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장아 좀 나대라

허무와 무기력의 기록/ 마음의 틈

by장지연 작가

심장아 좀 나대라

By 은재 장지연

내게 있었다 분명
저절로 웃음 짓게 하던 나의 ( )
숨 쉬는 시간조차 아쉬웠던 나의 ( )
자랑하고 싶던 나의 ( )

나는 그 무엇이 무엇인지 적지 못한다
소중하지 않아서도 아니다
고맙지 않아서가 아니다
그 무엇 중에 무엇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쉬는 중이라고 위안했다
힐링 중이라고 말했다
재충전 중이라고 우겨보았다
잃어버린지도 모르고

누구를 위하여 나는 사는가
무엇을 위하여 나는 사는가
사랑하는 나의 다음에 올 명사가 없다
주어도 없고 보여 줄 동사도 없다
아주 조잡한 변명들만 형용사를 입고 떠돈다

내게도 있었던 사랑하는 나의 다음에
답을 적을 펜이 지금은 없다
무의미한 부호를 찾아 찍는다
사랑하는 나의! 나의? 나의...

내 심장은 미완성의 AI처럼 차갑다





[행간의 온도]
허무와 무기력의 기록

기계적 일상에 유폐된 나의 '진실된 통증'
나는 지금 극심한 번아웃과 무기력의 늪에 빠져 있다. 타인의 글 속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며 따뜻함을 느끼기보다, 그 단어를 쓸 수 없는 나의 메마른 상태를 확인하며 절망한다.

나는 그동안 '재충전'이나 '힐링' 같은 매끈한 말들로 나의 붕괴를 포장하며 스스로를 속여왔다. 하지만 이 시를 쓰는 순간, 나는 내 심장이 더 이상 유기적으로 고동치지 않고 정해진 문장에만 반응하는 허접한 AI'처럼 변해버렸음을 비로소 직시한다. 이 시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가장 처절한 조난 신호이다.

존재의 '명사'와 '동사'를 잃어버린 실존적 공허
내 삶에는 이제 주체적인 '명사'가 없다. '사랑하는 나의' 뒤에 붙어야 할 가족, 꿈, 혹은 나 자신이라는 존재의 목적지가 사라진 것이다. 목적지가 없으니 나를 움직이게 할 '동사' 또한 힘을 잃었다. 나는 살아있으나 실천하지 못하고, 그저 무의미한 변명들만 내 주변을 부유하고 있다. 내가 마지막에 찍은!,?,... 과 같은 부호들은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내 실존의 막막함이며,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내 삶의 비어있는 문장들이다.

타자의 시선을 통해 본 '나'라는 낯선 풍경
나는 타인의 따뜻한 문장을 경유하여 비로소 나의 차가운 공백을 발견했다. 시 속의 ( )는 내가 채우지 못한 무력감의 크기이며, 동시에 내가 다시 회복해야 할 공간이기도 하다. 나는 이 시를 통해 나의 허무를 미화하지 않고 추하게 드러냈다.
조잡한 형용사들과 무의미한 부호들을 나열함으로써, 내가 처한 무기력의 실체를 여실히 폭로했다. 이러한 '드러냄'은 나를 지켜보는 타자(독자)에게 경계의 메시지를 던지는 동시에, 나 스스로를 다시 세우기 위한 처절한 맘부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