이고,

어떤 문장에서는 숨은 탐욕이 빼꼼히 반사되어 보입니다.

또 어떤 문장에서는 꼭꼭 숨기고 싶었던

어리석음을 적나라하게 끄집어내 놓기도 합니다.


난 요즘 ‘틈’에 관한 사유에 빠져 있습니다.

틈, 간격, 사이. 그 단어들은 절언의 단어이면서

동시에 희망의 공간이라 생각합니다.


때로는 안에서, 때로는 밖에서 나는 틈을 봅니다.

관계 속에는 더 많은 틈이 있고,

그보다 더 많은 틈이 내 안에 있음을 알고 나니 문득 두려움이 앞섭니다.


나는 외눈박이처럼 일그러진 한쪽만 바라보고

평생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빛이라고 본 것이 진정 빛이었을지.

내가 오른쪽이라 믿었던 것이 나만의 오른쪽은 아니었을지.


나는 색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세상을 잘못 바라보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초록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그저 빨강을, 검정을,

멋대로 초록이라 믿고 살아가고 있는지도……


나는 오늘 한 권의 바카라 앞에 내 안의 모공을 들춰 봅니다.

그리고 영혼에 팩을 하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자판을 두들깁니다.


그동안 어느 한 계절만으로 나무를 바라보고 살지는 않았는지.

어느 한 계절의 타인을 만나

그 사람의 사계절을 함부로 정의하고 살지는 않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