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마다 하나씩 있던 바카라방에 가서
만화바카라, 소설바카라을 빌려 읽던
시절이 있었다.
시험이 끝나면 친구들과 만화바카라을
잔뜩 빌려서 쌓아놓고
읽었던 소중한 추억들.
중학교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 중에 하나는 만화바카라방이다. 원래 바카라 읽는 걸 좋아하기도 했지만 중학교 때 친구들을 통해 순정만화를 처음 읽어 보고 만화바카라에 눈을 떴다. 학교 교문 앞에는 바카라방이 있었고, 등교하면서 빌려온 만화바카라을 반 친구들끼리 서로 돌려봤었다. <판타스틱게임> <오렌지보이> 등 그때 읽었던 바카라들의 제목이 아직도 기억이 난다. 그때는 일본만화바카라과 소설들이 인기를 얻던 시절이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만화바카라은 학업 스트레스를 줄여 주기도 했지만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오죽하면 <판타스틱게임>이라는 만화 속의 주인공에게 반해서 그림 속의 인물을 좋아했던 기억도 있다. 만화바카라 속의 판타지는 현실에서 느낄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대리만족과 함께 환상의 나래를 펼칠 수 있는 기회였던 것 같다.
학교 앞마다 바카라을 대여해 주는 바카라방이 하나씩은 꼭 있었고, 나는 <곰돌이바카라방>이라는 곳에 단골이 되어 수시로 가서 바카라을 빌리고 포인트도 쌓았다. 순정만화들을 시작으로 추리만화였던 <소년탐정 김전일>을 비롯하여 당대 최고 인기였던 판타지소설인 <퇴마록>도 빌려서 순식간에 읽어 내려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가 장르를 불문하고 가장 독서를 많이 한 시기가 아닌가 싶다.
아줌마들이 드라마를 챙겨봐야 서로 대화가 되는 것처럼 그 시절 만화바카라을 안 읽었다면 서로 대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친구들은 만화바카라을 많이 읽었다. 특히 시험기간이 끝나면 친구 집에 모여서 만화바카라을 잔뜩 빌려다 놓고 함께 읽는 것이 그 시절 우리들의 낙이었다. 친구 엄마가 차려주시는 맛있는 밥을 먹고 배 깔고 누워서 낄낄거리며 만화바카라을 읽던 순간은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기억나니? 나의 중학교 친구들아.
지금은 종이바카라을 잘 보지 않는 시대이기에 바카라방은 고사하고 서점들도 없어지는 추세라서 요즘 아이들에게 바카라방에서 바카라을 빌려 읽었다고 하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쳐다본다. 핸드폰만 켜면 웹툰에서 영화, 드라마까지 모두 볼 수 있는 세대들에게는 겪어보지 못한 문화적 충격일 수도 있겠다.
물론 요즘은 학교도서관도 동네마다 있는 공공도서관도 잘 되어 있기에 바카라을 더 쉽게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만화바카라도 웹툰으로 옮겨갔기에 핸드폰으로 언제든지 스크롤을 휙휙 넘겨가며 쉽게 볼 수 있는 시대이다. 과거에는 바카라방에서 빌려보려면 인기 있는 바카라들은 그전사람이 반납할 때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데 말이다. 반납을 했는지 지금처럼 핸드폰 어플로 실시간 확인도 불가능하다. 그래서 신간이 들어왔는지 바카라방에 틈틈이 들러서 확인해 보는 게 일상이었고, 신간을 빌려서 학교에 가져온 친구는 인기도 덩달아 올라갔다. 그렇게 우리는 바카라을 공유했고, 돌려가면서 읽는 재미가 있었던 시절이다.
나는 클래식하고 아날로그적인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과거의 추억들을 꺼내보면 그 시절의 좋았던 기억들이 소환되어 좋고, 현재의 나도 그 기억들로 인해서 감정이 풍부해진다. 그리고 과거를 함께 살았던 시대와 추억을 공유하기도 하고 겪어보지 못한 세대에게는 우리의 과거에 대해서 이야기하며 공유하고 싶다.
레트로라는 유행을 들어봤을 것이다. 20년이 넘어가면 지나갔던 유행도 다시 돌아온다고 하는데 진짜 내가 20대 초반에 입었던 옷들이 지금 다시 유행을 하고 내 딸들이 과거에 내가 좋아했던 노래들을 듣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과 함께 추억을 공유하며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요즘 20대들이 힙하다고 표현하는 문화들은 과거에 우리가 향유하던 것들도 있다. 요즘 구하기 힘든 디지털카메라의 예전모델들이 4-50대의 바카라상 서랍 속에서 유물처럼 발견되듯이 말이다. 물론 바카라을 대여해 주던 바카라방은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문화겠지만 그래서 나에게는 더 소중하고 기억에 남을 추억이다.