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분실했던 축축한 계절이 나를 저격한다
소나기
등줄기에 열이 올라
얼굴이 화끈거려
심장이 평정을 벗어나 요동친다
겨우 정신을 차려 본다
나의 날씨는 날 수 없다
일기 예보를 보지 않고 하루를 연 지 오래
어쩌다 끔찍하게 파란 하늘에
눈부신 흰 구름이 지나가기도 하지만
대체로 옅은 먼지가
도시에 어울리는 풍경을 칠한다
나의 날씨는 계절도 온도도 없다
갑자기 가짜 호통이 먼 하늘을 향하고
섬광이 내 창을 때린다
소리와 빛이 창문을 두드리니
유리창에 흐린 눈물이 맺힌다
흩어지는 자국에 선이 그어져
등줄기를 괴롭히던 열이 달아나
오래전 분실했던
축축한 계절이 나를 저격한다
틈이 있었지
당신과 나 사이에 그어진 금
그것은 가르기 위한 선이 아니라
한 줄기 빛과
한 방울의 물이 스며들 비밀 통로였다
한바탕 시원하게 땅을 적신다
한참을 바라보다 마른 내가 젖었어
**[행간의 온도]**
6월 어느날 불암산과 수락산이 마주 보는 그 좁은 골짜기 사이로 한바탕 격렬한 소나기가 손님처럼 찾아왔습니다.
예고도 없이 도심을 내리치던 빗줄기는 베란다 유리창을 얼마나 아프게 두드려 대던지요. 거세게 부딪히고 이내 허물어지는 물방울들을 보며, 문득 저 창문이 안간힘을 다해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그 아프게 흩어지던 눈물 자국이 기어이 유리창을 넘어, 가만히 서성이던 제 마음 안쪽까지 흘러들어왔습니다. 창문 안쪽에 서 있던 내가 온통 축축하게 젖어들 만큼 세찬 비였습니다.
매일 똑같이 흘러가는 도시는 계절도, 온도도 잃어버린 채 그저 옅은 회색빛 먼지로 채워져 있었습니다. 언제부터였을까요. 날씨를 궁금해하지 않고, 하늘을 올려다보지 않은 채 그저 일상의 무게를 견뎌내던 날들이 길었습니다.
내면의 열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심장을 요동치게 만들어도, 그저 모른 척 정신을 붙잡아 둘
뿐이었습니다.
그렇게 메마르고 굳어 가던 차에 쏟아진 그날의 소나기는, 내가 오래전에 분실했던 서정의 계절을 사정없이 저격해 왔습니다.
아프지만 시원했고, 두려웠지만 반가운 타격이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봅니다. 당신과 나 사이에, 혹은 세상과 내 사이에 그어졌던 수많은 단절의 금들을 말입니다. 그것은 어쩌면 서로를 가르고 멀어지게 하려던 선이 아니라, 이토록 메마른 날에 한 줄기 빛과 한 방울의 생명수가 서로에게 스며들 수 있도록 열어둔 비밀 통로가 아니었을까요.
한바탕 쏟아진 비가 대지를 시원하게 적시고 떠난 자리, 유월의 볕은 눈부시게 시리도록 좋았습니다. 오래간만에 마음 깊은 곳에서 건져 올린 시 한 편을, 이 좋은 햇살 아래 살포시 널어 말려 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의 마른 주름 사이에도, ㄱ날 내가 바라보았던 그 구원의 소나기가 촉촉하게 스며들기를 소망합니다.
은재 장지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